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가을은 사랑이다

귀할수록 홀로이고 높을수록 쓸쓸하다. 유일할수록 빛나고 빛날수록 주변은 어둡다. 어두울수록 피아구분이 어렵고 밝을수록 피아가 뚜렷하다. 명암(明暗)은 누가 찾고 누구에게 유리한가? 다수가 선호하는 귀금속과 명품들도 그렇다. 사실 낮은 곳은 편안하지만 높은 곳은 위태롭지 아니한가? 세상사는 귀하다고 빛나고 천하다고 암울하지만은 않다. 귀천은 병존하기에 상호 적절해야 삶도 윤택하지 않을까?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위하면 살만하지만 이전투구로 경쟁하면 같이 불행해지더라.

음습한 계곡에는 양분이 많아 온갖 동식물이 번성하지만 청량하고 높은 꼭대기에는 양분이 적어 생명들이 거의 없다. 저자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벼 시끄럽고 지저분하지만 삶의 흥이 있고 재미가 쏠쏠하다. 반면 고풍스런 대저택에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깨끗해 품격이 있지만 어우러진 정과 흥이 없으니 삭막하고 고적하다. 한쪽이 오르면 한쪽이 내려가는 것이 인지상정, 어찌 양쪽이 동시에 오르내리기를 바라겠는가? 또한 균형이 어려운 게 세상이더라. 소시민들이 어느 쪽을 택해 사느냐는 본인의 뜻에 달렸지만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어느 정도 권한이 주어지더라. 지혜라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처신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아닐까? 바라고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게 가능하다는 세력들이 있으니 안타깝다. 또한 선한 양들은 선한 종이 되어 이 부정한 세력들을 추종하고 있느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다음은 위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으나 유사상황에서 지어낸 이야기다.

옛날 태화국에 천상천녀라고 칭송 받는 공주가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아름답기가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품격과 우아함도 갖추었으니 가히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이 외롭고 쓸쓸했다. 사람들은 쉬이 그녀에게 다다가지 못했으며, 마주하기를 꺼려했고 피하기까지 했다. 그녀를 만난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고 앞에 서기만 해도 주눅 들었다. 불편했던 것이다. 너무 고귀하여 자신들과 동류의 친근함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그녀의 가슴에 가득했다. 부왕은 공주를 측은히 여기고 지극한 사랑으로 더욱 챙겼으나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새로 맞이한 왕비인 새어머니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주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날로 더해갔다. 이런 환경이 그녀의 언행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격시켰던 것이다.

어느 날 공주는 시녀를 불렀다.

시녀 : 공주님~ 부르셨습니까?

공주 : 그래, 내가 좀 답답하다. 바람 좀 쐬고 싶구나.

시녀 : 예~ 공주님,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공주 : 마차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고 싶다. 가능하겠느냐?

시녀 : 예~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마차는 곧 대령되었고 공주는 마차를 타고 산책에 나섰다. 잘 가꿔진 궁궐 내 공원을 지나 미끄러지듯이 성문을 빠져 나갔다. 평평한 들길을 지나니 숲길로 접어들었는데,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풍겨와 코끝을 자극했다. 순수한 공주는 그 향기에 곧 취해 버렸다. 공주는 더욱 가까이서 향기를 맡고 싶었다. 마차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내미니 진한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열린 창을 통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향기가 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공주는 시종에게 명해 마차를 세우도록 했다.

▲ 출처 : 나무위키. 아카시아 꽃나무.

공주 : 얘야~ 향기가 아주 좋구나. 너도 맡았지?

시녀 : 예~ 독특한 향기군요.

공주 : 향기 나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무슨 나무의 향인지 가까이서 맡아 보고 싶다.

시녀 : 예~ 그럼 걸어서 가시겠습니까?

공주 : 그래야지. 어디 같이 한 번 걸어 가보자.

공주는 시녀와 호위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향기가 풍기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향기는 저편 오른쪽에서 전해오는 것 같았다. 얼마 걷지 않자 더욱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니 하얀 작은 꽃이 줄지어 달린 나무가 있었다. 향기를 품는 나무가 분명했다. 공주는 하도 신기하여 나무 가까이 갔고 손을 뻗어 그 꽃을 만지려했다. 그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공주의 손에 닿았다. 나무의 가시에 찔린 것이다. 그 순간 공주는 '악! 까시야!' 라고 비명을 질렀다. 주변사람들이 듣고 깜짝 놀라서 '공주님! 아카시아요?' 라고 소리치면서 공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이 꽃나무는 ‘아카시아’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 이후로 공주는 아카시아공주로 불렸다. 아카시아 꽃을 사랑한 공주는 궁궐 내외에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고, 봄이 오면 궁궐은 온통 아카시아 꽃과 향기로 뒤덮였다. 마음 둘 곳이 마땅찮던 그녀에게 아카시아는 모든 것이 되었던 것일까?

▲ 9월 첫날 아침. 가을을 불러오고 사랑을 깨우다.

사람은 누군가를 아니 무엇이라도 사랑하지 않고는 참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랑을 해야 사람의 향기를 품을 수 있고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카시아공주는 봄의 이야기였지만 오늘로 가을 문턱에 접어들었다. 9월은 우리들에게 사랑과 결실의 계절이라고 알린다. 그래서 하늘은 높고 바다는 푸르며 대지는 광활한가 보다. 가을은 사랑을 외치면서 사랑하라 명한다. 이 멋진 계절에 사랑하지 않고 어찌 베기겠는가? 사랑을 해야 세상도 아름다워지고 삶도 풍요로워 질 것이다. 잠시 머물고 있는 코로나도 사랑의 힘에 의해 물러가지 않겠는가?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