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각안대사(覺岸大師, 아호: 범해(梵海),1820 ∼ 1886)는 완도 석장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엽의 명승으로서 호는 범해(梵海), 성은 최씨이며 자는 환여(幻如)이다. 1835년 시오(始悟)에게서 배웠고 의순(意恂)으로부터 형을 받은 후 1841년 스승 시오의 불법을 이어받아 대흥사 진불암에서 개당(開當) 22년간 경전을 강론하였다.

어느 날 조실 스님께서 안거 결제법어를 하고 계시는데 종이장수가 종이를 팔러왔으나 스님들이 모두 법문을 듣고 있어 아무한테도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 법당 안을 기웃거리던 최씨는 조실스님의 풍채에 반해 법문을 듣고 거룩한 말씀이라 생각하였고, 법당 안의 장엄한 분위기와 스님들의 경건한 모습에 출가를 결심하고 조실스님을 찾았다.

나도 출가하여 스님이 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내심 생각에 잠겼던 최씨는 결심을 한 듯 법회가 끝나자 용기를 내어 조실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저는 떠돌아다니며 종이를 파는 최창호라 하옵니다. 오늘 이곳에 들렸다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현듯 저도 입산수도하고픈 생각이 들어 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조실스님은 최씨를 바라만 볼 뿐 말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창호지 장수 주제에 종이나 팔면서 살 것이지 스님은 무슨 스님, 불쑥 찾아든 내가 잘못이지.’ 가슴을 조이며 조실스님의 답을 기다리던 최씨는 마음을 고쳐먹고 일어서려 했다. 이때였다.

“게 앉거라. 간밤 꿈에 부처님께서 큰 발우하나를 내게 주셨는데 자네가 올려고 그랬구나. 지금은 비록 창호지 장사지만 자네는 전생부터 불연히 지중하니 열심히 공부해서 큰 도를 이루도록 해라.”

그러나 입산한 지 반년이 지났으나 그는 천수경도 못 외웠고, 수계도 못 받았다. 그는 자신의 우둔함을 탓하면서 그만 하산하기로 결심하고 조실스님께 인사드리러갔다.

“스님, 저는 아무래도 절집과 인연이 없나 봅니다. 반년이 지나도록 염불 한줄 외우지를 못하니 다시 마을로 내려가 종이 장사나 하겠습니다.” 최행자의 심각한 이야기를 다 들은 조실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무 심려치 말고 공부를 계속 하거라.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너 같은 수행자가 있었는데 열심히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조실스님은 옛날 인도에서 부처님을 찾아가 수행하던 판타카 형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최 행자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조실 스님이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밖에서 환한 불빛이 비쳤다.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문을 열어 보니 최행자 방에서 방광이 일고 있었다. 조실 스님은 감격스러웠다. 최행자는 곤하게 잠들어 있는데 그가 읽던 천수경에서 경이로운 빛이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또 이변이 일어났다. 글 한줄 못 외우던 최행자가 천수경 뿐 아니라 무슨 경이든 한 번만 보면 줄줄 외워 나갔다.

이 스님이 후일 대흥사 13대 국사의 한 분인 범해 각안 스님이시며 조선조 중엽 지금의 해남 대흥사 산내 암자인 진불암에는 70여 명의 스님들이 참선 정진하고 있었다고 한다.(한국사찰전서, 해남 진불암)

각안대사의 저서로는 동사열전(東師列傳), 범해선사유교(梵海禪師遺橋), 경훈기(警訓記), 사십이장종기(四十二章種記), 참상선지(參商禪旨), 간화결의(看話決疑),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이조불교(李朝佛敎)가 있다.(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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