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N을 연장구독 했습니다.

- 사라져가는 종이매체에 대한 향수(鄕愁) 김해인 주주통신원l승인2020.08.11l수정2020.08.1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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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부장님께,

오늘 말씀대로 잡지 N의 구독을 연장하였습니다. 아내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펼쳐보지도 않은 잡지가 쌓여가는 걸 보면서, 아내는 딱 한 번 읽지도 못하는 걸 왜 자꾸 구독하냐고 얘기했었습니다. 오늘의 구독이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아내는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겠지요.

부장님께서는 샘터라는 잡지를 아시는지요? ‘부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밝고 깨끗한 여성의 목소리가 ‘고객님’하고 전화에서 말씀하셨을때는 조금 당황했었지요. 내가 생각하는 나이가 맞다면 부장님은 ‘샘터’라고 말한다면 ‘들어보기는 한 것 같네요’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어른을 위한 정채봉님의 동화가 있고, 소설가 최인호의 ‘가족’이 오래도록 연재되던 그 때, 저는 외삼촌의 서재에서 꽂혀있던 샘터를 읽었습니다. 법정스님의 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덜 자랐던 제가 이해하기는 무리였을까요, 기억에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도 샘터를 떠났습니다. 샘터를 도움닫기 삼아 자라버린 생각들은 동화가 말하는 바를, ‘가족’에 깔린 평범한 일상을 ‘정형화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 정형성은 저를 자극하지 못했고, 피끓던 저는 뭔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은 넓었고, 알아야 할 것은 많았기에 저는 손에 닿는 대로, 닥치는 대로 뭔가를 알려고만 하면서 세상을 더듬었습니다.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렵다’고 누군가 말했었는데, 그 고루한 문장이 쉰을 바라보던 때에야 마음에 닿을 줄은 몰랐습니다. 눈으로 바라보던 문장들은 마음을 갈아 뿌리를 내리고, 천천히 그 열매를 맺나 봅니다. 마음이 깊지 않으면 곧잘 뿌리를 내린 것들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쉬이 스러집니다. 샘터를 떠난지 한참 뒤, 충동적으로 잡지 N을 구독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그건 향수(鄕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객지 생활에 심신은 닳아 있었고, 누구도 신문이나 잡지를 펼치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조그만 화면에서 눈을 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긴축을 주장했던 보수적 거시경제학이 퇴조했고 재정 확장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가 지배적으로 되었습니다. 특히 중앙은행이 정부의 국채를~”하는 유형의 문장을 읽지 않으려 합니다. 코로나로 일이 없어서 길어진 휴가, 저는 휴가 내내 유튜브를 보며 지냈습니다. 거시경제학과 케인즈, 중앙은행은 도표와 초상화, 통계그래프로 묶여서 1분내에 설명을 전달합니다. 거기에는 구독자를 배려한 지나친 친절이 넘쳐납니다. 친절에 익숙해지면, 젓가락질을 스스로 배우지 못한 아이처럼 결국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힘겹게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 기록은 입으로, 그리고 문자로 전승되었다. 영상은 입과 문의 힘을 넘어서서 오래도록 이어질까..

K 부장님,

두 번씩이나 전화가 걸려왔기에 결국 작업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장님이 ‘잡지 N’이라고 밝혔을 때, 저는 쉽게 구독에 동의하였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개인 구독도 계속 해주셔야해요‘라며 긴장풀린 목소리로 환하게 말씀하셨지요. 그래요, 저도 기뻤습니다. 코로나로 꺾여버린 저도, 꺾여버린 사람들을 매일 대해야 하는 부장님도, 놓치면 사라질 것 같은 종이매체의 마지막 옷자락을 기쁘게 붙잡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살아온 습관이거나, 혹은 과거에 매달리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라는 옛 시조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부장님의, 그리고 잡지 N의 젊음에만 무거운 돌을 지워서 그저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어떤 흐름들은 사람이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여부가 분명해질 때까지 누군가는 흐름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배움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버린 제게는 ‘지켜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조차 버겁기만 합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다시 부장님의 혹은 잡지 N의 다른 누군가의 전화를 받게 되겠지요. 그때에는 모든 것이 더 명확해졌길 기대해봅니다.

건강하십시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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