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조침문(弔針文)을 생각하며

이름을 태희라고 지었다.

‘태희’는 내가 네 번째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리고 태희는 내게 특별했다. 그 아이는 처음으로 ‘온전히’ 나 혼자 소유한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800cc의 자그마한 몸을 타고 고속도로로 나가는 나를 아침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배웅하곤 했다.

주고받는 애정은 가끔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혼자만의 작은 공간을 난생 처음 가진 나는 자주 행복했다. 아침 한 시간, 퇴근길한 시간을 나는 그 아이가 만들어준 공간에서 지냈다. 공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속에서 일관되게 나를 지켰다. 실재로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마음이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나는 광화문의 태극기를 상상하고, 차창에 들어오는 계절을 감상하고, 피스톤을 움직이는 연소(燃燒)와 우둘투둘한 도로의 소음을 새겨들었다. 풍경과 상상, 소음의 기억들은 매일 살아나고, 건너가는 강물에 그 짧은 순간을 매일 마감하곤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영원을 부르짖을 만큼의 자격을 가지려면 저 강물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나는 늘 되뇌었다.

애정은 물에 젖어가는 것과 같다.

애정의 대상은 생명을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가리지 않는다. 보낸 만큼의 애정을 돌려받길 원한다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들은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한쪽에서 한쪽으로의 애정, 그 일방통행성은 무척 이기적이지만 기대가 없다는 점에서 단단하다. 조그만 무욕(無慾)속에 깊어가는 애정은 대게 그러하다.

 

▲ 그래 우리는 사람으로 가득한 여름의 도시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젖은 발이 뜨거운 지면에 남긴 발자국이 금새 사라져 버리는 것도 모르는 채로 / 겨울 호수를 따라 맨발자국이 길에 이어져 있다 /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 황인찬 詩, ‘사랑과 자비’ 중에서)

 

아이는 그제 팔려갔다.

이십만 킬로미터 가까운 시간을 같이 보낸 아이는 몹시 삐걱거렸고 아내의 불안은 더 깊어갔다. 결국 나는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별은 몹시도 손쉽게 진행되었다.

팔려나간 아이는 바로 외국으로 간다고 첨 만난 동년배의 사내는 말했다. 나도 가볼 길 없는 낯선 길에서 아이는 남은 기능을 다하고, 어딘지 모를 폐차장에서 스러질 것이다. 온전한 내 소유였다는 기쁨의, 같이 했던 시간들의 조각은 잠시 팔랑거리다 사라질 것이다.

잘 가거라. 38노6915. 너와 함께 했던 공간의 기억들은 내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으려니, 언젠가 내 삶이 쓰러지는 날까지 그 기억을 놓지 않는 것으로 너를 보내는 글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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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잘 가거라.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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