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봉두(鳳頭)를 약술한다. 생각나는 대로 썼고 기회가 되면 상술하고 싶다. 농어촌이 고향인 분들은 동감하실 수도 있다. 워낙 두메산골이라 내세울 건 없지만 고향의 숨결을 느끼시면 좋겠다. 추석이 다가오니 더욱 절실하다.

1.

내가 태어난 집과 크고 자란 봉두마을

부모형제자매와 친인척들의 삶의 터전

조상대대의 시제선산과 무덤이 있는 산마루

지울 수 없는 향수가 어리고 서린 산천경제

어느 곳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고장

내 기본 소양과 형체를 만들고 다진 인생학교

뛰놀던 놀이터 돌담장과 골목길 그리고 山野川

땅따먹기 진또리 자치기 놀던 양지바른 양다리

때로는 수영장 때로는 낚시터 내천 금시보

밥 짓는 물과 생활용수 공급처 마을공동우물

짊어진 물지게 출렁이는 물통 춤추는 어깨

어른아이 함께 모여 놀던 쉼터와 놀이터 당산

동네어귀 돌아 독립가옥 주막과 가게 시끌벅적

질컥질컥 울퉁불퉁 논두렁밭두렁 좁다란 등하교길

순이 세탁하던 냇가 징검다리 빨래터 방망이소리

꼴망태 둘러매고 이곳저곳 찾던 풀덤불 뱀 나와

땔나무 가득지고 오르내린 비탈진 고갯마루 힘들어

황소 고삐 어깨 걸고 풀 먹이던 언덕 빼기 외로워

몸은 떠났어도 내 맘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땅

이승을 떠난다 해도 나를 기억해 줄 흙길과 돌멩이

그립고 아련히 떠오르는 정다운 나의 고향 봉두마을

2.

볏짚 섞인 흙벽과 거친 툇마루의 초가삼간

마루 밑엔 어미 개와 강아지 꾸물꾸물 끄응끄응

괭이 박힌 서까래와 대들보 둥글고 각진 기둥들

기둥사이 대들보엔 즐비한 제비집 지지배배

초가지붕은 1년마다 새이엉으로 새단장하면 새집

정성스리 엮은 새이엉은 겨울추위와 여름장마 완벽

볏짚이엉 처마 끝엔 틈새마다 참새집 짹짹짹

울퉁불퉁 방벽과 얼기설기 낙서화판 땜 천장

아랫목엔 누룩덩이와 막걸리 주조단지 푹크푹크

윗목엔 콩나물시루와 요강단지 코 막아야 킁킁

방 뒤 끝자락엔 겨울양식 고구마뒤주 가득 넘쳐

방바닥 이곳저곳 가장자리엔 흙가루 펄펄 날려

참 종이 바른 구멍 뚫린 격자 방문 바람이 솔솔

넘고 넘어 닳고 닳아 반들반들 문지방 미끌 조심

조왕신과 막걸리 식초병 모신 성스런 부엌 조용

검푸른 가마솥 걸린 황토찰흙 아궁이 불조심 후후

원형각형 크고 작은 옹기집합 장독대 엄니 정한수

그 옆 대문답지 않는 싸리사립문 삐꺼덕 폴딱

어린 시절이 살아 숨 쉬는 정든 나의 고향 봉두

3.

뒤쪽마당엔 삽과 곡괭이 농기구 나란히 진열

처마 끝 낙수 물에 패고 파여 길게 골난 홈

비 오면 앞마당은 미꾸라지와 개구리 놀이터

흙 마당 중앙 끝엔 볏짚더미 둥실 높이 쌓였고

흙 마당 오른편엔 두엄동산 우뚝 퀴퀴한 냄새

흙 마당 왼편엔 땔나무 더미 아름아름 쌓았고

그 옆에 토끼장과 닭장에서 꼬끼오 꼬꼬 정겨워

작은 방 옆에는 소외양간 음매음매 황소 믿음직

마당 끝 대사각 지역엔 변소 구린내 아구 냄시

그 뒤쪽엔 늘 밥만 주라 꼬리치는 돼지 꿀꿀꿀

아~ 지금은 아득히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 생생한

아름다운 꿈의 궁전 나의 고향 봉두

4.

집 앞뒤엔 너른 들판 푸른 산 맑은 시냇물 졸졸

낮엔 매미와 배짱이 밤엔 개구리와 귀뚜라미 찌르르

높은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 두둥실 떠가고 어디로 가나

밤이 되면 마당에 멍석 깔고 달과 별 헤아려 하나 둘 셋

달이 가는지 별이 가는지 나도 따라 가고 빙빙 어지러워

낮은 돌담과 엉성한 사립문사이 골목 내달려 불알 떨어질라

아줌마들 담벼락 너머로 천하태평 무사태평 만사태평 외쳐

울타리 곁엔 하얀 무궁화 노란 개나리 활짝 피어 웃고 웃어

산에는 빨간 진달래 자색 도라지 여기저기 나 좀 봐줘 후후

수양버들 아래 물고기 떼 헤엄치고 느티나무 밑 염소 풀 뜯어

봄엔 산으로 훨훨 신나고 여름엔 시냇가로 풍덩 아이 시원해

가을엔 풍성한 황금들녘 내달리니 모든 게 우리들 세상 야호

겨울엔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 옛이야기 무서워 덜덜덜 으으으

언제라도 반기고 포근히 안아주는 나의 정든 고향 봉두

5.

돌담 뛰어넘고 울타리 아래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보일라

거추장스런 옷 훌렁 벗고 시냇물에 첨벙 뭐가 부끄러워

소달구지 꽁무니 따라가다 소똥 밟고 에이 더러워 퇘~

제 몸보다 몇 배 큰 말똥 굴리는 말똥가리 신기해 오~

당산 팽나무 올라 노란 열매 따먹고 맛있게 냠냠 먹고 싶지

미꾸라지 탱구리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아이 매워 후후후

메뚜기 여치 잡아 모닥불에 구워먹으니 고소하고 맛나

천지 산하가 놀이터요 간식 창고였지 이야 좋다 신난다

저학년 땐 오전반과 오후반 교대수업 언제지 영 헛갈려

친구와 작당하여 등교 않고 중간 치기 좋지만 불안해

산과 들과 저수지에서 공부 않고 신났지 이순간이 최고야

아이들 하교 시까지 기다림이 지루키도 했어 에고 괜히~

다음날 어느 녀석 고자질에 담임께 종아리 맞고 아고 아파

들지나 개울건너 산넘고 오가던 등하교길 아이고 다리야

봄날이면 소나무 송쿠와 풀 삐리 뽑아먹고 아유 떨버

여름날엔 산딸기와 참외 수박서리 몰래몰래 살살 들킬라

가을날엔 붉은 감과 대추로 배 채운 후 통통 배장구치고

겨울날엔 군고구마와 부침개로 배 불뚝 검댕이 입술 쓱싹

누구 잘났다 못났다 잘한다 못한다 말 아니하는 이젠 먼 고향

함께 어깨동무 철없이 어울리던 코흘리개 친구들 그리워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하며 맞아주는 나의 고향 봉두

6.

정월 대보름 오곡밥 영신들 달집언덕 태우기와 쥐불놀이 뜨거

삼월 삼짇날 강남제비 돌아오니 버드나무 피리불고 화전 먹어

사월 한식날 선조들께 감사 찬 음식 먹고 조상 묘 단장 이장하기

오월 단오 여인들 창포물 머리감고 그네 뛰어 남정네들 씨름하기

유월유두 동으로 흐르는 물에 액운 씻고 보리떡 쑥버무리 산행

칠월칠석 백중 견우직녀 만나 풀고 16세 남자 성인식 마을잔치

팔월대보름 푸짐한 송편 과일 조상성묘 달맞이 줄다리기 이겨라

구월구일 중양절 국조 단군과 산신제례 단풍구경 사랑 찾아 구구구

시월시제 5대조 이상 분들께 상달고사 무당 당골레 감사 뿌리확인

십일월 동짓날 팥죽 새알죽 먹고 액운 쫓아 꽁꽁 얼고 아이 추워

십이월 섣달 그믐날 까치설 세밑세찬 한해 마무리 안녕 송구영신

일월 초하루 설날 차례 세배 설빔 새 꿈 새 희망 새 각오 새해

어디가나 어디 있으나 늘 그립고 가고픈 내 사랑 고향 봉두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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