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고기 보고 환장하기

대한민국은 고기만 보면 환장하는 나라다.

우는 아이도 ‘고기’라고 외치면 눈가에 반짝반짝 윤기 별같이 흘러내리고 울음은 저 멀리 물러난다. 티브이 연예 프로그램 게임에 상으로 고기라도 걸리는 날이면 죽자 살자 달려들어 한우에 등심에 돼지고기에 항정살에 갖은 부위 붉은 살 한 점 얻기 위해 눈에 핏발 세운다. 고기 못 먹는 가난한 나라도 아닌데, 왜 이럴까.

고기 외에는 당장 손에 쥘 것이 마땅치 않아서일까? 학벌은 가진 자들이 다 움켜쥐었고, 돈은 재벌 일가처럼 대대손손 회장 자리 물려받은 자들 손아귀에 머물고, 권력은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 할 사악한 짓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말종이 거머쥐었고, 정의니 공정도 기득권자들 구린 뒤를 가리기 위한 말치레가 된 지 오래다.

눈치 보지 않고 뒤탈 없이 할 수 있는 놀이 가운데 손쉬운 것이 ‘고기 보고 환장하는 먹방’. 말 못 하는 고기이니, 웬만큼 갖고 놀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다. 고기만 보면 환장하는 사람들 모습 보여주고, 아침저녁으로 또 보여주고 다시 보여주고 자꾸 보여주고! 고기만큼 사람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 없다.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무슨 일 벌어지면 고기로 바뀌기 전 동물한테 몽땅 책임을 지울 수 있으니.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왜 생겼는지 누구 때문에 번지는지 모른 채 해결책은 늘 그렇듯이 인간이 움켜쥐었다. 문제를 일으키고 꼬이게 만드는 건 사람이면서 일만 터지면 나 몰라라 뒤로 발 빼고 동물들한테 덮어씌우기 일쑤다, 사람들은 자동차로 파주에서 부산으로, 연천에서 광주로 마음껏 다니며 돼지 열병을 옮긴 장본이면서 아닌 척 모른 척 모든 죄는 돼지한테 떠넘겼다.

‘죽여 없앤다’는 말이 너무 뼈를 때리는 말인지라 인간들은 -살처분-이란 두루뭉술한 말로 위장을 하고 여상스럽게 손에 피 칠갑을 한다. 한 손으로는 돼지고기를 먹느라 환장하고, 다른 손으로는 고기가 될 돼지 죽이느라 정신이 없다. 이 땅에서 뭇생명들 삶과 터전을 허물어 불러온 기후위기를 입에 올리는 건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②영어 보고 환장하기

대한민국은 영어만 보면 환장하는 나라다.

영어는 학벌을 대신하고, 영어는 세대를 뛰어넘고, 영어는 사랑을 다시 오게 하고, 영어는 부끄럼을 물고 오고, 영어는 한자로 유세하던 양반을 이어갈 새로운 지배 엘리트 언어이고. 영어는 너와 나를 가르는 담장이고. 영어는 ‘할 수 있는 분’과 ‘할 수 없는 놈’을 가르는 매몰찬 갈라치기다. 언어는 서로 통하는 수단이라는데, 한국에서 영어는 권력의 지표로 더 쓰임새가 크다. 젊으나 늙으나 ‘영어 할 줄 안다’는 자랑에 침을 튀긴다.

‘영어 하나라도 잘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과 ‘영어 잘하니 언젠가는 뭘 할 수 있다’는 바람은 대한민국을 영어로 몰고 가는 작은 출발선이다. 한국사회에서 영어 한마디 쓰지 않고 하루 버티기 힘들다. 아침을 열려면 ‘오픈’이 필요하고, 병을 따려면 ‘오프너’가 있어야 하고, 기분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르‘GO’, 내 꿈은 ‘드림’ 속에 묻히고, 내 돈은 ‘더블유에프엠 펀드’에 잠자고, 깊은 잠은 ‘딥슬립’을 찾아 헤맨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해답을 찾을라치면 ‘솔루션’ 쥔 자들이 오히려 텃세를 부리고, 네! 아니오! 똑 부러진 대답은 YES! NO속에 갇혀 말을 잊었다. 평화를 부르고 남북이 오순도순 잘 사는 일꾼들을 기다렸더니 아메리카 ‘워킹그룹’이란 낮도깨비가 들어와 평화를 휘젓는다.

영어는 돈을 들여야만 얻는 사치품이다. 글로벌시대 누구라도 배워야 하는 필수품이라고 우기는 영어 장사치와 영어로만 세상 살 수 있다는 윤똑똑이들이 밤을 새워 떠든다. 필요한 이들은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배워 알토란같이 써먹으면 안 될까.

 ③시간 보고 환장하기

대한민국은 시간에 환장하는 나라다.

어릴 때 밥그릇 엎어놓고 시간 쪼개고 쪼개서 계획표 세워 보신 적 있나? 있다면 50은 넘은 나이다. 방학 숙제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방학 책 한 권이 몽땅 숙제 뭉치였을 때까지 그랬다. 시간 분 단위로 나눠서 알뜰히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차곡차곡 사람들 머리로 파고든 것은 새마을운동이며 유신 때부터이다.

놀 시간 아껴 공부해야 하고, 동무들과 수다 떠는 시간 줄여 선생님 이야기만 들어야 하고, 골목길에서 공차는 시간은 헛된 시간으로 알아야 했고, 이쪽저쪽 눈 돌리며 멍때리는 시간 쓸데없는 헛짓으로 여겨야 했다. 내 몸으로 걷는 시간 내가 주인이고, 8시간 일했으니 그에 걸맞은 시간 쉬어야 내 몸 살아나고, 휴가․연차․공휴일․놀아야 사람답다는 말, 꺼낼라치면 게으름 넘어 불순으로 몰아붙였다. 옆 사람과 ‘함께’ 놀자면 선동으로 불도장 찍었고. 내가 내 시간 가늠해서 요렇게 조렇게 써보겠다는데 범죄자 취급이라니, 이거야 원!

내가 원하고 꿈꾸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내 시간 본 적 없다. 내 마음대로 갖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 시간은 누가 꼭꼭 쟁여놓고 멋대로 가져다 쓰는 걸까. 나는 누구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내 시간 보태는 걸까.

빼앗겨버리고 옹색해진 내 시간은 먹는 때라도 아낀다며 한마디 말없이 5분 만에 밥 퍼 넣고, 뜨거운 종이컵 커피 40초 만에 훌훌 들이붓고, 무엇이든 주문받자마자 똑딱똑딱 초시계 들이대며 일하는 나 옥죄며 몰아세운다. 내가 아낀 시간은 택배 짐을 실은 총알로 어느 집 현관문에 꽂히고 나는 탄피로 심장을 감싸 안은 채 아무도 보지 않는 5층 빌라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누가 쓰러지든 말든 ‘빠름 빠름’만 외치며 달리는 시간에 환장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두 시간은 함께 흐를 수 없는 걸까. 네가 천천히 걸어야 나도 쉬엄쉬엄 발맞출 수 있다며 천천히 가자,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지, 도타운 마음 씀씀이 조금씩 내어주며 함께 나란히 갈 순 없는 걸까.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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