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아름다운 가게'에 가다가 운현궁에서 창극을 한다는 펼침막과 마주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운현궁에 가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살던 집임을 알았고, 무대가 펼쳐질 장소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공연을 보고는 싶지만 '가야 하나? 그만 둘까?'고민에 빠졌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다는 재난문자가 아니더라도 숨이 턱턱 막힐 것처럼 더웠으니까요. 집 안에서도 몸이 끈적거리고, 빆으로 나가면 살갗이 타는 것처럼 뜨겁고...

이런 마음을 알았을까요? 3시가 넘어서 마른 천둥이 울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속이 후련하게 기다리던 비가 쏟아졌습니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풀 꺽였습니다. '이건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비가 내리기 전과는 확실히 다른 선선함과 청량감이 느껴졌습니다. 

창극 란(蘭)은 조선을 지켜온 선비 정신을 꽃피우고 싶은 흥선대원군과 혼세의 시대에 나라를 지키려고 한 고종과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서사시와 판소리로 풀어낸 공연물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다'는 것엔 동의하지 않지만 공연물로는 괜찮았습니다. 창극 '란'으로 1부 공연이 끝났고,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전수교육조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곽태규명인과 서울예대 겸임교수로 재직하는 가야금 연주자 김미숙선생부부의 멋진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청사초롱이 내걸린 한여름밤의 고궁에서 펼쳐지는 그윽한 공연에 함께 하시지요.

몇 가지 아쉬움도 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끝날 때 사회자와 연주자 사이를 오가는 마이크가 공연을 산만해보이게 했습니다. 마이크를 한두 개만 더 준비해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음입니다. 차량과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에 차량의 경적. 연주 중에 터지는 카메라 셔터소리와 핸드폰의 벨소리, 아이들의 말소리 등등. 공연 중에 차량을 통제하면 좋겠지만 관람객이 예의만 지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추임새입니다. 어이, 좋다, 얼씨구, 잘한다. 서양의 공연과는 달리 우리의 것은 이런 추임새가 필요하고, 또 그것이 있어야 무대가 더 살아납니다. 공연에 앞서서 공연자들이 그것을 주문하고, 소리도 내보게 하지만 실제 공연 중에는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추임새를 넣기 싫어서가 아니라 언제, 어떤 추임새를 넣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적절하게 넣을 자신이 없으니 '공연히 공연을 망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추임새를 방해합니다. 학교에서 국영수뿐 아니라 꾸준히 음악(예체능)수업을 하고, 그 시간에 추임새 넣는 걸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8월 7일 - 28일,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운현궁에서 공연이 시작됩니다.
8월 14일, 21일, 28일에 한여름밤의 정취를 즐겨보시길.

▲ 자리를 빼곡하게 채운 관람객들
▲ 고종과 명성황후
▲ 흥선대원군과 소리꾼 진채선
▲ 창극 란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 피리 명인 곽태규 씨
▲ 가야금 명인 김미숙 씨
▲ 태평소(날라리) 연주
▲ 금슬 좋은 부부의 단소와 가야금 공연
▲ '금슬'. 거문고와 비파의 어우러짐이란 뜻이랍니다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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