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보성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순신과 보성의 인연은 이순신 생애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이 장인이 된 사연, 따라서 방진의 외동딸을 부인으로 맞이한 일, 임진왜란 때 아들 훈(薰)을 보성에 맞겨 둔 일, 정유재란 때 보성 열선루에서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상서를 올린 일,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게한 원동력이 된 보성에서 얻은 병력, 병기, 군량미등은 이순신 행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들이다. 보성군에서는 보성의병사(寶城義兵史) 3권을 발간했는데, 그 중 제1권 인물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순신은 덕수이씨 족보 보성수단(寶城收單)에 기록되기를 임진왜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보성에 어린 자녀들을 맡겨둔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보성 ⌜덕수이씨보(德水李氏譜)⌟ 수단(收單)에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직전까지 보성군에 있었던 구가舊家를 피난거처로 사용하였다. 1935년 재간된 ⌜이충무공전서⌟에는 보성군에 이순신 처가가 그대로 있었으며, 이순신이 지니고 다니던 ‘오돌개’가 이곳에 유품으로 보관되어 있는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는 이순신의 처가인 방진의 고택이 1935년 일제강점기까지 보성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하여 더러는 증거자료에 의문을 갖고 있기도 하여, 이 책 내용을 감수했던 분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여기에 제시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 완역 이충무공전서 하(이은상 역)

         
         

▲ 완역 이충무공전서 하권 p356 증거자료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전종실 주주통신원  jjs62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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