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미진 주주통신원

서너 너 댓 달 전부터 입안이 거북해졌다. 먹는 걸 유난히 즐기는 나에게 입은 더욱 소중한 기관이다. 충치를 한 번도 앓아보지 않은 입 속의 반란을 잇몸이 일으켰다. 조금 피로한 날은 띵띵 부어오르고, 잊을 만하면 욱신욱신. 잇몸과 치아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소란을 떨었다.

나에게 치과란 감옥만큼 가기 싫은 곳이다. 의심병 탓이다. 남의 입에 들어갔던 기구가 제대로 소독되었는지, 그렇다 쳐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진료실에 버젓이 펼쳐져 있는 건 타당한가, 간호사와 의사들은 한 사람의 진료가 끝난 뒤 손 소독이 얼마나 철저할까, 이런저런 것들이 다 미심쩍다. 이건 추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금껏 겪어 본 것이어서 치과가 정말 싫다.

어느 치과의 기구에서 다른 사람의 피냄새(?)인지 살냄새(?)인지 배릿한 냄새를 맡고 한동안 비위에 시달린 적이 있다. 이후 이곳저곳에 전화해 가장 청결한 곳을 알아보기도 했다. ‘항상 대기실이 빼곡한 치과에서 하루 사용하는 몇 종류 기구들 양은 대체 얼마나 되며, 오래 끓여 삶는 살균소독을 실시할까?’ 이후 난전처럼 아무렇게나 진열된 기구들만 봐도 기분이 께름칙하다.

외양도 실내도 깨끗해보이던 한 치과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얼굴에 덮개를 쓰고 진료의자에 지루하게 누워있는데 느닷없이 의사의 손이 입에 닿았다. 장갑도 안 낀 맨손에서 묵은 담뱃진 냄새와 근근 찝찔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분통이 터져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인데 입 속에 손이 들어있어 말도 못하고, 확 밀치고 뛰쳐나올까 망설이는 도중 진료는 끝나고. 기껏 돌아오며 치과를 향해 가자미눈으로 흘기며 ㅆㅂ,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곳저곳 자주 옮겼다. 지금껏 네 개의 어금니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이별을 했다. 내 것은 깨끗하다더니 금방 더러운 쓰레기가 되자 뒤도 안 보고 나는 돌아섰다. 수십 년을 치아가 한 일이 얼만데…. 더러는 버린 것들이 많이 미안하고 그립다. 있을 때 잘할 걸, 쓸쓸히 내 몸을 떠난 나의 것들.

이후부터 더더욱 치과가 싫어졌다. 하지만 약국에 들려 선전에서 본 약을 별 효과도 못 보며 털어먹고, 그렇게 미뤘던 염증이 큰 탈을 내고 말았다. 못 견딜 만큼이 되자, 드디어 개인 병원의 소독처치 손익에서 자유로운 보건소에서 발치를 했다.

처방전을 본 약국에서 비슷한 약이라고 줘서 먹었다. 한 시간쯤 되자 위의 통증이 왔다. 그래도 또 먹고, 또 아프고, 하루 반을 먹고 너무 아파서 가까운 응급실로 갔다. 다시 아파서 대학병원응급실까지. 약물에 의한 급성위궤양. 내시경에는 무를 긁는 강판으로 위와 십이지장까지 문지른 듯 상처가 성성했다.

이틀 후 눈알이 빠질 듯 두통이 왔다. 놀라서 대학병원 안과로 달려갔다. 치주염으로 인한 눈꺼풀 염증의 영향.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도 없는 건강한 안구에 두 종류의 물약을 넣으며 두통은 사라졌다. 다시금 치과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잇몸의 염증이 전신의 모든 기관에 영향을 주며 특히 심장과 치매유발까지 한다고 한다.

아직 건강검진에서 모두 양호를 받은 내가 유난히 깔끔 떠는 의심병 때문에 얻은 속병이다. 두 달이 다 되도록 완전 났지 않는다. 실은 조금 낫자 음식을 제대로 가리지 않아서 그렇다. 친절한 대학병원의 예약진료시간이 오늘 아침부터 휴대폰에 뜬다. 아무래도 의심병까지 낫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치과가기를 미루지 않고, 여차하면 마구 달려갈 작정이다.

무시무시한 후유증으로 갖은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치과와 친해져야한다.

이미진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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