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 역> 근처에 조성된 <김유정 문학촌>. 근처에 김유정 생가마을이 조성돼 있다. (출처 : 하성환)

<동백꽃>을 쓴 작가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29살에 요절했다. 죽기 11일 전 휘문고보 시절 자신을 문학으로 인도한 절친 안필승에게 편지를 썼다. 돈을 좀 보내주면 그것으로 닭 30마리를 고아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땅꾼에게 부탁해 살모사 구렁이 10마리를 고아 먹으면 살아날 거라며 결국 그놈의 '돈, 돈, 돈'을 외치며 슬픈 현실을 한탄했다.

▲ 김유정 문학작품 속에 담긴 아름다운 토박이말(출처 : 하성환)

김유정은 소설 속 순박한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 토박이말을 아름답게 구사한 작가이다. 쌩이질(바쁜데 쓸데없이 괴롭히는 짓), 감때사납다(매우 험상궂고 감사납다), 들피지다(굶주려서 몸이 야위고 기운이 없다), 잡도리(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루는 것), 뽕나다(비밀이 드러나다), 단작맞다(하는 짓이 치사스럽다), 후무리다(남의 물건을 슬그머니 훔쳐가지다), 항차(하물며), 재우치다(빨리 몰아치거나 재촉하다)... 모두 김유정이 지은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순우리말이자 토박이말이다. 오늘날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유정은 20대 젊은 날 명창 박녹주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완전 스토커 수준이다. 기생 박녹주가 타고 가던 인력거를 향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지만 차갑게 딱지만 맞았다. 상실을 딛고 다시 마음에 두고 좋아했던 또 다른 여성은 어느 날 시집을 가버렸다. 하필 시집을 간 곳이 김유정이 가입한 문학동인 ‘구인회’ 소속 문학 동료였다.

27-28살 한창 나이에 받은 그 때의 충격과 슬픔, 그리고 젊은 날 좌절은 아마도 김유정의 몸과 마음을 일거에 무너뜨렸던 것 같다. 그런 절망과 상실의 마음을 잊기 위해 김유정은 더욱더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폐결핵으로 망가져가는 몸을 추스르기보다 상실과 절망을 딛기 위해 작품 활동에 자신을 내던졌다. 결국 김유정은 서른도 채우질 못한 채 이승을 떠났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3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병마와 고투 속에 남긴 인간 승리이다.

어눌한 말더듬이 김유정! 코다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흥얼거리며 밤길을 돌아섰던 그였지만 김유정이 남긴 작품은 우직할 정도로 순박하고 해학으로 가득하다.

▲ <김유정 닭갈비> 집에서 바라본 <김유정 역>(출처 : 하성환)

‘김유정 닭갈비’ 집에서 ‘김유정 역’을 바라보았다. 맞은 편에 ‘김유정 우체국’이 서 있다. 그리고 ‘김유정 문학촌’이 ‘김유정 생가’와 마주보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국밥집도 ‘김유정 국밥’집이다. 아무래도 지자체가 관광사업 차원에서 김유정을 브랜드화한 느낌이 든다.

▲ 유럽풍 정원을 연상시키는 <제이드 가든> 수목원 (출처 : 하성환)

‘제이드 가든’은 ‘아침 고요 수목원’처럼 아름다운 숲으로 우거진 공간이다. 그런 만큼 데이트하기 안성맞춤이다. 없던 사랑도 생겨날 분위기였으니까. 어눌한 말더듬이 김유정이 박녹주를 이 숲으로 초청해 말없이 같이 걷기만 했어도 박녹주는 마음의 문을 열었을 것같다.

어스름한 저녁에 예약해 둔 ‘햄릿과 올리브’ 펜션으로 향했다.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아기자기한 컨셉으로 젊은 여성들 취향에 맞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 <햄릿과 올리브> 펜션 창문으로 바라본 바깥 풍경. 그림 같이 아름답고 환상적이다.(출처 : 하성환)

창문을 통해서 본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저녁 한식으로 우리 일행을 맞아준 주인장 부부가 베푼 성찬과 친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손수 텃밭에서 가꾼 채소와 나물이며 친환경 식자재로 정성을 들여 차린 저녁식사는 매우 훌륭했다.

▲ 손수 가꾼 채소와 친환경 식자재로 성찬이 된 저녁 한식(출처 : 하성환)

본채 식탁 주변은 책과 와인으로 장식돼 있어 한껏 운치를 더해 주었다. 멋스러움은 아마도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아침에 주인장 부부가 권해 준 의암호 스카이워크 주변 산책길은 아주 만족스럽다. 아내와 1km를 좀 넘게 걸으며 풍경에 취했다. 너무나 조용해서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와 가볍게 정리한 뒤 곧장 춘천 시내 죽림동 성당으로 향했다. ‘햄릿과 올리브’ 주인장 부부가 얘기한 대로 성직자 묘역은 아주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 춘천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 추모비(출처 : 하성환)

35살 그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종이 되어 순교의 피를 흘린 묘비명 앞에 발걸음이 멈춰 섰다. 6 ․ 25 전쟁 통에 ‘목자로서 어린 양들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 며 순교한 분들이 보여준 신앙 앞에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부끄러움이 일었다.

▲ 춘천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에 안치된 순교자 묘비(출처 : 하성환)

위기의 순간에도 오롯이 하느님께 바쳐진 삶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이역만리 머나먼 이국땅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그분들 삶은 순명이었다. 그 죽음 앞에 숙연함은 내내 가슴 한켠에 남아 길 떠나는 우리를 사로잡았다.

‘상상마당’에선 치어리더들이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연습에 열중이다. 점심으로 고대하던 순댓국을 먹었다. 서울 순댓국과 맛이 다르다. 오랜 시간 깊이 고아낸 국물 맛이 일품이다. 작은 땡고추조차 맵지 않아 특이했다. 바쁘게 차려지고 사라지는 서울 순댓국보다 속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춘천 순댓국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점심을 해결하고 곧장 국립춘천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금번 춘천기행의 목적이었던 창녕사 발굴 ‘오백 나한상’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갖가지 다양한 얼굴들이 우리네 인생을 되비추는 듯 순간순간 생각에 잠기게 한다.

‘김유정 문학촌’과‘제이드 가든’ 숲길’, 그리고 ‘햄릿과 올리브’ 펜션과 의암호 산책길, 마지막으로 ‘오백 나한전’과 천주교 ‘성직자 묘역’은 오랜 만에 느끼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거친 도시생활을 벗어나 다시 가보고 싶은 ‘춘천 기행’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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