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 전 박근혜 후보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들은 늘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그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는 듯 굴었다. 오죽하면 2013년 6월 26일 불교, 개신교, 가톨릭 3대 종단이 "박근혜 정부와 여야는 대선 전 국민 앞에서 약속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라"라는 공동행동 선포식까지 가졌을까?

그녀가 쌍차해고노동자를 모른 척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쌍차 사측도 해고자측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런데 쌍차의 새 사장이 취임하면서 올 1월 새 사장과 노동조합장 그리고 해고노동자의 3자 대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5차 교섭이 이루어졌다. 3시간이나 토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해고자 문제를 푼다.’라는 것에만 인식을 함께 했지 더이상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이 없다. 187명의 해고자 복직과 47억 손배상 문제, 사망자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진전이 없다. 매번 같은 말만 반복되는 상황이 쳇바퀴 돌 듯 이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쌍차가 이를 털어 내지 못해서다. 하루라도 빨리 터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유리할 것 같은데 쉽게 털어내지를 못한다. 해고노동자의 요구사항을 조금이라도 들어준다면 추후 자본집단과 권력집단의 이익을 침해하는 기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해서 일까? 한번 물러서주면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어떻게 보면 사측에서 해결할 의지가 아주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저 높은 곳에서 어떤 명령이 와서 그런 걸까?

수개월째 진척사항 없이 지지부진하고 있음을 타개하기 위해 약 보름 전, 해고노동자는 공장 앞에는 천막을 쳤다.

▲ 분향소
▲ 쌍차 정문 앞 천막

현재 24명이 24시간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8시 15분까지 공장 안 동료들, 야간작업 후 퇴근하는 동료들한테 수고하셨다는, 수고하라는 인사를 한다. 서로 간에 훈훈함을 기대하면서 혹은 조금씩 훈훈함을 느껴가면서 그렇게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17일) 평택 시청과 경기경찰청이 천막을 철거하려 경찰 병력을 동원하였고, 용역 철거반을 끌고 왔다. 큰 충돌 없이 가긴 했지만 앞으로 재시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기 위해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쌍차 정문 앞에서 진행했다. 242차 미사다. 약 30여 분의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했다.

▲ 미사를 주관하는 이강서 신부님

이 미사에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소속 이강서 신부는 이 미사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무자비한 탐욕과 야만스런 시장경제의 모습이다. 그 결과는 폐기물처럼 버려진 해고노동자, 희망퇴직자들이다. 더 이상 인간의 품위를 갖출 수 없는, 노동과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 참혹한 결과다.

두 번째는 자본의 횡포와 국가 폭력에 굴하지 않는 위대한 모습이다. 나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 불굴의 의지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향해 늠름히 투쟁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와 인간을 짓밟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존엄한 노동자로 우뚝 서며 존엄한 인간 선언을 목격하는 자리인 것이다

하느님은 어제도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들과 함께 계셨다. 지금도 이 자리, 바로 노동의 존엄이 짓밟힌 노동자의 절망 가운데 계시다. 돈이 최고 가치가 된 시대에 돈 보다 인간의 품위가 더 소중하다고 선언하시며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쳐진 해고노동자와 똑같이 처형당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계신 이 자리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빼앗기고 고통 받는 이들과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구원은 광야에서 강도를 만나 반쯤 죽어 널브러진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미사가 끝나고 김득중 지부장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김득중 지부장의 모습은 피곤해보였다.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짓지만 지치고 힘없는 미소였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는 환하게 웃었고 힘찼다. 우울함, 피곤함, 절망감, 두려움, 분노 등을 분연히 떨쳐낸 모습이었다. 신부님이 말씀하신 “불굴의 의지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향해 늠름히 투쟁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 김득중 지부장의 발언 모습

절망을 누르고 보여주는 그의 늠름함의 고통을 어렴풋이 알기에 가슴 한편이 쓰리듯 아프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위대한 영혼을 만난 듯 뭉클하기도 했다. 7년 간의 지난한 투쟁에도 어떻게 한결같은 그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그의 늠름함과 고귀함에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보내면서 이 투쟁이 마무리되는 그 날까지 그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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