▲ 최초로 진보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2009년 혁신학교운동을 처음 시작하였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혁신학교 첫 출발은 2009년에 지정된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이다. 최초 진보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경기도 교육감)은 당선 직후 공약사항이었던 무상교육과 혁신학교운동을 펼쳤다.

경기도에서 처음 시작한 혁신학교운동은 2000년대 초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과 2000년대 중반 ‘도시 속 대안학교 운동’의 맥을 이어 받은 것이다. 모두 90년대 대안교육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80년대 내내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성찰 속에서 입시경쟁교육으로 피폐해진 공교육을 치유하기 위한 운동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대안학교 간디 학교(1997)와 2000년대 초반 폐교 위기에 처한 남한산초등학교를 비롯해 작은 학교 운동, 그리고 성남시 이우학교(2003), 파주 자유학교(2005) 등 도시형 대안교육운동은 고스란히 2010년대 혁신학교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요컨대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즉자적으로 탄생된 학교가 아니다. 혁신학교는 참교육운동을 실천하면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탄생된 역사적 산물이다. 그 궁극적 지향점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민주학교이다. 교육부는 2019년 일부 혁신학교를 민주학교로 지정하였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상처받은 공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거점 내지 선도학교(Pilot School)이다. 나아가 혁신학교 실천 사례를 확산시킴으로써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공교육 개혁 모델학교이다.

거대학교, 과밀학급으로 기억되는 도시 속 반교육적인 환경을 탈피하여 교육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를 교육활동의 실질적인 주체로 전면화하려는 참교육운동이다. 이를 위해 학교 구성원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교사-학생-학부모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학생자치활동과 수업혁신,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중요시한다.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학교장은 혁신교육운동을 지원하는 단위로 재정비된다. 교사는 행정업무나 잡무로부터 해방되고 오로지 학생 상담과 학생생활, 그리고 수업혁신에 몰입한다. 혁신학교에서 중시하는 교원학습공동체 운영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발적인 공부 모임이다.

이를 교육청과 학교에서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로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판을 짜는 운동이다. 아래에선 10년 정도 성과를 내온 혁신학교운동이 지향했던 교육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성과와 함께 혁신학교운동이 직면한 한계와 극복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혁신학교의 교육철학과 운동의 성과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은 자발성, 지역성, 창의성, 공공성이다. 혁신학교는 교원의 자발성과 학부모의 참여로 운영되는 학교를 지향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여건과 실정에 적합한 학교교육을 추구한다. 또한 혁신학교는 소수의 수월성 교육에서 벗어나 다수를 위한 창의성 교육을 추구한다. 나아가 혁신학교 교육은 누구든지 어디서나 만족하는 공공성을 교육철학으로 지향한다.

첫째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자발성은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교육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은 학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혁신학교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일상화되고 의사결정 구조가 토론을 통해 수평적인 구조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교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교원학습공동체 역시 교사집단 스스로 자발성에 기초하여 구성된다. 교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교사들 간 동료성을 강화하여 서로의 수업을 개방하고 교육활동에 대해 대화하며 협의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원리와 철학을 담고 있는 게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이다. 혁신학교를 처음 시작한 경기도 교육청에서 펴낸 「혁신학교 기본문서」에 명기된 내용이다.

학부모회 역시 형식화되기보다 학교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함으로써 학교운영을 민주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자치활동 참여는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학교를 인식하게 할 수 있다. 교육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관심과 참여라는 자발성에 기초하여 학교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제1의 교육철학, 자발성은 곧 학교를 민주적인 자치공동체로 탈바꿈하는 ‘민주성’을 가리킨다. 학교운영에서 민주주의를 관철시켜 내는 활동은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에게 소중한 자기성장을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은 지역성이다. 지역사회 여건과 환경에 적합한 교육을 추구함으로써 교육의 효능감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이다. 도시와 농어촌, 도심과 주변부 등 지역마다 각기 다른 여건은 혁신학교에 색다른 교육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각기 다른 지역 여건을 최대한 교육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사회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교육의 효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경기도 양평군에 소재한 농촌 지역 혁신학교인 지평중학교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모내기를 하여 벼가 자라는 풍경을 일상에서 체험한다. 가을 추수기에 직접 수확하여 아이들 자신이 지은 쌀로 떡도 해 먹고 밥도 지어 먹는다. 진정 살아 있는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 스스로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고 자신들의 노동으로 창조된 먹을거리를 통해 노동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를 몸소 체득한 것이다.

혁신학교로 출발한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지평중학교는 독특한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삶을 담은 교육과정’, ‘함께 맞는 비’ 등 학년별로 체험활동이 다르게 구성돼 있다. ‘삶을 담은 교육과정’으론 벼농사 체험활동을 한다. 그리고 ‘함께 맞는 비’ 교육과정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을 체험하고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에 교사-학생들이 함께 일본대사관 앞 집회에 참여한다.

또한 서울 종로구 북촌 가회동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색다른 체험을 한다. 나아가 교사와 학부모가 마을 카페를 매개로 교육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교육문제를 공동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아간다. 따라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지역성은 혁신학교로 하여금 지역사회 센터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기도 혁신학교의 쌍벽을 이루는 조현초등학교와 남한산초등학교는 혁신학교운동이 시작되는 2009년 이전부터 자율학교로 지정돼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실천해 왔다. 자율학교 지정은 ‘탈규제학교’라는 용어로 창안된 것으로 2002년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2004년엔 중학교, 그리고 2006년엔 초등학교로 확대되었다.

자율학교와 교장공모제에 기초하여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일찌감치 언론의 관심과 교육운동가들의 주목을 받아온 조현초등학교와 덕양중학교, 그리고 남한산초등학교 등이 바로 그런 학교들이다. 따라서 경기도 혁신학교 운동은 경기도에서 앞서 실천했던 학교혁신운동의 활동 성과와 그 운동경험에 영향 받은 바 크다.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으로 창의성을 빼놓을 수 없다. 혁신학교 운동에서 학교현장의 변화를 가장 먼저 추구했던 것이 교육과정, 바로 수업의 혁신이다. 혁신학교는 대부분 자율학교로 운영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수업시수의 20% 범위 안에서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혁신학교 교사들은 교사 스스로 바로 현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업혁신을 시도했다. 자유로운 글쓰기 등 학생의 몰입을 토대로 학생 참여형 수업기술을 통해 학교를 민주적인 협동체로 기틀을 다진 프레네 교육이 그 한 유형이다. 그런가 하면 범교과 통합 학습을 주제로 모둠을 구성해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탐구하여 토론, 발표하는 프로젝트 수업도 학생들이 교육활동의 주체로서 자기주도성을 드높인 측면이 크다.

▲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 중인 서울형 혁신학교 수업장면.(출처 : 한겨레21 1035호 류우종 기자)

혁신학교의 성패는 교사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달려 있다. 밤낮, 주말 없이 수업을 연구하는 교사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서울형 혁신학교에서 중학생들이 주제별 모둠·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 혁신학교운동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사토마나부 교수(도쿄대 교육학)는 일본 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학력 저하’보다 ‘배움으로부터 도망’이라고 진단했다. 이지메 현상이나 등교를 거부하는 현상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지메나 등교거부는 학령기 아동이나 학생 전체로 보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배움으로부터 도망’ 현상은 60-70%에 이를 정도로 교육의 위기라고 분석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현상이 증가하여 아이들 스스로 자신과 미래 사회에 대한 희망을 상실해 간다는 인식이다. 한국의 교육정책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이 일본의 교육정책을 모방한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 역시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부로부터 흥미를 잃고 벗어나려는 현상이 짙다.

신자유주의 학교정책에 포획된 속에서 경쟁을 통해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고 수준별 분반 수업을 시도했던 것이 한국과 일본 모두 공통된 현상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90년대 학교교육에 시장의 원리를 새로운 경쟁 원리로 적극 도입했다. 교육수요자에 기초한 학교선택제 도입은 일본이 유럽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경쟁에 기초한 고등학교 선택과 선발체제의 도입이 그러했다.

그러나 사토마나부 교수는 시장의 원리나 경쟁을 통해 학력이 신장되는 게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도망’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수준별 분반 수업이 오히려 학력을 신장시키기보다 학력 저하와 학력 격차의 확산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위험한 정책과 부정적 현상은 학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그리하여 사토마나부 교수는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교사와 아이들이 절망하기보다 자기성장을 경험하는 ‘배움의 공동체’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토마나부 교수는 핀란드 교육개혁 사례를 제시한다. 핀란드는 1970년대 이후 교육의 원리로 경쟁과 선별의 원리를 추구하기보다 이를 삭제하고 철두철미 ‘평등의 원리’를 지향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독점한 교육과정 편성권한을 교사의 자율성에 맡겼다. 나아가 장학감사제도를 폐지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시켰다.

그러자 교사 스스로 자기연찬과 연구에 몰입하고 전문성을 크게 신장시키는 성과를 이뤄냈다. 교사 연수에서 강제성이나 의무연수가 없음에도 핀란드 교사들은 거의 100% 자율적인 연구와 연수에 참여한다. 오늘날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에 대한 신뢰도와 사회적 존경심이 매우 높은 이유이다. 우리나라 혁신학교 운동에서 교사들 스스로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전개한 것은 사토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학교 운동이 지향하는 교육철학은 공공성을 드높이는 것이다. 교육활동은 학교라는 공적 기구를 통해 수행되는 공적 활동이자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공공의 가치를 체득하게 하는 사회적 과정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시민성(citizenship)을 드높이고 공동체 문제에 관심과 참여하는 자세를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뿌리내리며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발휘하게 만드는 공적 과정이다.

따라서 교육공동체인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미래세대인 아이들은 능동적 시민으로 주권자 의식을 발휘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학교의 존재 이유가 있다.

푸코(M. Foucault)의 비판처럼 21세기 학교는 더 이상 규율과 질서를 체득하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의 역할이 근대의 산물인 규율과 질서, 통제 속에서 산업사회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낡은 국가주의 교육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의 주체성과 독립적 인격, 다양성을 존중받는 속에서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자유인을 길러내는 공간이다.

▲ 금천구 혁신학교인 독산고등학교 독서실에서 사제동행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출처 : 한겨레 정용일 기자)

2015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독산고는 처음 혁신학교를 시작할 때 ‘교육 격차 해소’에서 출발하였는데 점차 학생들 스스로  ‘내 삶의 주인공 되기’로 진화, 발전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인 공공성은 오늘날 민주시민교육과 부합하며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교육의 목적에도 합치된다. 왜냐하면 혁신학교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교육기회와 교육의 가능성을 차별 없이 수행하게 함으로써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운동은 10년이 갓 지난 역사이지만 일반학교에 미치는 영향 내지 성과가 적지 않다. 이미 3년 전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이 일반학교에 적용되면서 혁신학교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공문으로 내려오고 학교현장에 미미한 파동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권력에 조금씩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상당수 일반학교에선 교직문화의 폐쇄성과 수직적인 성격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위계질서에 터한 수직적인 인간관계와 권위주의 문화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세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학교현장의 관료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동등한 시선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혁신학교 운동이 가져온 성과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일반학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미동이 있을 뿐, 근본적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이 공교육 개혁의 모델학교로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혁신학교 운동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성과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외부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혁신학교 운동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육과정의 변화나 교육개혁의 이름으로 칼을 들이댄 역사를 보자면 다분히 정치적 환경이나 정치적 판단에 좌우된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60년대 학문중심교육과정이 미국 내에서 크게 부상한 이유는 경쟁상대인 소련이 먼저 쏘아올린 우주선 스푸트닉 충격이 절대적이었다. 경쟁에서 밀린 미국 사회가 ‘우린 뒤떨어졌다’, ‘위기다’, ‘교육의 잘못이다’ 라고 호들갑을 떨어댄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976년 영국에서도 학력논쟁이 대두되었다. 결국 학생들 ‘학력 저하’와 ‘환상적인 교육개혁 방향’을 이미지화한 보수당이 노동당을 거꾸러뜨렸다.

이건 우리나라도 매 한가지이다. 1995년 5·31교육개혁을 앞두고 문민정부는 ‘촌지나 받는 자질 없는 교사’, ‘왕따’, ‘교육 이민’, ‘학력 저하’, ‘하향평준화’로 여론을 띄웠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신자유주의 학교 정책은 그렇게 포문을 열었다.

이후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장관의 여러 줄 세우기 교육개혁에 대해 보수를 참칭한 수구언론들은 ‘학교붕괴’, ‘교실붕괴’를 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교실붕괴’나 ‘학교붕괴’ 현상이 아님에도 마치 붕괴될 것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거기다 신자유주의 학교정책인 7차 교육과정 도입이나 교원성과급제는 진보의 아이콘 전교조로부터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신자유주의 시장의 원리를 학교 교육에 전면화하면서 노무현 참여정부 5년 내내 전교조와 대결적 자세로 팽팽한 기싸움이 계속되었다. 2003-2004 NEIS 도입 반대 투쟁과 2005-2006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으로 민주정부 1기와 2기 내내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웠다.

아무튼 교육개혁이든 교육정책의 변화든 정치적 환경이나 정치적 동기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교육정책이나 교육개혁은 너무도 많이 정치에 휘둘려 왔던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육과정 역시 정치적 환경과 정치적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사 ‘국정제’를 추진했던 박근혜 정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러했다. 박근혜 정권 교육부는 2014년 2월 업무보고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제’를 노골화하였다. ‘통합형 교육과정 개발 및 교과서 체제 근본적 개선’을 내세우면서 ‘국정제’ 전환을 포함하여 다각적인 교과서 체제 개선방안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한국사 교과서 개발 방침을 밝혔다.

국정제 교과서 추진은 교육과정에 대한 다양성과 창의성을 부정하는 반교육적인 정책이다. 그럼에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내걸었으니 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인가?

2015 개정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되었던 2014년 현재 중등교사 85%가 교육과정이 개정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초등교사의 95%, 중등교사의 77%가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2012년 7월에 수정 고시된 교육과정에 따라 2012년 2학기부터 학교현장에 도입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역시 1년 전 2011년 10월 이명박 정부가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따라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은 교육과정 구성에서 다분히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박근혜 정권 교육부는 2014년 9월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2015년 내내 한글학회와 한글문화연대, 그리고 전교조 등 운동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 교육부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한자교육을 강화하려는 구체적인 방침을 정책 연구를 통해 2016년 말까지 1년 유예하였다.

2016년 박근혜 정권 교육부는 “한자 300자를 선정해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주요학습용어로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한글학회를 비롯해 전국 교대교수들과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등 교육운동단체의 거센 반발에 또다시 직면했다. 결국 2017년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정책은 폐기되었다.

요컨대 교육과정 개정이 학생 발달단계 등 교육의 논리에 입각하기보다 그간의 정치적 환경에 좌우된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 이유로 혁신학교라는 교육개혁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평가 없이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영의 논리에 따라 혁신학교 운동을 폄훼하거나 반대로 과포장한 평가는 학교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이미 앞에서도 밝혔듯이 혁신학교 운동이 진보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성취한 즉자적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 2017년 7월 7일 국회에서 열린 ‘2017 전국 작은 학교 포럼’ 포스터.(출처 : 강원교육희망재단 제공)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은 혁신학교운동에 정신적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혁신학교 운동은 90년대 대안교육운동-2000년대 초,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2000년대 중반을 전후한 도시형 대안학교 운동 등 “제도교육권 안팎에서 실천한 교육개혁 운동에 대한 성찰 속에서 획득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 운동은 상처받은 공교육을 치유하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지난한 교육운동의 산물이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입시경쟁교육에서 승리하는 기능적 지식인을 양성해 온 기존의 학교교육에서 탈피하여 전인(全人)교육, 바로 홀리스틱 교육(holistic education) 담론을 지향하는 교육의 본질에 깊이 천착하는 학교이다. 여기에 혁신학교운동의 교육적 의의 내지 성과가 존재한다. 학생 스스로 자율적 인격으로 성장하면서 전인적 발달을 꾀하고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혁신학교는 교육 과정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혁신학교 운동의 한계와 극복방안

교육개혁운동의 일환으로서 시작된 혁신학교 운동이 그 교육적 성과를 일반학교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없지 않다. 혁신학교운동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자 학교라는 공간이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는 ‘배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교육개혁운동이다. 그럼에도 혁신학교운동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먼저 혁신학교는 학교구성원의 동의를 전제로 교육청이 지정해준 학교이다. 따라서 혁신학교운동은 교육개혁을 위한 열정과 학교혁신을 위한 자긍심을 토대로 ‘학교구성원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추진된 운동이다. 무엇보다 운동의 초기 주체는 교사집단일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운동의 열정을 일반학교 교사들에게 과연 당위적인 성격으로 요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넘치는 학교잡무와 미친 듯이 돌아가는 일상의 분주함을 뛰어넘어 교사가 오롯이 수업혁신을 위한 수업연구와 학생생활 상담에 자신을 쏟아 부을 마음의 준비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쉽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혁신학교운동이나 혁신학교 지정에는 선도적으로 교육운동에 종사했던 교사들이 혁신학교운동 초기에 중핵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교육자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일부러 혁신학교를 찾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교육모순에 대한 이해와 함께 교육운동을 현장에서 실천한 교사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혁신학교운동 초기에 전교조 교사들이 대거 혁신학교로 쏠렸던 현상이 그것을 반증한다.

▲ 2019년 초 전교조 사무실을 찾아온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혁신학교운동 초창기에 참교육을 표방한 전교조 교사들이 대거 혁신학교로 자원해서 참여하였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혁신학교운동은 참교육운동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혁신학교에는 교육운동 실천 여부와 무관하게 교육자로서 열정을 지닌 분들이 절대 다수를 점한다. 교육의 본질에 깊이 천착해서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맛보고자 하는 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적지 않은 용기와 신념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일반학교를 혁신학교로 전환시키는 운동에 교사 내부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스럽다. 적어도 현재의 교육환경과 교육여건에서는 그러하다.

혁신학교운동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한계는 한국의 교육이 입시제도의 강고한 벽에 갇혀 있다는 냉혹한 현실에 있다. 기존 중상류계층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강한 저항 역시 입시교육에 포획된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형식적 자유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현대판 신분제 사회로 공고화돼 가는 측면이 짙은 사회이다. 그것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대학서열화이고 학교교육이 현실에서 입시경쟁교육으로 규정된 이유이다.

아이들에게 학년 초 글쓰기 과제로 ‘삶의 목적’을 물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아이들 상당수가 돈을 많이 벌어서 잘살고 싶다는 개인주의적인 욕망을 삶의 목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충격적이지만 아이들 머릿속에도 삶의 목적은 성공이고 성공은 곧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입시도 준비하고 그 치열한 경쟁 속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이다. 곧 ‘높은 학벌=금력=권력=성공적 인생’으로 등치된 한국 사회 현실에서 개별적으로 접근해서 사회인식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 사회는 이미 물질이 정신을 압도한 사회이고 영혼마저 잠식당하는 사회이다. 시장의 권력이 선출된 정치권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위험 사회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과정이나 불구속 기소된 상황을 보노라면 그런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거대 자본 권력이 임기가 한정된 선출된 권력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사회 법과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감옥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가는지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알 건 다 알고 있는 사회이다. 전두환 같은 범죄자도 정치인들로부터 새해 세배를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난 아이들이다. 한국 사회는 역사정의가 바로 선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세우기는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 학교를 교육공동체, 나아가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로 인식하고 규정하려는 강력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수직적인 학교문화와 권위주의적인 질서 속에선 아무리 혁신학교의 교육적 성과를 이식시킨들 형식화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 가운데 혁신학교의 무늬만 띠었지 내면은 일반학교와 별반 차이가 없는 혁신학교들도 존재한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는 순간 교육청으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많은 예산을 지원받는다. 일반학교에선 쉽게 따올 수 없는 커다란 예산은 무늬만 혁신학교의 경우, 일회성 행사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읽기, 쓰기 셈하기를 비롯하여 아이들 기초학력이 취약한 상태임에도 혁신학교의 이름으로 일회성 행사 위주로 교육활동을 강행하다 보면 아이들 기초학력은 더욱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운동의 주체인 교사들이 내부적으로 자발적 동의과정이나 교사들의 열정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학교관리자들이 혁신학교 신청을 강행할 경우 특히 그러하다. 학교장이 주도하거나 교사승진과 관련하여 혁신학교를 신청한 학교일수록 무늬만 혁신학교인 경우가 현재 혁신학교운동이 처한 교육계 현실이다.

게다가 혁신학교운동의 성과로 주목받는 교원학습공동체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일반학교에 이식되어 3년째 시행되고 있는 ‘교원학습공동체’가 유명무실하다. 나아가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 역시 껍데기만 남은 상태가 대다수 일반학교가 처한 모순된 현실이다.

교사의 자발성과 열정에 기초한 동의의 과정이 없다면 혁신학교의 교육적 성과를 일반학교에 이식한들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교사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교사회의를 의결기구로 전환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우선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혁신학교처럼 교장이 혁신학교운동의 취지를 이해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민주적인 태도를 일반학교에선 거의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며 성숙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좋은 교장 한 명은 학교를 변화시키는 데 선결적 조건이다.

따라서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학교장을 교사의 교육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지원단위로 학교조직과 권한을 재정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혁신학교운동의 성과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일반학교의 혁신 또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오늘날 학교교육을 왜곡시키는 제1의 요인은 위계질서로 관료화된 학교구조와 승진제도에 있다. 특히 승진제도는 “온갖 교육 비리의 주요 시작점이자 학교 교육을 관료화시킨 주범”이다. 승진에 목매는 이유는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 맨 꼭대기에 들어가려는 비틀린 욕망 때문이다. 그런 비틀린 욕망들이 부딪히는 공간이 학교라고 한다면 얼마나 모순된 현실일까!

그러나 승진 점수에 연연하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기보다 업적 쌓기에 골몰하고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이나 1회성 학교행사에 집착한다면 그곳엔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학교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교장실을 없애고 학생용 카페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교장실을 없애고 그 자리에 도서실을 확장하는 게 학교 혁신의 출발점이다. 승진을 욕망하는 일부 부장교사들이나 전시성 교육행사를 욕망하는 일부 교장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 재구조화하고 소프트웨어 또한 민주적인 학교로 전환시키는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할 일이다.

오늘도 외로움 속에서 학교민주화 투쟁으로 하루를 보내는 교사들을 외면한 채, 일반학교의 혁신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선 이명박 정부 시절 더욱 강화된 학교장 자율경영책임제를 폐기해야 한다. 오히려 교육공동체로서 학교를 민주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해 교육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지위와 권한을 법적으로 제도화시켜야 한다.

그러할 때 일말의 학교혁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로 전환시키고자 할 때 일반학교 교사의 동의 역시 그러한 환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다수의 동의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학교운동 초창기처럼 교육운동 차원에서 학교에 남아 밤 9시가 넘도록 회의를 거듭하는 풍경이나 밤 12시까지 남아 수업준비를 하는 열정페이를 보통의 교사들에게 강요할 순 없다. 또한 학교현장의 변화나 교육개혁이 그렇게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법적·제도적 환경 정비를 갖추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프랑스처럼 학생대표가 의결권을 갖고 학운위 위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독일처럼 학생대표가 교사회의에 참석하여 학생의 권익과 관련하여 발언권을 부여받는 걸 생각할 수 있다. 하다못해 경기도 시흥시 혁신학교 장곡중학교의 실천사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곡중학교는 학급회의와 학생자치회의가 명실상부한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학급회의와 학생자치회의에서 의결된 학생의 목소리는 그대로 장곡중학교 ‘학생생활 인권규정’에 적극 반영된다. 학생자치회의는 전체 교실에 생중계 방송돼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높다. 학생들 스스로 교육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교육과정으로 녹아 있는 셈이다.

경기도 용인시 비평준화 인문계 고교이자 경기도 최초 혁신고등학교인 흥덕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생 용의 복장에 대해 모둠 토론과 학생총회를 통해 학생들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다. 학생들 스스로 학교규정을 만들어 가는 셈이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운동은 교육3주체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평적 문화와 협력적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 학교행정 잡무로부터 교사를 해방시키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경기도 부천시 혁신학교인 소명여중의 경우 행정실무사가 4명으로 이 분들의 지원 덕에 교사들이 공문 작성 등 행정업무에서 해방되었다. 보통 일반학교에 행정실무사가 1명인 것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다. 게다가 학급당 학생 수 역시 현저히 줄어들어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부-교육청-학교-교사 순으로 위계화된 질서와 관료주의 문화의 두터운 벽을 부수고 학교혁신의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에서 오로지 수업혁신과 학생 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을 개선해 주어야한다.

그렇게 하였을 때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와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원학습공동체의 활성화, 그리고 학생자치활동의 전면적 활성화와 학부모의 자발적 참여 등 교육3주체의 혁신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고 학교현장은 스스로 변화할 것이다.

학교를 민주주의가 흘러넘치게 하고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자기 성장을 경험하며 교사 또한 교육전문가로서 자기성장과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선 법적·제도적 환경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의 성과를 일반학교에 확산·적용시키기 위해선 입시경쟁교육으로 포획된 환경 속에서 교사가 국가주의 교육행정이 관철되는 수동적 존재로 규정되지 않도록 일반학교가 처한 봉건적이고 열악한 환경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나 ‘교원학습공동체 활동’ 등 혁신학교운동의 성과를 공문 몇 장으로 일반학교에 내려 보낸다고 학교현장의 변화를 가져올 순 없다. 민주적인 학교공동체는 저절로 탄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학교운동이 일반학교에 적용되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교사의 자발성과 열정에 기초한 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선사고의 사례처럼 일상에서 교사의 관계성을 돈독하게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선사고는 가사실을 매개로 음식을 나누고 텃밭을 가꾸었다. 이는 교사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었고 교사들은 서로서로 마음을 연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교원학습공동체와 회복적 써클을 통한 학생생활지도 등 교사의 공동체성과 관계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라는 낯선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을 지혜롭게 안착시킨 선사고의 사례 역시 교사의 공동체성과 관계성에 기초한 것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이 모든 과정에 민주적인 학교공동체가 환경적으로 뒷받침되었음은 당연하다.

“선사고는 협력적 공동체성을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중략) 코로나19 기간 휴업과 온라인 수업을 세팅하는 과정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선사고에서는 그 과정이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부별로 의견수렴을 하고 대표회의를 통해 협의하고 또 필요하면 TF를 구성해서 좀 더 전문적인 방법들을 모색하고 최종적으로는 토론이 있는 교무회의를 거쳐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선사고의 일상입니다. 이 과정에 학교장은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민주적인 의견수렴과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문화가 학교에 안착되어 있기 때문에 온라인 수업 플랫폼을 결정하고 새로운 교육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혁신학교가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교사 간 관계성과 공동체성을 높여감으로써 자발적으로 학교 혁신을 위한 분위기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혁신학교 초기단계에선 잡다한 행정업무로부터 교사를 해방시키고 학교운영에서 비민주적인 요소를 척결해 나가는 게 선결과제였다.

그렇지만 혁신학교가 초기단계를 지나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교사들 스스로 자기성장을 경험하고 학교 교육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전문적인 교사 커뮤니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장기 프로젝트로서 교과 교수-학습과정을 공동 연구하는 ‘공동수업연구’는 전문적인 교원학습공동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생생활지도나 교수-학습 과정에서 교사의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교원학습공동체의 존속은 혁신학교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혁신학교의 꽃인 ‘공동수업연구’를 위한 전문적인 교원학습공동체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선 현행 교원평가와 교원 성과급 제도를 즉시 철폐해야 한다. 수업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함께 연구, 토론하며 협력해가는 민주적인 학교문화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천박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점수와 성과금으로 교사를 경쟁시켜 교육력을 높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교육의 본질을 무질러버리는 부박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현행 방식을 철폐하고 교사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높여 교사들 스스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교육정책의 전환은 교사의 삶을 변화시키고 교사의 자존감을 드높여 자발성을 이끌어 낼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장학감사제도가 폐지되고 강제 연수가 사라졌지만 교사들 거의 대다수가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율연수에 참가하고 있는 핀란드 교육개혁은 많은 부분을 시사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혁신학교운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제도교육과 제도권 바깥의 교육 간에 개방성과 유연성, 그리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교육시스템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서 선구적인 나라가 덴마크이다. 덴마크는 공립학교(폴케 스콜레)와 공교육의 틀에서 자유로운 ‘자유학교’(프리 스콜레) 간 상호협력적 교육시스템을 구축한 국가이다.

공교육의 틀에서 자유로운 ‘자유학교’의 역사는 1852년에 최초로 설립된 만큼 100년이 훌쩍 넘어 150년에 가깝다. 국가가 규정한 교육과정을 교사가 주입식으로 끌고 가는 공교육 체제와 달리 자유학교는 학생을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적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 일방적인 교수법 대신 교사와 학생 상호관계를 중시하고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것과 실천한 것을 소통하는 교수-학습법을 중시한다.

공립학교(폴케 스콜레)와 ‘자유학교’(프리 스콜레)는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하지만 상호협력적인 성격이 짙다. 개방성과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덴마크 교육시스템의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자유학교(프리 스콜레)를 마치고 중등교육 2단계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이나 직업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공립학교(폴케 스콜레)나 ‘자유학교’(프리 스콜레)를 마치기 전 8학년부터 또는 졸업 후 청소년들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자유중등학교’(애프터 스콜레)의 존재이다.

14세에서 18세 사이 청소년들에게 통상 1년이나 2-3년 동안 인격형성을 위한 기숙형태의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애프터 스콜레 기간 동안 교육법에 따라 공립학교 재학기간으로 인정해 준다. 덴마크 교육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프터 스콜레는 ‘삶의 계몽’과 ‘보편 교육’,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지향한다. “청소년들의 개성과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이른바 ‘중점학교’이다.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음악, 미술, 디자인, 연극, 영화, 스포츠, 항해, 여행, 국제교류, 종교, 프로젝트와 현장연구 등 다양하다.”

한 마디로 진지하게 자아를 찾아가는 교육의 과정이자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학교이다. 학생들은 애프터 스콜레를 통해 개성과 자아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민주시민으로서 연대의식과 공동체성, 그리고 협력과 공존의식을 체득한다.

학생들은 애프터 스콜레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안목을 기르고 역사와 사회공동체에 관심과 함께 참여하는 삶을 체득한다. 하나의 진정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 덴마크 사회는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국가와 지자체는 혼연일체가 된다.

부유한 사회복지국가 덴마크와 달리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러시아의 ‘아름다운 학교’도 혁신학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 송순재 교수(감신대)가 직접 경험한 러시아 ‘아름다운 학교’ 풍경은 놀랍다 못해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어떤 학교에는 학교 안에 보건교사가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열 개 정도 큰 방으로 이뤄진 병원 자체가 학교 안에 존재했다. 아이들은 종종 신경증에 시달리기 때문에 수업 중 아프거나 피곤하면 이곳에 와서 치료도 받고 쉬기도 한다...(중략)...택시운전사와 청소부도 푸쉬킨의 시를 즐기고 소설을 이야기하며 철학을 논한다. 나아가 저녁이 되면 극장에 가서 연극이나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이 러시아 인민 대중의 일상사가 되어 있다.”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덴마크의 ‘프리 스콜레’와 ‘애프터 스콜레’, 그리고 러시아 ‘아름다운 학교’는 혁신학교운동이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마지막으로 혁신학교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입시교육을 비롯해 수업평가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입시교육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최저임금을 1만 원 이상으로 높이고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 수준을 북유럽처럼 큰 폭으로 강화하면 된다.

그러면 대졸-고졸 간 임금격차가 나더라도 누구나 품위를 유지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 결과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면 굳이 대학을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학교교육도 입시교육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기다 대학까지 무상교육‧무상의료 체계를 제도화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삶의 질을 높인다면 노르웨이처럼 대학입시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 적어도 지적 호기심이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면 굳이 대학 진학을 하려고 무모한 풍경을 연출하진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무모하다 못해 야만적이다. 7교시 법정 수업시간도 모자라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정책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교육개혁이라고 볼 수도 없는 정책을 개혁정책이라고 내세우는 것 자체가 국민 기만이다.

숙명여고 사태 직후 일군의 세력들이 학생부종합전형(약칭 학종)을 ‘깜깜이 전형’으로 몰아붙이고 선발의 ‘공정’을 내세우며 정시 전형 확대를 주장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정시전형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과 여론도 수능성적으로 선발하는 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이미 판명 났듯이 수능시험은 고교 학력을 평가할 데 평가의 타당도가 낮은 시험이다. 오히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학생의 잠재가능성을 가늠하여 선발하는 학종 전형이 디테일한 부분을 보정한다면 훨씬 교육적이고 아이들에게 적합할 것이다.

무엇보다 혁신학교운동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최적의 방안은 ‘평가방식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자기주도성을 높이는 프로젝트 수업 등 수업혁신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평가방식의 전환이다.

평가방식이 바뀌면 아이들 삶이 바뀌고 수업형태도 바뀐다. 일방적인 교수법이나 강의식-설명식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발성과 학문적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고 학문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수업만큼 효과적인 수업은 없다. 따라서 프랑스 바칼로레라 시험처럼 절대평가방식의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수업형태는 책을 읽고 토론하며 사색하는 게 학교의 일상적 풍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국제 바칼로레아(IB) 시험은 우리 현실에선 적합하지 않다. 프랑스처럼 고교 교사들이 출제하고 고교 교사들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평가의 혁신과 수업혁신을 가져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삶의 좌표를 상실한 시대! 학교는 입시경쟁교육에서 승리자를 길러내는 공간이 아님에도 그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결핍된 지성과 기능적 지식으로 도배된 아이들에게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객관적 수치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을 4배나 압도하는 한국 교육현실을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또한 황당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교사를 학원 강사와 비교해가며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한 때 방송에 나와 훈계했던 교육부 수장도 있었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교육개혁을 이야기하며 혼란만 가중시켜 왔던 게 우리네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개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교육은 길을 잃은 미아처럼 혼돈 속에 갇혀버렸다.

슬프고 참담한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혁신학교운동은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일궈내었다. 혁신학교운동에 대한 저항세력의 도전도 만만찮지만 이젠 혁신학교운동의 성과를 일반학교로 확신시킬 시점이다. 교육운동에 관심 있는 교사들과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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