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미反美한다


          - 권말선

 

국민(초등)학생이던 열 살 무렵
학교에서 친구에게 말했지
‘야, 어제 박정희가 죽었대’
친구가 쉿,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해, 그런 말 하면 안 된댔어!’
반공교육에 빨갱이 타령 무한 세뇌시키던
박정희는 죽어서도 아이들 입을 틀어막았지
그 때를 떠올리며 나는 반미한다
 

첫 아이 품에 안고 어르던 스물 몇 살에
TV뉴스를 보며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나쁜 짓 하고 감옥 갔던 정치인이
어느 날 다시 의원나리가 되어 나타났을 때
사계절 빼어난 경관만큼이나 
우리 사회도 아름다운 게 맞는 걸까
저런 부정한 자를 용납해도 되는 걸까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었지
아가야, 네가 커서 어른이 된 세상에는 
저런 나쁜 사람들 더 없었으면 좋겠구나
막연히 바랬었지, 순진하게도…
부정한 자들의 여전한 득세가 싫어 나는 반미한다
 

서른 즈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설교시간이면 늘 존(John)이나 윌리엄(William) 같은
미국 사람들 이름 줄줄 읊으며
훌륭한 인물이라 칭송했었지
우리나라에도, 우리 역사에도
훌륭한 인물들 많고 많은데 
왜 늘 미국사람인걸까
사대란 이런 것인가 참 거북했었지
그렇게 살지 않으려 나는 반미한다
싫은 건 싫다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건 좋다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사십 지나 이제 오십
아이들 다 자라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TV뉴스는 아름답지 못해서
부정의한 정치인들이 찌푸린 얼굴로
날마다 악다구니만 부리고 있고
IMF나 한미FTA, GSOMIA, SOFA, THAAD가,
광우병 소고기, 밥쌀수입, 미국식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세균처럼 잠식하여 
서민들 한숨은 갈수록 짙어지는데
배부른 정치인들, 번드르한 자본가들만
이 나라 사람 아닌 듯 잘 살고 있지
미국 눈치 보며 미국 우러르며 사는 자들
그들이 미워 나는 반미한다
 

저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왜놈들 밑에서 개노릇하던 앞잡이들
다 처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우리나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 했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백선엽, 이명박근혜
살육과 배신의 DNA ‘국민의적’들이
적폐의 꼬리표 달고 여전히 살아있는 것도
<판문점선언>을 한미워킹그룹이 막아선 것도
성폭행과 살인, 무기강매와 세균부대
안보팔이 내정간섭과 주둔비 갈취
심지어 다시금 일본의 야만성 충동질까지
이 땅 모순이란 모순은 모두
75년 전 우리 땅에 발 디디고 성조기 올린
바로 그 미국 때문이라고들 했지
우리 옆에서 버티고 선 총칼, 
주한미군이 싫어 나는 반미한다


품에 안고 어르던 아이가
머잖아 아이를 품에 안을 땐
70년 넘게 미국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드디어 미국을 몰아냈으니
이제 너희들 세상이 왔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하려고,
일제의 총칼에 피 흘림을 마다 않고
나라를 되찾아 주신 참 고마운 분들께
미국 없는 자주로운 나라에서
부끄럽지 않을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8천만 우리 민족 
하나의 땅덩이, 한 식솔되어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게 될
그 날이 너무 그리워
나는 반미하고 반미한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권말선 주주통신원  kwonblues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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