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97] 싱가포르의 무라타 전자-1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8.17l수정2020.08.1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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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방문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라타 전자 말레이시아’에서 실제 테스트를 위한 물량을 주문했습니다.

스틸 볼의 품질은 얼마나 고르게 원형에 가깝냐(진구도)에 따라 결정되더군요. 예를 들어 지름이 3mm인 작은 볼을 주먹만 하게 확대하면 찌그러져 있거나 표면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맞추고, 연마과정에서 오차는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지만 진구도 때문에 Grade를 올리지 못하는 공장들이 많았고, Grade에 따라 가격 차이도 크게 납니다.

다행스럽게도 요구하는 볼의 Grade가 높지 않았습니다. 볼 생산 공장에서는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했기에 무라타에서 추가로 요구한 물량을 생산하여 납품하고 기다렸습니다.

사업도 한 생명처럼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인가 합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고, 숙명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기다리는 건 익숙했지요. 그래도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지나가도록 연락이 없자 담당자인 아만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변화가 있었답니다. 스틸 볼을 이용한 도금 공정을 일괄 싱가포르에 있는 무라타 전자로 옮기기로 했다며, 사용할 물량도 훨씬 많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소식도 주었습니다. 그동안 무라타 말레이시아에서 테스트한 자료와 결과도 모두 싱가포르로 보냈으니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기다림의 대상이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옮겨졌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또 2개월 넘도록 연락이 없습니다. 아만다에게 다시 연락했습니다. 아만다가 싱가포르 담당자와 통화를 직접 했다며 설비 변경과 정비로 조금 늦어지고 있답니다. 구매담당자가 Peter Goh라는 사실과 연락할 전화번호를 주면서 안심시켜줍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Peter Goh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그 후로도 2개월여가 지나서였습니다. 두 번째 샘플 오더를 받아 납품하고도 반년이 지나서야 구매의사를 담당자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다가 담당자도 만나보고 제가 성의도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싱가포르로 갔습니다.

싱가포르는 다리 건너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가구 사업을 하던 친구(현재 영국 거주)를 만나러 갔다가 그 친구 차로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에 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                   출처 : 위키백과

싱가포르는 법이 잘 지켜지는 나라로 세계적인 부러움을 사고 있지요. 미국 젊은이가 자동차에 스프레이를 뿌렸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다는 예전 기사 다 보셨지요? 법원에서는 태형(곤장) 100대를 선고합니다. 미국에서는 자국민이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야만적인 형벌을 받는다고 들썩였고,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총리에게 선처를 구했지만 50대를 맞고 풀려났지요.

저를 태우고 온 친구가 볼일이 있다며 아파트 비슷한 단지에 들어가 주차를 하더군요. 주차요원도 없고, 통제 바도 없는데 입구의 조그만 박스에서 기다란 용지를 꺼내 차량번호와 입 출차 시간 등을 정확하게 적은 후 박스에 넣더군요.

길가나 공원 주변에 주차 표시가 없어도 틈만 보이면 주차를 하는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대만 등에서 살아온 저는 신기하여 그 친구한테 물었습니다. “널찍하게 비어있는 공간에 잠시 주차했다고 누가 뭐래? 너무 야박한 거 아냐?”

그 친구 왈, ‘이곳에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도 많고 다음엔 아예 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법을 잘 지키고 수준이 높아도 범죄자는 있고, 교도소도 주변 섬에 있다고 하더군요.

1990년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다리는 평일에는 국경을 건너 일하러 가는 말레이시안 인력으로 가득 차고, 주말에는 쇼핑하러 떠나는 싱가포르인으로 북적였습니다. 그들은 자동차 트렁크에 물건을 가득 채우고 연료통에 휘발유도 가득 넣고 돌아오지요.

국가이건 가정이건 이웃은 말로만 사촌이지 사실은 가까울수록, 많이 알수록 알력도 많아지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잘 사는 쪽에서 좀 더 겸손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하겠지요.

말레이시아인은 싱가포르 덕분에 일자리를 얻지만 현지인과 다른 대우에 불만이 있고, 싱가포르인은 충분한 조건에도 불평하는 그들이 못마땅합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교육환경과 비즈니스를 자랑하는 도시이지만 물가는 엄청 비쌉니다. 세금도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현대자동차에서 아반떼 이전 모델로 엑셀이라는 차가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그 차가 보이기에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도시형 국가라서 자동차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많은 세금을 물린다고 알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1,00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자동차가 현지에선 4,000만 원을 줘야 산다고 하더군요.

싱가포르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말레이시아가 쥐고 있는 카드가 한 장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정수한 수돗물이 다리 밑으로 연결된 수도관을 통해 싱가포르인들의 식수로 사용되지요.

▲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가상의 동물.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인어(물고기)인 머라이언   출처 : 위키백과

싱가포르는 말레이연방 소속으로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인구 대부분이 화교인 싱가포르가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독립국이 됩니다.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 2대 고촉통(吳作棟)에 이어 현재는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이 3대 총리를 하고 있지요. 2015년 리콴유가 세상을 떠난 후 2남 1녀가 치열한 재산분쟁으로 종종 세계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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