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한반도 역사상 최장기 수배자는 누구일까? 해월 최시형이다. 해월은 1864년 수운 최제우의 처형 이후 도피를 시작하여 조병갑의 사돈 심상훈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되어 재판 받고(판사 중 1인이 조병갑이었다.) 처형당하는 1897년까지 34년간 대부분의 세월을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 늘 보따리를 옆에 준비해 두고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살아야 했다. 주변 제자들 역시 고난의 세월을 함께 겪었는데 1891년 충주 외서촌 보뜰(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로 이사해 무너진 집을 보수하면서 늘 쫓기며 긴장하는 곤궁한 삶이 피곤했을 제자 신재련이 푸념 섞인 소리로 물었다.

“우리 도의 운세가 어느 때에 태평해 지겠습니까?”

해월이 답했다.

“모든 산이 검게 변하고 모든 길에 비단이 깔리고 만국과 더불어 통상할 때가 그 때이다”

다른 제자가 재차 물었다.

“그때를 알려주는 어떤 징조가 없습니까? 대체 개벽세상은 언제 옵니까?”

“우리 땅에 들어왔던 만국병마가 스스로 물러가는 징조가 있을 것이다.”

 

동학도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개벽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서울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우리 동네 국회의원 나으리는 건설회사가 다섯 개, 집이 네 채, 재산이 600억에 가깝다. 갑과 을의 격차가 점점 심각해지는 가운데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과 친구 먹는다는 허풍쟁이가 개신교를 장악해서 분단고착을 위해 용을 쓰고 있다. 사윗감 일등 후보 의사들이 의사증원을 반대한다며 면허증을 찢는다.

동학도들이 원했던 개벽세상은 어떤 것일까? 학생들 질문뿐만 아니라 앞으로 벽화를 보며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마을회관 앞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옳지. 동학노래를 적은 오른 쪽 해바라기에게는 미안하지만 몇 개를 하얀 페인트로 지우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자.

▲ 개벽세상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해바라기 몇 개를 하얀 페인트로 지우고(미안해~) 분필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청산에 이사와 이곳이 갑오년 혁명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고 바로 팀작업을 시작하여 2015년 ‘여성의 눈으로 본 동학다큐소설13권’을 출간했다. 아름답고 귀한 동학도들을 싸그리 학살하고,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1945년 패망까지 아시아인 수천만 명을 학살한 일본은 그들이 생산하게 된 신식무기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미소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 세계의 군비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전쟁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무기산업체들 때문이다. 수백 명의 무기회사 로비스트가 미국의 여야 정치인들을 옭아매고 있다고 하니 무기와 전쟁으로 이윤을 얻는 구조가 크나 큰 문제다.

2015년 12월 책 출판을 앞두고 내 몫 분량을 먼저 끝낸 나는 평화어머니회를 조직하여 6.25일부터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북미간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남북군인 모두 어머니 자식’이라는 구호와 김봉준 화백 그림을 감사히 사용했지만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로고를 만들었다.

▲ 평화어머니회는 초기에는 김봉준 화가가 허락해 준 그림으로, 이후에는 꽃대포를 그려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 마을회관 벽에 꽃대포를 그리자. 개벽세상은 총과 대포를 서로에게 들이대지 않는 세상이다. 자기 안에 하늘이 있는 것처럼 타인 안에도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귀히 여기는 세상이다.

일제시대를 지나며 온통 헐벗었던 산은 이제 모두 검어졌다. 방방곡곡 도로가 포장되어있고 와이파이가 깔려 세계의 사람들이 삽시간에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나라간의 교역은 물론이고 휴대폰으로 개인이 외국의 물건을 주문할 수 있고 세계각지에서 물건이 배달된다.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미국의 대통령에게 문자도 날릴 수 있다. 통역가, 번역가도 넘쳐난다. 분쟁을 조정하는 기술들도 많이 발달되었다. 소통할 수 있는데 왜 무기가 필요하랴? 전쟁을 부추기는 무기회사는 다 망해버려라!

▲ 개벽세상이 언제 오냐는 제자의 질문과 해월의 답변도 적어넣었다. 개벽세상은 만국의 병마(군대)가 물러가고 대포에서 꽃만 나오는 세상이다!!!

 

세상의 군사주의가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남북이 3년 싸웠다고 70년 분단되어 서로를 증오하는 게 말이 되나? 소통은 힘이 세다. 분단고착세력은 가라. 무기를 생산하고 수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들을 모두 교육, 복지, 문화에 투자해 보라.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개벽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새마을 지도자 백샘이 풍물그림을 원했으니 오른쪽 대포 위에 그려보자. 해월의 손자 정순철의 청산탄생이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니 왼쪽에는 정순철도 그려보자. 혁명하러 떠난 남정네들을 위해 여인들은 장독대 항아리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빌었을 터. 그 간절한 정성을 우리도 계속 쏟아보자. 개벽세상이여, 평화세상이여, 대포에서 꽃만 나오는 세상이여, 어서 오시라~

▲ 백샘이 원하는 대로 풍물하는 사람들을 우측에 추가로 그렸다. 좌측에는 항아리 위 정화수와 청산에서 태어난 해월의 손자 정순철을 추가했다.

 

김정자씨네 막내 아드님이 페인트 통을 가지고 들어가더니 집 안에 김춘수 시를 적고 꽃을 그려 넣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오호... 진짜 시가, 이야기가, 역사가 숨쉬는 벽화마을이 되어가는 걸. 아드님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바깥벽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떠났다. 여기엔 무얼 그려드리나. 쥔장이 보라색을 좋아하시니 여기엔 포도덩쿨을 그리자!

▲ 김정자 할머님댁 벽에 막내아드님 박종민님이 쓴 김춘수 시인의 '꽃'. 아무렴, 우리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질 때 그는 꽃으로 존재하게 된다.
▲ 보라색을 좋아하시는 집주인 김정자씨를 위한 선물 ^^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 11)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2) 생뚱맞은 파도타기?
13) 남다르게 사는 최 씨네 이야기
14)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고은광순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