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가을이 깊어가는 수성못을 한 바퀴 돌았다. 수성못은 대구시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1927년 넓은 수성들에 농사지을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못이다. 이제 그 넓은 들은 없어지고 수성못과 들안길이란 명칭만 남아 있다.

▲ 용지봉을 품은 수성못

어릴 적 대구에는 유명한 유원지가 두 곳 있었다. 동촌유원지와 수성못이다. 소풍도 자주 갔지만 실향민이셨던 아버지 고향사람들이 매년 도민회, 군민회를 여셨다. 수성못 섬에서도 도민회를 했었다. 커다란 솥이 걸리고 닭백숙을 끓여 맛나게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난다.

▲ 수성못 섬

대구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수성못에 얽힌 추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더욱 각별하다. 어린 시절 수성들을 지나 한참을 걸어서 가던 수성못이었고, 대학 입학 후 고등학교동문 신입생 환영회를 했던 곳이다. 축하한다며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신발에 부어 주었고, 괜한 트집으로 엎드려뻗쳐를 시키곤 빳다를 때리던 곳이다. 수성관광호텔 다이아몬드홀은 유명한 대학 페스티발 장소였다.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스토랑 호반에서는 여자친구와 맥주도 마셨고, 보트를 타고 섬을 돌았다. 그 섬에 추억을 묻기도 했다.

▲ 가운데가 호반

낡은 앨범 속에는 수성못에서 찍은 아버지 사진이 한 장 있다. 1954년 가을에 찍은 색 바랜 흑백사진이다.

수성들뿐만 아니라 수성못 너머 용지봉 아래동네 지산, 범물까지 개발된 후 수성못에서 1킬로쯤 떨어진 아파트단지에서 큰형네와 함께 살았다. 애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도시락 싸서 수성못으로 가족나들이 가곤 했다. 지난 2007년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 아들과 수성못 아버지가 서셨던 자리를 찾아보았다. 비슷한 장소를 찾아 사진도 찍었다.

수성못에 상화동산도 생기고 잘 단장이 되면서 대구시민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수성못과 수성들이 이상화 시인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쓰는데 시적 상상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봄이 오면 수성못은 벚꽃으로 뒤덮인다.

▲ 상화동산

가을에는 단풍이 시민들을 맞이해주는 수성못. 나도 가끔씩 찾는다. 

▲ 가을 수성못

아직 생기지도 않은 손자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들, 손자와 함께 다시 수성못을 찾아 증조할아버지 이야기 들려주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수성못을 돌아야겠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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