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미진 주주통신원

한 이틀 빗물에 씻긴 해가 어제는 센 바람에 드라이하게 마르더니 오늘 산뜻하게 나들이 중입니다. 오늘 맑은 아침 기념으로 안도현시인의 시를 한 편 올릴게요. 무척 부적절한 박근혜정권 동안 순수의 결정인 시를 안 쓰겠다며 선언한 이 시인은 또 얼마나 장한가요. 안시인의 시는 알사탕을 녹여먹듯 가만히 생각을 굴리면 참 오묘하고 깊어요.

 

나무 생각

                                               안도현 시인

나보다 오래 살아 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날리며
물 위에 점점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에 기를 쓰고 붙어 있는,
허리 뒤틀린 조선소나무를 보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욕망은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멀리 보내는 밤나무 아래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같이 나도 관계를 맺고 싶다

나 외로운 날은 외변산 호랑가시나무 숲에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달라고,
엎드려 상처 받고 싶다

이미진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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