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7월 16일. 드디어 벽화 그릴 전문가와 자봉단이 삼방리를 방문하는 날이다. 마을에서는 마침 복날이라고 닭 이십여 마리를 사다가 백숙을 준비했다. 부녀회장님, 용수 아저씨와 혼자 사는 노총각 꼬마아저씨가 닭을 손질하고 장작불을 땠다. 우리가 만든 앞치마를 입으셨고나야. 에헤라디여~

▲ 복날, 벽화자봉단을 맞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녀회장, 꼬마아저씨, 용수아저씨 등이 많은 닭을 씻고 불을 때느라 분주하다.

먼저 도착한 학생과 교사들 13명은 한의원으로 와서 손소독과 체온측정을 마치고 거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나는 그들에게 청산은 1894 갑오년 동학농민혁명당시 본부가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동학 요지인 ‘인내천人乃天’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벌써 120여 년 전에 그들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모두 하늘을 품고 있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소중하고 너도 소중하다. ‘귀한 우리 함께 잘 살자’는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가.

마을회관에서 보관 중이던 어르신들의 ‘나의 인생이야기’ 코팅한 것과 마을잔치 할 때 걸어두었던 현수막을 펼쳐 보여주며 마을 주민들 삶이 오랫동안 얼마나 고단하게 이어졌는지 설명했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당신들은 자식들에게 ‘꽁보리밥 벤또’를 싸 주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늘 허기가 져 있었다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거나. 이제 행복마을사업을 통해 여러분 도움으로 그들이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밝고 환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니 정말 감사하다. 여러분은 천사다!

▲ 자봉 학생들에게 갑오년 동학혁명 본부가 있었던 청산의 역사와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의 팍팍했던 과거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다. 덕분에 행복마을로 환해질 것이니 여러분은 천사다!

장녹골 마을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아본 학생들은 뒤에 도착한 벽화팀장과 함께 식탁에 앉아 닭 반 마리씩 들어있는 국그릇을 받았다. 아암,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아침 일찍부터 장작불을 때가며 이십여 마리의 닭을 삶아주신 주민 여러분들 감사합니다아~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멀리서 오신 반가운 손님들이여. 양껏 드시라.

곧 바로 작업에 들어가야 할 터인데 모든 게 처음이니 전적으로 서울에서 내려온 한 팀장님에게 의지해야 했다. 한샘이 내가 뽑아간 프린트 사진대로 분필로 회관앞 벽에 동학도들의 스케치를 그리고 있는 동안(오호라, 먼저 분필로 스케치를 하는 거로구먼) 남은 인원은 할 일이 없어 지루해 했다. 이렇게 귀한 노동력(^^)을 놀려서야 쓰나. 한 팀장에게 필요한 재료와 도구들을 챙겨 가사목부터 작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대부대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가사목으로 이동했다.

“한쌤은 저쪽 담벼락에 해바라기를 시작해 주세요. 나는 이쪽에서 포도나무를 그리겠습니다.”

분필로 준비작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마을입구 팔각정에 올라가 할머니들과 안면을 텄다. 젊은이가 귀한 동네. 어르신들은 손주를 보듯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 인원이 많을 때 일을 해야 하는데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는 일. 전문가가 벽에 본을 그리는 동안 학생들은 마을 입구 팔각정에서 할머니들과 수다삼매경.

페인트와 도구들은 열흘 전 쯤에 서울의 벽화팀에서 페인트 가게에 주문을 하고 내가 서울에 올라가 마을카드로 결재하고 물건을 받아왔다. 용처 모를 도구들이 있었는데 한쌤이 하는 걸 보니 곧 이해가 되었다. 페인트는 모두 수성으로 옷이나 몸에 묻어도 닦아내는 게 어렵지 않다. 색상은 흑, 백, 빨, 노, 초, 파 이렇게 여섯 가지만 있으면 무슨 색이든 만들어낼 수 있단다. 오호라... 빨강과 초록을 섞으니 밤색이 되는고나야. 흰색, 노랑, 빨강 약간만 넣으면 살색이 되고. 이제 어떤 색이라도 다 만들 수가 있겠다. 에헤라디여~

색상을 섞어 각자 작은 그릇에 담고 붓 하나씩 챙겨 미리 스케치한 벽에 그림을 그리니 뚝딱 멋진 그림이 있는 마을이 시작되었다.

▲ 회색빛 시멘트 블럭 벽이 환한 해바라기 밭으로 변신!
▲ 문제의 그 벽에서 순식간에 보라색 포도송이가 영글었다.

날이 더웠지만 여력이 있는 친구들은 빈 집 흙벽이나 시멘트가 노출되어 보기 흉한 곳에도 페인트를 칠했다.

▲ 자기 몫을 다 한 학생들은 마을의 빈집을 찾아 흉하게 노출 되어 있던 흙벽과 시멘트 벽에 페인트를 칠했다.

가사목 주민들이 시원한 수박과 콩국수를 마련해주어서 배를 또 채웠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숙소로 돌아가야 해서 4시경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났다. 한쌤도 장녹골에 돌아와 동학도 스케치만 마치고는 갈 길이 멀어 떠나야 했다. 이제 남은 건 모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오늘 배울 건 다 배웠다. 한샘이 색 분필 한 통도 내게 주고 갔으니 까짓거 쉬엄쉬엄 해 보지 뭐.

다시 혼자 가사목으로 가서 한샘이 스케치 해준 ‘의좋은 형제’를 조금 칠하다가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며칠 후에 가사목에 갔다가 최고령자 왕언니에게 따끔한 야단을 맞았다.

“저걸 그림이라고 그리고 가?”

지금껏 보지 못한 노기 띤 얼굴이시다. (다음 편에 계속)

▲ 자봉단이 모두 떠난 뒤 나는 '의좋은 형제' 일부를 칠하다가 날이 어두워 철수했다. 한동안 비가 와서 못 들여다 봤는데 그 동안 미완성인 이 칙칙한 밤의 풍경이 할머니들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모양.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 '의좋은 형제' 는 다르다.
8) 삼방리의 딸 천사는 다르다.
9) 가사목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고은광순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