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98] 싱가포르의 무라타 전자-2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8.30l수정2020.08.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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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Goh가 예약해준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 날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갔습니다.

편리한 교통과 깨끗한 도시로 여행객도 많이 찾던 싱가포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일인당 국민 소득은 항상 상위에 속한 나라입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면적은 원래 서울보다 작았으나 간척사업으로 계속 확장하여 서울보다 넓고 인구는 대략 절반정도입니다.

▲ 무라타 전자 싱가포르 전경

도시국가라서 무슨 공장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도심을 벗어나니 의외로 한적한 곳이 나오더군요. 이순 로드에 위치한 무라타 공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던 Peter Goh가 함께 자리한 동료를 소개합니다. 인사이동을 통해 Peter Goh가 승진하고 후임 자재관리부장으로 내정된 C. K Soh입니다.

점심을 먹으며 사적인 대화를 하는데 제가 무라타를 잘 모르자 한국의 LG와 경쟁하는 업체라고 하는데 뜨악해지더군요. 제가 아는 자동차 회사 이름이나 일본의 수많은 전자회사 이름 중에 무라타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전문 전자부품 생산 업체로 세계적인 회사이며, 일본 내 30대 재벌기업이고, 한국에도 무라타 지사가 있는 대기업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당시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어서 골프용품과 의류 등이 한국보다 싸더군요. 또한 글로벌 회사의 아시아 총본부가 가장 많은 곳도 싱가포르였습니다.

제가 싱가포르를 방문한 후에는 C. K Soh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업체 실사를 해야 한다며 C. K Soh와 젊은 일본인 직원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제 사무실은 15평형 오피스텔이니 실 평수는 절반 정도, 책상 4개를 가운데 붙여놓고 영업사원 한 명과 자기 사업하겠다고 나온 친구 두 명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스틸 볼을 생산하는 공장 사장은 대만 Mr 정과 함께 국내 스틸 볼 업체를 방문하던 중 ‘H 정밀’이라는 곳에서 영업 부장했던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회사를 나와 자기 공장을 차리려고 준비하던 터라 제 명함을 가지고 있다가 몇 개월 후에 찾아왔었지요. 자기가 소형 스틸 볼을 전문으로 생산할 테니 팔아주면 적극 돕겠다고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샘플은 전화와 팩스로 연락을 취하고, 제품이 완성되면 제 사무실로 가져와서 제가 공장을 방문했던 적은 없습니다.

그동안 상대하던 대만 사람과는 친구처럼 형처럼 감출 것 없이 편하게 지냈었지요. 저 스스로 기억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임기응변이 뭔지도 모르고 사는지라 괜히 입력이 꼬이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는 인간입니다. 할 수 없이 터득한 생존 방식이 단순하게 살자!

있는 대로 보여주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C. K Soh와 일본인 직원을 데리고 먼저 공장으로 갔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그려준 약도만 가지고 부평구 청천동이라는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초등학교 때 살았던 남산 아래 해방촌보다 더 올라가는 낙후된 곳이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축사와 같은 허름한 건물이 나누어져 있는 데 좁은 곳은 사무실 겸 불량품을 고르는 아주머니들이 있고, 문도 없는 다른 좀 넓은 곳에서는 철삿줄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있고, 한쪽에서는 맷돌과 유사한 설비가 있어 자동으로 돌고 있었습니다. 맷돌에는 일정한 홈이 있어 커팅한 볼을 넣고 돌리면 둥글게 연마(Grinding)가 됩니다.

맷돌에서 연마할 때 수시로 크기를 잽니다. 원하는 크기가 나오면 연마를 멈추고 열처리를 해서 경도를 맞추지요. 열처리하면 시커멓게 변합니다. 그걸 다시 연마(Polishing)하면 광택이 나는 매끄러운 볼이 됩니다. 이 볼에 녹 방지 코팅을 해서 수출하면 됩니다. 공장 내부를 둘러봐도 열처리 시설은 보이지 않고, 그저 철사를 일정하게 자르고 맷돌로 가는 공정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직원이 마당 한편에 있는 엉성한 칸막이를 밀고 들어가더니 금방 돌아 나옵니다. 나도 들어갔습니다. 전방 GOP에서 근무하던 80년도 겨울이면 똥 막대기로 탑을 무너뜨려야 다음 사람이 안전하게 엉덩이 까고 볼일을 봤었는데, 이곳은 똥 막대기도 없이 발판 위로 탑이 올라왔네요. 부처님! 똥 막대기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공장 사장과 서둘러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여직원도 없는 제 사무실로 와서 이야길 나눴습니다. 사무실의 두 친구는 각기 다른 회사 명함이라 못 건네고 인사만 했습니다.

C. K Soh와 일본인 친구는 회사에 보고서를 써야 하니 그래도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틸 볼 내수는 관여 안 하고 수출만 책임진다는 등등의 답변을 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두 명이나 말 그대로 누추한 곳을 방문해준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렇다고 주제넘은 접대를 할 형편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제가 먼저 술 한잔하자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거 같습니다.

명동과 남대문 시장은 대만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이라 명동역에서 남산 방향으로 있던 퍼시픽 호텔은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곳에서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한 두 명의 여자 도우미를 합석시켰습니다. 무대에서는 노사연 최백호 등이 노래를 부르는 걸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술자리가 생각보다 즐겁기도 하더군요.

C. K Soh를 통해 출장 보고서는 일본인이 쓸 거고, 내용은 ‘현재 공장의 설비나 환경은 미흡하지만 성실하게 우리가 원하는 품질과 물량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로 평가한다.’라고 보고하기로 합의를 봤다는 말을 미리 들었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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