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그림이야기] 8. 평범한 삶

ㅡ코로나19시대 문화 찾기ㅡ 김봉준 시민통신원l승인2020.08.10l수정2020.08.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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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 2020 테라코타, 김봉준 작

 

오랜만에 글 씁니다. 재촉하는 글은 쓰기 싫고, 공부해서 쓰는 글도 쓰기 싫고, 쉬고 싶은데 그 시간 빼앗는 글도 쓰기 싫어서 안 쓰다가 이제야 한 글 써봅니다. 앞으로도 정기적인 글쓰기가 압박이 된다면 글 못 쓸 겁니다. 한적하고픈 소망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오늘입니다.

나는 내 일상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코로나시대 비로소 한적한 삶이 오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 보니 내가 그간 가꿔온 내 일상의 쾌적함이 새삼스럽게 소중하다는 마음에 이릅니다. 평화를 세상 밖에서만 찾다가는 부지하세월이고, 내 집 마당 녹색 뜨락에서 찾습니다. 어리석은 이 인간은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삼십년 일궈온 뜨락이 쑥대밭으로 방치된 모습을 보면서 반성했습니다. 요즘 매일 삽질하며 뜨락을 다듬으며 살고 있습니다. 풀과 흙을 다듬는 작업이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것만큼의 무게로 느껴집니다. 나를 다듬는 평화맞이 활동입니다.

'그가 먹는 것이 그 사람 된다'는 인도 속담을 좋아하면서도 음식 만들기를 게을리 하였습니다. 맛있게 먹고 싶은 욕심은 아직 있습니다. 이제는 음식 만들기부터 즐기고 먹는 것 즐기며 살겠습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밥살림을 막 살 순 없습니다. 돼지짜글이, 김치찌개, 잔치국수, 닭갈비, 카레덮밥, 콩나물국, 미역국, 호밀빵, 내가 즐겨 만들 수 있는 요리들입니다. 나를 찾아오신 손님들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풀 깎기, 돌 나르기, 선반 만들기, 가로등 달기, 터다지기, 마실가기 등 하고픈 일들은 바로 합니다. 생각나는 거 글쓰기, 뜻이 나는 거 집중해서 그리고 조각하기, 스마트폰으로 검색질 하며 놀기 등이 요즘 내 일상입니다. 이제야 겨우 철들어 일상을 사랑하며 즐기며 살고 있네요. 사랑이 밖에만 있답디까. 밖의 외출 자재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와 내 삶 주변에는 사랑이 널려있습니다. 주변에 자꾸 이승을 떠나가는 벗들 보고 있노라니 이십 년전 나의 중병치레 때도 생각나서 정신이 버쩍 납니다.

12년째 되는 산골 신화미술관을 요즘 코로나19 시대라고 더 방치해두었는데 쉬면 또 뭐하나 싶어서 주제를 보강할 작품을 했습니다. 가마도 불 때서 신작도 했습니다. 흙을 빚고 다듬고 바람에 말리고 불을 때면서 화부가 되었습니다. 흙, 물, 바람, 불, 그 원형질이 내 성질의 독기를 다 빼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룬 기술들이 평범한 일상을 풍요롭게 할 것을 압니다. 내가 성취한 미적 기술들이 평범한 일상을 더 아름다운 평범으로 만들어 줍니다.

아름다움이 가난한 삶을 가난의 초월로 이끕니다. 무명으로 절제하는 일상이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나는 요즘 매일매일 청빈하게 일상을 사는 게 고마운 평화입니다.

내가 사는 터를 정성껏 가꾸고 오시는 분들 맞이할게요. 외출을 자제하는 대신, 손님이 언제든 내 일상으로 편하게 찾아주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코로나시대는 내가 편안해야지 오시는 분도 편안하게 오시니까요.

▲ <신화미술관 신작 앞에서> 2020 테라코타

* 김봉준(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2019 '김봉준미술40년 기념전'. 갤러리 미술세계
2019 '시점'ㅡ'1980년대소집단미술운동 아카이브전' 초대. 경기도립미술관
2019 '오월의 통곡' 개인전. 광주 메이홀 초대전
2018 '민중미술과 영성전' 서남동목사탄생100년기념사업회, 연세대박물관.
2018 '아시아판화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1982 미술동인 '두렁' 창립, 걸개그림 목판화 미술운동 주도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봉준 시민통신원  sana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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