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기, 거리두기는 통제의 수단일 수 없고, 정부는 껍데기로 전락한 것이 아니다

-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의 '~한국은 코로나 희생양~’류 전면 비판 정영훈 주주통신원l승인2020.09.14l수정2020.09.14 15:3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는 통제의 수단일 수 없고, 정부는 껍데기로 전락한 것이 아니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의 ‘왜 한국은 코로나 공포 속에 희생양으로 선정됐나?’류 음모론 전면 비판

Ⅰ. 서: 그의 칼럼은 본말의 전도, 원인과 현상의 전도

  이만열교수라고 하면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사 대표적 연구자로서 한국 지식인 사회와 기독교계에 대해 비판적 지성인으로 알려진 분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만열교수를 검색하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교수, 한국이름 이만열교수가 나온다. 그 둘을 정확히 구별하지 않으면 한국의 이만열 교수가 낭패를 볼 수 있는 글이 최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한국명 이만열)교수로부터 나왔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로 알려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박사(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언어문화학)가 최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왜 한국은 코로나 공포 속에 희생양으로 선정됐나?’란 제목의 칼럼을 게시했다고 한다. 누군가 그의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가짜 칼럼을 쓰지 않았는지,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겠으나, 필자는 당장 실존적으로 우리 눈 앞에 대두된 이 칼럼의 내용을 문제 삼고자 한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글은 현 정부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라, 기레기로까지 불리울 만큼 기득권 수구세력 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다수 기자들의 신문방송에 널리 오를 만도 하건만, 거의 오르지 않았다. 브레이크 뉴스(https://m.breaknews.com/752212)와 극우 기독교신문으로 알려진 크리스천투데이에 “COVID19 대응, 시민 고립시키고 모욕”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정도이다.

  나머지는 대체로 대한민국 건국 72주년을 강조하는 수구 보수 ‘개’신교인 등이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퍼뜨리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주장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류 반 문재인, 반 코로나방역 주장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 같다. 또한 모든 큰 사건이나 문제를 권력이나 거대 세력(자본 등)의 음모에 따른 것으로 보는 음모론적 주장으로도 여겨진다. 이런 주장을 우리 사회의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분들이 내세우기도 한다.

  필자는 비록 한 필부에 불과 하지만, 촛불혁명을 이루는데 참여한 한 시민으로서, 페스트라이쉬(이만열)교수가 아무리 저명하고, 미국대통령 무소속 후보로 나설 정도의 인물일지라도 그의 경도된 논리를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가 본문에서 말 한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렸을 때 스스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나라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차용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사색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한”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나 ‘스스로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그의 주장의 주요 내용에 대한 필자의 비판 요지는, 그의 칼럼이 ”본말의 전도, 인과 또는 원인과 현상의 전도”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 앞 문단(-지금 한국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은 전문을 비판하겠지만, 뒤 부분 긴 글도 상식적으로 타당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시간 낭비와 수고를 줄이기 위해, 크리스찬투데이에 인용된 내용만 비판하는 것으로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Ⅱ. “지금 한국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비판

  1. “최근 한국의 위협” ?

  그는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발견 할 수 없는 대단한 문화의 깊이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무런 정치 색깔도 없는 사람인데 최근에 와서 한국이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항상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도망가기보다 한국 역사에 나타는 선비정신에 따라서 옛날 임진왜란 때 적들과 싸웠던 의병처럼 우리는 전래 없는 위협과 눈에 보이지 않은 위협, 나라를 희생을 할 위협을 향해서 눈을 열고 싸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한국과 한국 문화는 대단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최근에 와서 한국이 치명적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이라면 문재인 정부, 코로나19국면을 말한다. 최근의 한국이 받고 있는 치명적 위협에 대해 의병처럼 싸우겠다 하니 어떤 경도된 결기가 느껴진다.

 

 2. “지금 한국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 비판

  1) 그는 칼럼에서 “여러분들은 이미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신문, 지하철의 안내방송, 건물 밖의 광고판, 그리고 많은 사회적 지도자들의 성명이 온통COVID19에 관한 것입니다. COVID19 이외의 현안 논의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사적 팬데믹에 따른 대응으로 한국사회에서도 코로나19 관련이 주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COVID19 이외의 현안 논의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할 수 있는가? 이 와중에도 추장관 아들 문제 등 얼마나 쟁점이 많은가?

  2) “COVID19에 대한 대응은 시민들을 고립시키고 모욕하며 인간미를 잃어버리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심지어 교회 참석을 중단 하도록 강요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세력의 무책임한 명령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누가 왜 이러한 대응을 우리에게 강요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 COVID19가 시민들을 고립시키고 모욕하며 인간미를 잃어버리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뒤집은 논리이다.

  이유없이 부당하게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있는가?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심지어 교회 참석을 중단 하도록’하는 것이 부당한 강요인가? 그것이 ‘보이지 않는 세력의 무책임한 명령’인가?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누가 왜 이러한 대응을 우리에게 강요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그 불가피함을 알고 있으며, 그 대응을 강요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적 민족적 평화지향 촛불정부를 타도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그렇게 느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 일반 시민들은 이 중에 “어느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다”거나 ‘무언가 몹시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3)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과 모든 권력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옳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고, 보수 세력은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면, 정부가 방역을 잘못 한다고 난리를 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도 정부의 방역 대책을 비난하는 분들이 있다. 권력자가 단지 정부여당만이 아니라, 검찰권력, 언론권력, 경제권력 등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불과 3여년전 권력이 된 정부여당 외 나머지 기득권 권력이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옳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도 코로나19의 위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코로나 대응책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광화문 집회, 교회 대면 예배 등 정부의 대응책을 반대하는 세력은 여전히 많다.

  4) “만약 정부나 기업,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정치인들이 진정 우리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에 걸리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과학적 또는 의학적 조언을 해 주어야 합니다.”

=>정부나 기업, 그리고 정치인들은 진정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하는가? 병에 걸리게 되면 엄청난 돈을 들여 치료를 다 해 주지 않는가? 과학적, 의학적 조언은 차고 넘친다.

  5) “그러나 우리가 하루 종일 듣는 말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며, 우리를 구해 줄 백신 또는 여러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뿐”이라고 비난 하는데, 이게 타당한 비판이라도 되는 것인가?

  6)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은 병균으로 인해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공공건물에 들어 갈 수 없고 직장이나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는 말 뿐”이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Ⅲ. 크리스찬투데이에 인용된 주장 비판

   1) “그 어느 것도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러분들은 TV와 인터넷상에 난무하는 잘못된 공포로부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또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해들을 수 없으며 배우지도 못한다”

=> 우리는 tv나 인터넷을 통해 과학적인 내용을 충분히 접하고 있으며, ‘잘못된 공포로부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또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해들을 수’ 있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2) “코로나 바이러스19는 감기나 독감을 일으키는 흔한 바이러스의 수십 가지 변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할수는 없고, 바이러스의의 하나이지만, 치사율은 적은 대신 감염력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3) “이 바이러스에 대한 미디어의 공포와 과장된 광고는 시민들이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과학적인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야말로, ‘공포와 과장’이며, ‘시민들이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과학적인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4) “마스크는 시민들을 집단 통제하는 한 방법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코로나19 감염 예방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시민들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며, 그것이 효과적일 필요가 무어란 말인가?

   5) “시민들은(과학적 근거없이) 끊임없는 명령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가면을 썼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느끼게 된다. 그것이 마스크 효과의 핵심이다. 미묘한 죄책감을 이용하게 되면 시민들은 전체주의에 대하여 저항할 수 없는 심리 상태가 된다. 책임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책임은 자기한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마스크 착용이 바로 그런 심리적 전쟁”

=> 시민들은 아무리 끊임없는 명령을 해도 (과학적 근거없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건 명령도 아니다. ‘명령으로 마스크를 착용한다’ 해 놓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가면을 썼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건 모순이고 비약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떻게든 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느끼게 된다’고? 무슨 ‘음모에 가담’? ‘마스크 효과의 핵심’? ‘미묘한 죄책감을 이용하게 되면 시민들은 전체주의에 대하여 저항할 수 없는 심리 상태가 된다’? ‘책임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책임은 자기한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말이 안되는 비정상적 주장이다.

‘마스크 착용에 그런 심리적 전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과도하고 과잉된 전쟁 심리에서 나오는 주장이 아닐까? 이건 미셀푸코류의 철학적 사유가 배경이 되어 있을 수 있지만, 감옥에 갖힌 모든 죄수가 국가의 부당한 감시와 처벌 시스템의 희생양인양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합리적 이성이나 종합적 사유가 결여된 주장은 보편타당성이 없다.

   6)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렸을 때 스스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스스로의 생각‘이 인간적(휴머니즘) 종합적 합리적 사고, 비고츠키 등 교육철학이 말하는 교육의 목적으로서의 보편타당성에 이르는 ’고등정신‘을 의미한다면.

  그러나 그의 ‘스스로의 생각‘은 그런 의미가 아닌 비판적, 부정적, 편향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 방역 정책 관련 시민들이 ’자신의 나라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지난 1년 동안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부가 어떻게 껍데기로 전락했는지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은 언어도단이다.

 

Ⅳ. 맺는 말 : 조건부 통제정책 변화 발전의 필요성

  코로나19 감염자가 하루 백명 이하로만 내려가도 정부나 지차제는 방역통제를 완화하려 한다. 그동안도 감염 확산이 통제 되는 것처럼 보일 때, 경제 활동, 사회 활동을 완화하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시 감염이 확산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야당 등 수구 보수 진영은 정부가 방역을 소홀히 하여 그런 일이 생겼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치사율이 낮다고는 하나 감염의 확산을 무릎쓰고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다. 감염자들이 섞여 감염 확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집회 허용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파기할 수 없다. 일본식, 미국식,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식으로 감염확산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다만, 당분간 지금까지처럼 감염 예상자 전수 진단과 치료, 확산 가능성 차단 등을 통해 감염자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되면, 감염자 관리와 감염확산 방지를 위한 통제정책을 일괄적으로 하지 말고, 맞춤형 또는 조건형으로 발전 시킬 필요가 있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 감염의 소지도 최대한 차단하되, 전국적 전면적 통제는 지양해야 한다. 교회, 식당 등 모임 관련, 완벽한 방역 조건을 갖추게 하고, 조건을 갖추면 모임이나 이용을 허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감염자가 모두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하니, 감염 예방을 위한 맞춤형 통제 정책에 ‘환자 치료 중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2020.9.12.)

*정영훈(시인, 한국작가회의/ 촛불혁명완성연대 공동대표)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정영훈 주주통신원  jyhkjmn@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영훈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주주커뮤니케이션팀  |  전화 : 02)710-0124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이상준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준
편집위원 : 김경애, 김국화, 김동호, 김미경,김태평, 서기철, 심창식, 정혁준, 허익배   |  객원편집위원 : 김혜성, 박춘근, 박효삼, 안지애, 양성숙, 최성주, 하성환
Copyright © 2020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