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이도(牛耳島) 선소

우이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한 도서이다. 이곳의 선소(船所)는 우이도의 진리에 있으며 영조 21년(1745) 3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시설을 했던 것은 섬에 선재목이 많았으며, 먼 바다에서 연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어 이곳에서 바람을 피하거나 기다리기도 하였으며, 식량이나 식수 등을 조달받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곳 선소의 선착장을 지역민들은 우이도 선착장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길이가 63.3m, 높이2.2~3m, 폭1.6m 정도이며, 형태는 산의 경사면에 반하여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다. 선창 안에는 배만 정박을 한 것이 아니고 인근의 야산에서 굵은 소나무를 베어다 배를 건조하고, 배를 만들 재목을 저장해 두기도 하였다.

선창의 북쪽으로 약 5m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선창의 중건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의 규모는 높이 95cm, 폭 40~46.8cm, 두께 10.6~ 11.2cm, 밑폭 40.5cm이고 위로 올라가면서 넓어져 위의 폭이 46.8cm이다.

                       

▲ 우이도 선창(출처: 해양유물전시관)

 

▲ 우이도 선창(출처 광주일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글씨들이 많이 훼손되어 식별하기가 어려운데 다행이도 마을 주민 문채옥 씨가 비문을 적어두어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

문채옥 씨는 화주 중 한사람인 문일장(文日章)의 8대손이다.

내용인즉 1745년 3월에 마을 주민 김하승(金夏昇) 등 21명이 시주하고 최두산(崔斗山) 등 4명의 화주(化主)가 집행하는 일을 맡아서 비를 세웠다. 석공(石工)은 김해선(金海先)과 승려 랑진(郞眞)이고, 야공(冶工)은 김와룡(金臥龍)이 맡았다.

이 선착장은 그 형태가 완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포구의 시설로 잘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창은 단순이 배만 접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바람을 피하기도 하고 배도 만들고 수리도 하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바다를 항해하다가 배가 수리해야 할 일이 생길 경우 이러한 곳에서 수리 등을 하고 다시 항해를 하는 일종의 수리소 성격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곳들이 이곳 우이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도서로 형성된 전남의 서・남해에는 여러 곳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곳들을 더 늦기 전에 찾아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면: 船艙功積碑

施主

金夏昇, 金乙丑, 黃重良, 金首鶴, 朴百萬, ○○○, 金成甲, 高干唐, 朴三哲, 趙玉先, 李明元, 金良昌, 尹發○, 安莫先, 蔡先宗, 金永世, 安萬均, 姜○○, 高斗山, 金敍元, 金重兌

 

化主

崔斗山, 文日章, 崔聖弼, 李尙遠

 

후면: 羅州牛耳船艙重建碑

乾隆 十年乙丑三月

刻字

石工 金海先, 僧 郞眞

冶工 金臥龍 이상과 같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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