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행 셔틀버스 창밖으로 멀리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져 왔고, 차마 들킬까 싶어 창문 커튼을 내리고 얼굴을 돌렸다. 10년전 8월 소속회사의 사업중단으로 개성에서 철수하던 내 마지막 모습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가슴앓이를 했었다. 함께 일했던 북측의 아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억울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이 많은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타의에 의해, 의지와 무관하게 보따리를 싸고 내려오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방황의 시간을 여러 해 보냈고, 밑바닥부터 기초체력을 다진다는 각오로 준비해온 시간이 5년을 넘어섰다.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올해 4월 드디어 '협력사업자승인'을 통일부로부터 발급받았다.

지난 정부에서부터 남북관계가 긴장과 경색국면을 지속해 왔던 까닭에 객관적인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고, 사업여건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소걸음으로 걸어오다보니 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혹자는 대북사업이라고도 하면서 거창한 이름을 들이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성공업지구에 입주한 국내기업과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생필품과 소모품을 불편함 없게 공급해 주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에 불과할 따름이다. 다만 북측 성원들과 함께 근무하게 되고, 북측 성원들의 생활모습을 좀 더 가까이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의 일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분과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매장 전경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하필 북한이냐고? 구구절절 길게 설명하기도 난처하고 소모적인 구설에 휘말리기도 싫어서 간단명료하게 대답해 준다. “나는 이 사업을 준비해 왔었고, 같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을 때 북쪽에서 벌이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맞는 말이다. 직장생활 시작한지 30년이 가까워 오지만 10년 전에 그 험한 시간을 보냈던 개성생활이 돌이켜보면 내게 가장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스스로도 모든걸 던져 열정을 불태웠었고, 사업적으로도 가장 큰 성과를 가져왔었던 경험이 고스란히 내 몸속에 축적되어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물론 강산이 변하고 남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겐 함께 호흡했던 북녘의 일꾼들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통일전사들! 남측의 법인장들과 주재원들에게 마음의 빚이 남아 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린 신의없는 남측기업의 현지관리자, 입주기업의 불편함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못한 채 뒷수습도 못한 채 사업을 접은 무책임한 회사라는 뒷모습을 보여준 게 두고두고 생채기로 남아 있었다.

다시 개성진출을 앞두고 두가지를 다짐한다. 하나는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또다시 쓰라린 상처를 안고 직원들을 내팽겨치고 철수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살아남으리라.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는 희열을 맛보리라.

▲ 개성진출 1호 작품. 금강산비누.

다른 하나는 남쪽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계가 있겠지만 북측의 성원들과 지지고 볶고 부대끼는 일상을 통하여 진솔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문화의 차이와 이질감에서 비롯된 충돌과 갈등도 수두룩할테고,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일어날 것이다. 분열과 갈등과 반목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게 아니라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화해, 공존, 동질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 남쪽의 종편을 비롯한 수많은 메이저급 매체들이 분단을 심화하고 고착화하는데 충실히 일조하는 걸 보면서 비록 미미하지만 동질성 회복을 위한 아주 작은 몸짓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개성소식을 통해 주주통신원님을 만나고자 한다.

※ 사족 : 예정대로라면 지금 개성에서 개업준비에 땀흘릴 시간이지만 어제 오후 늦게 출입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연락을 개성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다시 일주일이 날아간다. 멀고도 험하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정진 주주통신원  mod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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