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봉오동전투의 총사령관 최진동 장군을 친일로 몰고 있는가

최성주 객원편집위원l승인2020.10.07l수정2020.10.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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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논란이 있다.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사령관이 친일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다. 이 논란은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몰아친 비정상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계급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공산당을 반대했던 사람들과 지주였던 독립운동가를 모두 친일로 매도했다.

자유시참변을 겪으며 수많은 독립군을 잃었던 쓰라린 경험 이후 최진동 장군은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더구나 그는 대지주로 가장 눈에 띄는 표적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가족과 주민을 앞세워 그를 친일파로 몰았다. 이후 연변 역사학계에서 이에 동조하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그리고 연변 역사학자가 한국으로 이 소문을 전하면서 ‘독립군 총사령관의 친일’이라는 선정적 내용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소문의 진원지는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은 없었다』란 책이다. 이 책은 연변 조선족 작가 류연산이 간도특설대 일본군 장교 백선엽, 박정희 등이 친일파였음을 알린 작품인데 책의 말미에 최진동을 포함했다. 류연산은 이 책에서 몇 십년 불어난 소문에 살을 붙여 기정사실화 했다. 국방헌금 100원은 비행기 헌납으로 불어났고, 거기에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까지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책의 어디에도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근거 자료나 사료는 없었다. 단지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령관의 이유 없는 변절에 분노한다는 격한 감정만이 표현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그 책에는 미국에 살고 있던 최진동 장군의 막내아들이 연변역사학자들에게 비용을 보낼 테니 봉오동에 기념비를 세워달라는 뜻을 전했고, 연변역사학자들은 선결조건 없는 무조건 후원을 요청했는데 그 아들이 이를 거절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류연산 작가는 너무나 당연한 후손의 태도에 대해 아들이 돈으로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을 사려고 했다며 맹비난을 했다.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대한북로독군부 사령관이었던 최진동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을 고향 봉오동에 세우고 싶은 아들의 소망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후손이 역사학자의 무조건적 후원 요구를 거절한 것이 죄가 되는 일인가? 오히려 후손에게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한 역사학자들의 문제를 지적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그보다 앞서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90년대 연변지역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여 발로 뛰는 역사서를 쓰는 것으로 알려진 한 유명 역사학자가 최진동 장군의 자식에게 거금을 요구했다.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식들은 아버지는 절대 그런 분이 아니라며 말도 되지 않는 그의 뒷거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 연변의 역사계에서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류연산 씨가 쓴 책의 내용이 그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2004년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은 없었다』가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소문이 재확산되었다. 유명한 '독립군 총사령관의 친일'이라는 선정적 프레임의 뒷담화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인 2005년, 연변역사학회는 회장인 김춘선 교수와 안화춘, 허영길 공저의 『최진동 장군』을 출간했다. 그들은 책 출판을 계기로 여러 사료를 구체적으로 살폈으나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 이 소문이 처음 전해진 1990년대 중반, 국가보훈처에서도 이 소문을 듣고 당시 최진동 장군의 공적을 재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나 연변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들과 동아일보 기사 등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몇 가지 의혹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나는 지난 2015년 이 소문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직접 연변을 방문해서 여러 명의 역사학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현재 연변의 역사학자들은 이 논란의 과정을 설명하며 문제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연변역사학회장인 김춘선 교수는 자신도 "예전에는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해를 했었다고, 만주국 시기 중국의 상황을 모르면서 독립군동가들을 함부로 친일파로 단정하면 안 된다. 만약 최진동 장군이 친일이면 국민회의 구춘선 회장 등 당시 연변에 살던 독립운동가 여러 명을 친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1937년 동아일보에 실린 100원 헌금 건도 이미 연변의 역사학계에서 최진동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에 비해 사소한 시빗거리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이제 사료를 바탕으로 이런 시빗거리들을 넘어서 봉오동전투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던 일이다.

▲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참석한 최진동 장군, 왼쪽에 홍범도 장군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2019년 서울신문의 한 보도가 잠잠하던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신문의 한 면 전체를 할애해 “봉오동 최진동, 임정 김희선... 민낯 드러난 가짜 유공자” 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봉오동전투의 사령관 최진동 장군의 가짜라는 주장이었다. 당시는 독립유공자 중에 가짜가 많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국가보훈처에 독립운동 관련 서훈자 모두를 재조사하라는 요구가 이어지던 때였다.

과거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독립운동가 서훈 작업이 진행되어 독립운동 경력이 없는 사람이 부정행위로 독립유공자가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그 잘못을 시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최진동 장군은 ‘가짜’가 아니다. 그는 동생 최운산 최치흥과 함께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쏟아 부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군자금을 마련하여 무기를 구입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의 총사령관, 진짜 독립군이다. 엄연히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영웅적 인물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과 그를 가짜라고 호명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동안 이런저런 소문을 듣고 최진동 장군에 대한 의혹을 갖는 사람들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전달하거나 대부분 류연산 작가의 글을 근거로 제시할 뿐이다. 서울신문의 기사도 그랬다.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가짜 독립유공자 대해부] 라는 기획 시리즈 중 ‘부풀려진 대한민국 서훈자’란 주제였다. “봉오동 최진동....가짜 유공자”라는 굵은 글씨의 헤드라인으로 최진동 장군을 가짜라고 명토 박았으나 대부분의 기사는 최진동과 관계 없었다. 다른 언론에서 주목해 여러 번 기사로 다뤘던 것으로 이미 다 알려진 내용들이었다.

기사는 자신의 증조부가 독립군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김종갑 씨의 사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처음 공개된 사실이 아니라 2018년 EBS 다큐 ‘시선’에서 이미 방송한 것으로 정부가 2017년 공식적으로 시정한 내용이다. 이어서 기사는 보훈처가 발표했던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현황’에 대한 소개를 자료와 함께 길게 설명했다. 기사의 대부분은 이 내용이다. 그리고 국가보훈처가 앞으로 독립유공 서훈자 모두를 전수 조사할 계획이며, 1차로 1990년 재검증하지 못한 587명과 가짜 유공자로 드러난 30~40명 정도를 추가한다고 간단하게 덧붙였다.

그런데, 그 주요 인물이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희선과 봉오동전투의 주역으로 알려진 최진동이라는 것이다. 김희선은 오래전에 친일행각이 알려져 1996년 서훈이 취소된 자고, 최진동은 90년대에 이런 논란으로 이미 재조사까지 마쳤던 인물인데 왜 새삼스럽게 다시 호명하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주장이 아니라 설명이 더 필요해 보였다.

더구나 이 기사는 최진동장군의 사진에 “봉오동 전투의 주역임에도 훗날 친일파로 변절해 일제에 충성한 최진동”이라는 캡션을 달아 최진동 장군을 친일파로 확정하고 있었다. 친일 논란이 있었더라도 아직 정식으로 결정되지도 않은 인물이다. 위원회에서 행적을 조사할 예정라고 보도하면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왜곡이다. 

담당 기자에게 보도의 기본을 기키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재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왜 그렇게 확신하는지 이유를 물었으나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단지 한 역사학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기사를 쓴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서울신문의 최진동 장군 관련 기사 전문이다.(2019. 7 .17)

“최진동은 함경북도 온성 출생으로 중국 만주로 망명해 1919년부터 청년들의 군사훈련에 나섰다. 대한독립단과 합작해 사령관에 취임한 뒤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 제19사단 보병부대와 교전해 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북간도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수천 명의 부하를 이끌고 무장 항일운동을 이어 갔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됐다. 하지만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대국인 중국도 일본을 못 이기는데 조선이 독립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판단해 단박에 친일파로 변신했다. 일본군 토벌대의 선두가 돼 항일무장세력 진압에 앞장섰고 독립운동에 참가한 과거사를 용서받고자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기도 했다. 최진동은 막강한 재산으로 독립운동과 친일행각을 동시에 벌인 아이러니한 인물이었다.”

이게 최진동 관련 기사의 전부다. 전체 기사의 맥락에도 맞지 않고, 제목도 낚시성이다. 독립군기지 봉오동의 역사와 봉오동전투에 대한 사전 취재도 없고, 봉오동전투를 지휘한 사령관 최진동 장군이 누구인지 충분히 살펴보지도 않았다. 1941년 사망한 최진동 장군의 생몰연도를 1945년으로 기록하는 등 그에 대해 기본 취재도 하지 않았다. 역사적 자료를 보고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연변 역사학계에서도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연변작가의 류연산의 책에서 최진동을 친일파로 주장한 부분을 인용 표시도 없이 가져온 것이었다. 

이런 허술하게 북간도 독립전쟁을 지휘한 총사령관을 친일파로 단정하고 있었다. 기자에게 재차 확인을 하자 그는 국가보훈처 '서훈심사위원인 역사학자'가 최진동 장군이 가짜 유공자 명단에 들어있다고, 곧 발표될 예정이라고 제보를 했기 때문에 기사를 작성했다고 마지못해 사실을 밝혔다. 만약 그 학자가 최진동 장군의 친일에 대한 확실한 사료를 제공했다면 기자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 신문에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구체적 증거가 아니라 연변 작가가 쓴 선정적 선동을 그대로 베꼈을 뿐이다. 

'서훈심사위원인 역사학자의 확실한 제보'라는 말은 '국가보훈처 서훈심사위원회의 한 위원'이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전수조사 절차에 대해 자신이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언론을 이용해 미리 기정사실화 하고, 이슈화 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절차를 무시하고 국가보훈처의 공훈심사 제도를 왜곡하는 것으로 어떤 의도가 다분히 포함된 행동이다. 누군가 최진동 장군을 꼭 친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 몰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역사적 지식이 일천하지만 더 공부하고 밝혀서 역사정의를 바로세울 것이다.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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