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룡산에서 나와 유명한 산인 명지산으로 갈까 하다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는 옆지기 말에 '강씨봉자연휴양림'이 있는 적목리로 들어섰다.

강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가장 높은 봉우리라 해서 이름 붙여진 '강씨봉'은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와 가평군 북면 적목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 830m 강씨봉은 북한 금강산, 백운산, 명지산, 운악산에서 서울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광주산맥(廣州山脈)의 한 봉우리다. 주변에 워낙 유명한 산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산으로, '코로나19' 시국에 딱 맞춤인 산이다.

▲ 강씨봉 자연휴양림 둘레길

강씨봉과 귀목봉을 가는 긴 코스도 있지만, 산행을 늦게 시작한 우리는 가뿐하게 2.7km, 약 1시간 20분 걸리는 코스를 택했다. 휴양관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전망대까지 갔다 내려오는 순환 둘레길이다. 그런데 전망대까지 가는 임도가 기대 이상으로 멋지다. 초중반 콘크리트길을 지나면 아래와 같이 가을 정취가 흠뻑 느껴지는 길이 이어진다.

▲ 강씨봉자연휴양림 둘레길

사람이 거의 없어 호젓할 뿐 아니라 자연이 꾸민 예쁘고 아담한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저 길을 돌면 어떤 길이 나올까 설레며 걷게 된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아기자기 모여 있는 가을 풀, 꽃들도 무척 사랑스러워 '정말 좋다' 소리가 수차례 절로 나온다. 

▲ 둘레길에서... 만난 가을 풀

1.7km를 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뾰쪽한 산이 명지산 같다. 오래 전에 가본 명지산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었는데... 몇 사람이 둘러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뾰쪽하니 좁았다. 

▲ 전망대에서 본 명지산

전망대에 올라가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코로나19' 이후 식당 가기가 겁나 대부분은 차안에서 김밥으로 때우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간편포장식을 사 먹는다.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돈을 안 쓴 적이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다들 돈을 안 쓰면 경제가 살아나지 못할 텐데... 여행하면서 이 동네 저 동네 맛난 집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한 건데... 난생 처음으로 '절약이 미덕'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내가 '소비가 미덕'이라는 표어에 살짝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 전망대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멋진 반면에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은 숲 사이로 난 경사진 길로 아무 재미가 없다. 1km로 거리는 짧아 시간은 절약되나, 꽃도, 풀도, 주변 경관도 감상할 것이 없다. 그저 아래만 보고 조심조심 내려가는 숲길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산은 같은 길이라도 올라갈 때 모습 다르고, 내려갈 때 모습 다르다. 

전망대로 올라가면서 만난 꽃과 풀들을 소개한다.

▲ 이고들빼기와 왕고들빼기

'고들빼기'는 국화과 한두해살이 풀로, 우리나라 전역 산과 들에서 흔하게 자란다. 고들빼기 이름에 부뚜막 같이 구수한 뜻이 있을 것만 같지만, 아주 쓴(苦) 나물(菜)이라는 고채(苦菜)가 변해서 ‘고독바기’로 바뀌었다가 ‘고들빼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들빼기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초 냄새 은근한 고들빼기김치는 따끈한 밥 위에 턱 올려놓고 먹는 것만으로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인기 있는 음식이어서 고들빼기는 농가에서 많이 키운다.

7~9월에 꽃이 피는 ‘고들빼기’와 8~10월에 피는 ‘이고들빼기’는 꽃모양이 거의 같다. ‘고들빼기 꽃 지름은 0.5~0.9㎝이고 이고들빼기 꽃은 0.8~1.2cm로 이고들빼기가 조금 더 크다. 색은 둘 다 샛노랗다. 이것만 갖고는 구분하기 어렵다. 잎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고들빼기 잎은 둥글며 줄기를 감싸는 모양이고, 이고들빼기 잎은 가장자리에 삐쭉빼쭉 톱니가 있다, 그래서 ‘이’자가 붙었다고도 하고, 노란꽃잎이 사람 앞니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이고들빼기’처럼 8~10월에 피는 ‘왕고들빼기’ 꽃은 지름 2~3cm으로 위 두 꽃에 비해 크고 색이 연한 노랑이다. 꽃도 크고 키도 1m 정도로 커서 '왕'자가 붙었다.

▲ 까실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가 오밀조밀 원없이 피어있다. 잎 표면이 까칠까칠한 까실쑥부쟁이는 키가 1m이고, 쑥부쟁이는 키가 30~100㎝로 좀 작다. 까실쑥부쟁이 꽃은 연한 자주색이거나 연한 보라색이지만 쑥부쟁이꽃은 자주색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데 쑥부쟁이 꽃은 크기가 구절초 반밖에 되지 않는다. 구절초 잎은 국화 잎과 비슷하지만 쑥부쟁이는 갸름한 형이다.  

▲ 미국쑥부쟁이

9~10월에 꽃이 피는 '미국쑥부쟁이'는 북아메리카에서 온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쑥부쟁이보다 키가 크다. 포천을 중심으로 퍼져있다고 하니 미군이 들여왔나 그런 생각도 든다. 얼마 전 남산에서 보았던 '서양등골나물'같이 환경부 지정 생태교란식물이라고 한다. 번식력이 강해 수북하게 피어있는 꽃이 예쁘기 보다 좀 걱정스레 보인다. 

▲ 쇠별꽃

별을 닮은 꽃을 또 만났다. '쇠별꽃'이다. 5~7월에 피는 꽃이 어찌 아직까지 피어 내 눈에 띄었을꼬? 쇠별꽃과 별꽃은 많이 닮았다. 특히 다섯 꽃잎이 갈라져 열 잎처럼 보이는 것이 비슷하다. 쇠별꽃은 별꽃보다 조금 크고 암술대가 5개다. 별꽃은 암술대가 3개다. 

▲ 왼쪽이 별꽃. 오른쪽이 들별꽃

들별꽃(개별꽃)도 있는데 들별꽃 꽃잎도 5개지만 갈라지지 않았다. 작년 4월 북한산에서 만난 들별꽃과 이호균선생님이 주신 별꽃 사진이다

▲ 익모초

귀한 '익모초(益母草)'도 만났다. 익모초는 초여름 꽃이 완전히 피지 않았을 때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 이름처럼 母에게 이로운 풀이라 산전산후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여성 보혈제(補血劑)로 민간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한다.

7~8월에 피는 자주색 꽃은 줄기 윗부분 잎겨드랑이에서 몇 개씩 층층으로 핀다. 두해살이 풀이라고 하는데 올해 초생(草生)은 마감하고 내년에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두해 초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일까? 제 시기보다 늦게까지 피어있는 꽃을 보니 생에 미련이 있는가 싶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인간도 갈 때가 되면 가야하는데...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면 도인이겠지만... 인간은 가야할 때 가지 않고 모든 수단을 다해 더 있으려 해서 문제다. 오죽하면 '코로나19'가 인간이 너무 가지 않으려 해서 데려가려고 왔다는 풍설도 있을까...  

▲ 5월에 피는 가막살나무 흰 꽃과 9~10월에 열리는 열매
(가막살나무 꽃 사진 출처 : 이호균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ihogyun/2768242)

둘레길 산행을 마치기 전 휴양관 뒤에 빼곡한 붉은 열매가 달린 '가막살나무'를 보았다. 가막살나무는 추위에 강하고, 물에도 강하고, 약한 빛에서도 잘 성장한다고 한다. 공장 폐수, 자동차 매연, 소음, 각종 쓰레기 등 공해에도 잘 견디는 '내공해성' 나무라고 하니.. 인간보다 지구에 오래 남을 수 있을 거다. 부디 잘 살아남아 인간이 망쳐놓은 이 지구가 자연스레 복원되는 모습을 꼭 지켜봐주렴...   

▲ 강씨봉 정상 코스

강씨봉은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군락을 지어 피어있고, 가을에는 능선 억새밭이 장관이라고 한다. 귀목봉을 도는 코스는 5~6시간 걸리고 강씨봉을 도는 코스는 4~5시간 걸린다. 위 화살표를 따라가는 강씨봉 코스가 계곡을 끼고 갈 수 있어서 더 쉽고 재미있는 길이 될 것 같다. 이곳도 석룡산처럼 온 하루를 내어 다시 방문하고 싶다. 

* 별꽃과 가막살나무 꽃은 야생화 전문가이신 이호균 주주통신원 블로그(http://blog.daum.net/ihogyun)에서 가져왔다. 언제든 사진 퍼감을 허락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를 보낸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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