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에 있는 텃밭에 들깨를 심다가 모자라서 모종을 사러 갔다. 그곳에서 내 또래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상대방이 “지금 어떻게 되슈” 하고 물었다. “뭐가요?” “아니 나이가 얼마냐니까?” “그럼 댁은 몇이슈” 하고 되물으니 65살이란다. “내 둘째 동생과 같네그려” 하며 웃으니 “예끼 여보슈 동생이라니, 당신이 오히려 내 동생뻘일 텐데” 하며 기분 나빠 한다.

그 사람과 서로 동생뻘이라며 옥신각신 다투니 가게 아주머니까지 그 사람을 거들고 나섰다. 내기를 하잔다. 들깨 모종 한 판이 7000원이니 내가 옳으면 한 판을 공짜로 주겠단다. 나는 두말없이 주민등록증을 까 보였다. 다들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내 나이에 비해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형제들도 또래에 비해 젊어 보이니 부모님 덕이 클 것이다.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 산 지 1년이 조금 넘어서인지 피부도 아직은 팽팽한 편이다.

나는 전철을 탈 때도 되도록이면 경로석에는 가지를 않는다. 경로석으로 가면 왠지 노인이라는 기분이 들어서다. 아직은 50대 중반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노인네나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면 거부감이 든다. 혹시 나만의 착각 속에 사는 게 아닐까? 겉으로 젊게 보여도 이미 노인이 돼 버린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것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도 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노인의 도전정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강한 의지와 해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그룹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아흔둘이라는 고령에도 파나소닉 부문에 손을 대 성공을 거둔 것도 열정적인 도전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새뮤얼 울먼은 <청춘>이란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비록 나이 90이라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적인 도전의식을 갖는 한 우리는 아직 청춘으로 지낼 수 있다고 말이다.

김번희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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