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대만 공항에 내리면 약간의 설렘과 기대 그리고 고향에서 느끼는 포근함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대만사람의 기질은 사업에 특화된 민족 같습니다.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문제를 제기하면 적극적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손해가 안 가도록 노력합니다.

한국의 지인 중에는 ‘대만은 일본에 50년 지배를 받았는데, 대만 시장은 온통 일본 제품만 있냐?’고 묻습니다.

대만은 작은 섬나라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언어와 종족이 다른 여러 민족이 이 섬으로 건너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기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山地族). 나중에는 해적들의 소굴이 되기도 하였다가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400여 년 전에는 청나라에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며 복건성 성주의 아들 정성공이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나라의 기틀이 세워지고 왕정을 이룹니다.

1905년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긴 후 시모노세키조약에 의거 대만은 일본에 할양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만에서 살던 일본인 혹은 대만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일본인 후예 약 30여만 명이 폐허가 된 일본으로 귀국을 안 합니다. 그 후손이 현재 약 100~150여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일반 민중이 깨달은 사실은 홍모족(스페인)이건 왜족이건 서양 오랑캐건 누가 들어와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성도 쌓고, 다리도 놓고, 철도도 깔고요. 그들이 돌아간다고 땅을 떼어가지는 못하더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 대만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장개석이 자금성 황궁의 보물을 가져와 만든 고궁박물원은 인류의 보물이고 결국 대만의 자산입니다.

그런 역사와 더불어 지진과 태풍이 잦은 자연환경은 악하게 살면 재앙을 면하지 못하니 선하게 살아야 한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을 누구나 갖고 사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착유기를 수입해 참기름 등 여러 종류의 기름을 판매하는 공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례를 하겠다기에 나중에 밥이나 사라고 했더니 제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흔히 만나는 대만사람의 모습입니다.

▲ 산행 중에 만난 사람. 습한 대만에서는 경사진 흙길이 매우 미끄럽다고 장비를 가지고 올라와 계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光群雷射는 타이베이나 타오위엔 공항에서 약 1시간 거리인 신주과학원구(新竹科學園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참고하여 만든 과학 기술단지였습니다. 한동안 대만 경제의 70~80%를 이곳에서 창출한다고 알려졌지요.

회사에서 예약해준 호텔에 묵고 다음 날 아침 직원이 찾아왔습니다. 더글러스 꿔를 처음 만났지요. 후에 한국에 지사를 만들었을 때 부사장으로 근무를 했고, 심천에서 함께 사업을 했던 친구입니다.

회사에 갔더니 저를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더군요. 사전에 저와 협의도 없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빽빽하게 1:1 강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홀로그램 원리, 조판 과정, 생산과정, 재료에 따른 특성들을 공장 견학까지 곁들여가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내가 사전에 홀로그램 사업을 하겠다고 언급한 적도 없는데 마치 자기네 동료인 양 공장 내부까지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창업자인 동생 대니얼이 회사 현황을 이야기하고 저에게 제안했습니다. 한국시장을 독점적으로 줄 테니 맡아서 함께 가자. 경제적인 부담을 갖지 마라. 자기들이 미화 10만 불의 크레딧을 제공하겠다.

지금도 1억이 넘는 돈은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닌데 1990년대 등산장비 수출도 멈추고 숨만 쉬고 있던 저의 형편에는 놀랄 만큼 파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아무런 경험이나 조직이 없는 저에게 고마운 제안이긴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크레딧도 빚이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크레딧은 필요 없고, 건건이 매번 송금하려면 은행업무 보기가 귀찮으니 매월 월말 결산해서 다음 달 송금하는 조건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좀 모자란 인간이긴 합니다. 남의 돈을 잘 이용해야 사업가라고 하는데 더 달라고는 못 할망정 주는 조건도 거절하였으니.

그렇게 당시 설립 10년 된, 세계 4대 홀로그램 필름 메이커와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회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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