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5] : 고향집 겨울 아침의 식사 풍경

~기억도 아스라한 유년시절, 오늘은 고향집에서의 어느 겨울철 아침풍경의 기억 조각보를 머릿속에 펼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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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나와 작은누나는 시골집 부엌에서 부뚜막의 무쇠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있는 어머니를 도와 솔가지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서 아침밥 짓는 일을 돕는다. 작은 부뚜막에 시래기두부 된장찌개 솥도 올려놓고 마찬가지로 작은 아궁이에 짚더미나 솔가지를 꺾어 불을 붙여 부지깽이로 뒤적여 화력을 높이는 일도 거든다.

이렇게 아침밥상이 준비되는 동안, 우리들의 보금자리 안방 아랫목에는 으레 이불이 깔려있고, 그 밑의 따끈한 온돌바닥에 다리를 넣고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네명의 어린 남매들(막내누나, 큰형, 작은형, 나 / *막내동생은 부엌의 어머니 등에 업혀있음)이 무료함을 달래느라 목구멍에서 ‘꾹꾸~’하는 소리내기 놀이를 하고 있다. 누가 더 ‘꾹꾸~’ 소리를 끊어지지 않고 오래 소리내는가 하는 유치한(?) 놀이이다.

그러다가 “밥상 준비해라~” 하는 엄니의 부엌에서 외치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안방 위켠에 놓인 큰 둥근 나무밥상을 가져다 아랫목의 이불을 들추고 다리를 펴놓는다. 그러면 부엌에서 모락모락 뜨듯한 김이 올라오는 쌀밥이 놋쇠 밥그릇에 담겨져 차례차례 쟁반에 놓여져 배달되고, 이것을 누나와 형들이 둥근 나무밥상 위에 올려놓는다. (지금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아부지가 아랫목에 앉고 형들과 나는 아버지 주위에 서열대로 앉아 숟가락을 들면, 막내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엄니와 세 명의 누나들이 윗목에 앉아 한 상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침밥을 다 먹고나면, 으레 눌은밥과 숭늉이 함께 큰 양푼에 담겨져 나와 아부지 밥그릇부터 차례대로 부어져 마시는데, 숭늉으로 입가심하시는 아부지를 따라 나도 소리를 내며 입가심 흉내를 내다가 입밖으로 흘리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어느해인가는 큰형이 집에서 4~5리 떨어진 입장국민학교(지금은 입장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어느날 아침 밥상을 물린 후에 아부지가 큰형에게 자기 이름을 써보라고 시키셨다. 누런 종이와 연필을 가져온 큰형이 ‘허승배’라고 조금 크게 글씨를 썼는데, 나도 글씨를 쓰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아부지가 연필을 건네주시자 아랫도리는 벌거숭이인 채로 배를 방바닥에 쭉 깔고 누런 종이에 삐뚤빼뚤 ‘허승배’ 세 글자를 썼다.

그런데, 두 번째 글자 ‘승’의 ‘스’라는 자획이 마치 훈민정음의 ‘ ᅀ’ (반치음)처럼 써져서 이상했는데,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부지는 연신 (흐뭇하신지)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P.S. : 이런 옛이야기 쓰다보니, 올해는 한참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묘소에 어버이날에 가보고는 아직 성묘도 못갔는데, 내일 구리 근처에 살고있는 큰형님댁에나 가서 예전 고향마을 이야기나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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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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