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들은 내가 이제껏 어울렸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였다. 그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법정으로 가서 즉결심판을 받았다. 즉결심판이라는 것은 강력범죄가 아닌 사소한 질서문란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정에 세워 놓고 지엄한 판사가 호통을 치면 범법자는 잘못을 반성하고 선처를 구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는 약식 재판이었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의 태도를 보이면 가벼운 벌금형을 맞는데, 그 벌금을 내면 바로 석방이 되는 식이었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은 금방 달려와서 벌금을 내고 나를 데리고 나왔다. 형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형은 말은 안 했지만 오히려 잘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와는 기질이 아주 딴판이었던 형은 어릴 적부터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나는 평생을 부모에게 순종하고, 집과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늘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였지만, 형은 공부를 싫어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툭하면 일을 저질렀고, 늘 부모님에게 미움을 받고 야단을 맞으며 자랐다.

한 집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던 형은 범생이였던 내가 구치소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내심 반가워할 이유가 있었다. 형은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형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처럼 바르게만 살 수는 없다고. 그러니 형은 부모님께 절대로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지만 부모님이 형을 덜 미워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가끔씩 삐뚤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여태껏 형의 그런 기대에 응해준 적이 없었던 나는 이제야 비로소 형을 도울 수 있게 됐다. 형이 그 사건을 반길 만한 또 다른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이제 형이 살아왔던 세상에 한쪽 발을 들여 놓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나는 형의 입장이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내 몸에도 때가 묻었으니 형제간에 최소한 공통분모가 드디어 생긴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형은 잘못한 게 많고 나는 잘한 게 많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보는 안목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 등은 형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낫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세상을 바르게 살았다는 것이 꼭 잘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정에서 나온 대로 출근을 하자 뚱땡이 아가씨가 가게로 찾아왔다. 어제 나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깨를 움츠리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거푸 사과를 했다. 나는 놀라게 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사람은 나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 마음 편히 가지라며 아가씨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우리 건물 지하에도 커피숍이 생겼었는데, 어느 날 그 아가씨가 거기서 나를 보자고 전화를 했다. 커피숍에 내려가 보니 아가씨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다른 데로 가게 되었다며 작별 인사를 하려고 나를 보자 한 것이었다. 거기서 그 밖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아가씨는 시종 상기된 모습이었고, 나는 덤덤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렷이 떠오르는 부끄러운 기억은, 정말 창피하게도, 얼떨결에 지갑도 없이 내려간 나는 커피 값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나오려 한 것이었다. 앞장서서 다방을 나오려는데 그 아가씨가 뒤에서 작은 소리로 '오빠' 하고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천 원짜리 몇 장을 조심스럽게 내밀며 '오빠가 계산을 해주세요.' 하고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그 귀여운 아가씨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켜주지 못했다. 어쩌다 그 일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얼굴이 화끈해진다. 나는 그런 순진한 아가씨 연정을 받을 자격이 눈꼽 만치도 없는 놈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지나서인지는 몰라도 서울 당산동에 있던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겨우 여섯 달도 다니지 못하고 다시 그 가게로 돌아왔지만,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니 기분이 좋았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니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더라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변변치 못하게 지내던 시절에 어머니 마음이 어땠었는지 새삼 궁금하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물을 수도 없다.

그 직장을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퇴근 후에 형의 가게에 들렀다. 그날도 정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이 그 뚱땡이 아가씨를 어느 다방에서 봤다고, 보러 갈래냐고 물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뜸 그러자고 했다. 그때는 아마도 그 아가씨가 떠난 지 2년까지는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형을 따라서 화서동 어느 지하 다방으로 들어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 짧은 시간에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 살은 많이 빠졌고, 피부도 거뭇해진 것 같았으며, 전처럼 명랑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소녀티가 눈꼽 만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엔 나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이내 마음의 문이 딸깍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녀는 전처럼 웃지 않았다. 전에는 그녀의 큰 가슴과 나를 향한 마음이 바로 내 코앞에 있었고, 그럴 때 그녀는 늘 상기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내쉬며 명랑한 참새처럼 두서없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마음은 태평양 건너에 있는 듯 멀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이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면식이 있는 정도 사람을 보는 눈빛에 불과했다. 그녀는 차 주문을 받고는 이내 다른 손님에게로 가버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기대했어야 했을까. 의외로 냉담한 그녀 반응에 머쓱해진 우리 형제는 식은 커피만 마시고 다방을 나왔다.

선을 보거나 소개 받은 여자 중에 결혼을 하자고 한 여자들도 있었다. 그녀들 요구를 거절할 때도 물론 미안한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미안함이었고, 그 다방아가씨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큰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안쓰럽고 뻐근하다. 마치 예쁜 꽃을 그냥 지나친 것이 죄인 것처럼. 그래서 꽃을 시들게 한 것처럼. 그 아가씨는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그 아가씨는 그 때 왜 나를 좋아했을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지신 주주통신원  jssy0806@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