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반기는 작은 아이, 행복한 모습 오래 볼 수 있기를

▲ 충전소 사무실에서 찍은 광수의 모습

"광수야!광수야!"

"잘 있었니?"

광수는 사람이 아니다.

광수는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고 몸으로 두발을 올려 반갑다는 표시를 하기도 하고 내가 누군지 알면 막 짖어댄다.

오랫동안 안 가다가 한번 가기라도 하면 짖는 소리가 다르다.

왜 그동안 안 오고 이제 왔냐고 울부짖는 소리로 짖어대며, 좋다는 표현을 한다.

보고 싶었다는 듯 그 나름의 표현을 하곤한다.

가스충전소에 있는 코카스패니얼 (일명 맹인안내견)으로 잘 알려진 익살스런 개, 광수다.

사람을 잘 따르고,붙임성도 좋고,온순하며,장난을 무척 좋아하는 개다.

광수를 알게된 것은 5년 쯤 된다.

남편과 같이 일을 하느라 차를 끌고 다니는데 가스를 넣으려고 충전소를 갔을 때 충전소 한쪽 구석에 커다란 개집이 있었고, 거기에 누런 개 한마리가 있었다.

주인에게 "주유소에 왠 개가 있어요?" 물었다.

이 충전소 주인은 태어난지 3개월 때 데려 왔다고 했다.

코카스패니얼 종의 개는 처음 본 사람한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귀엽고 순해서 쓰다듬어주면서 주인한테 개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개 주인은 웃으면서 "개이름이요?", "광수예요."한다.

"네?"

"광수라구요?"

하며 피식 웃으며 나는 되물었다.

사람 이름은 광수라고 들어봤지만, 개 이름이 광수라고 하니 웃음이 났고, 사람 이름을 개 이름으로 쓰는게 특이해서 재미있었고, 잊어버리지는 않겠다 싶어서 나는 “니 이름이 광수니?" 하면서 머리를 만져주었다.

광수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광수야!다음에 또 보자"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에 또 오면 광수 먹을 것 좀 갖다 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다보면 매일 가는 곳만 가서 충전을 할 수가 없어서 여건이 되는대로 가스를 충전 하다보니 광수가 있는 곳을 다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두번째 보는 날에 “광수야! 잘 있었니?” 하고 부르니 알아보고 좋아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보니 조금 커 있었다. 차에서 먹던 새우과자을 주니 곧잘 받아 먹었다.

다 먹고 빈 봉지를 털어 보여주며 다 먹었다. 하면 더 달라고 한다.

"다음에 또 줄게. 나중에 또보자. 잘있어"하곤 헤어졌다.

두번 밖에 안 봤는데 광수의 관대한 환영에~

난 속으로 '넌 어쩜 그렇게도 사람을 잘 따르고 반가워 할 수가 있니? 왠만한 사람보다 낫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여러번 갔고, 갈 때마다 먹을 것을 주며 친해졌고, 광수를 부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짖어대곤 했다.

▲ 충전소 사무실에서 찍은 광수의 모습

그리고 또 다시 한참만에 갔을 때는 늦가을이었고 약간 추운 날이었는데 광수가 안 보였다.

주인에게 "왜 광수가 안 보여요?" 물었더니 "광수 집 안에 있어요"란 말을 전했다.

이유인즉슨 다리가 아파서 누워 있다는거란다.

가끔씩 운동을 시킬 때 줄을 풀어주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운동을 하곤 했는데,

그 와중에 다리를 삐끗 했던지 주저 앉아서 병원 갔더니 다리가 골절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광수야! 다리가 아프니?"하고 말을 꺼내니 이녀석이 내 목소리를 듣고 아픈 다리를 절룩이며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괜히 불렀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지만, 걱정스런 마음에 한 번 불러봤는데...

얼굴에 아픈 표정을 하며 나온 녀석 뒷다리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도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광수야? 너 많이 아프구나! 어쩌다 다쳤니?" 하며 쓰다듬어주고 내가 마시려고 들고 있던 따뜻한 율무을 조금 땅바닦에 주니 핧아먹었다.

아파하는 광수에게 "빨리 나아서 보자"하고 돌아섰다.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광수는 안 놀아주면 자기가 공을 물고 와서 놀아 달라고 한다. 목 줄이 풀려 있을 때 차 안에서 광수야! 하고 부르면 차로 달려와 앞발을 들고 차 문에 올려놓고 반긴다.

그러면 신랑은 차에 긁힌다고 다음엔 부르지 말라고 한다.

어찌나 장난을 좋아하고 익살스러운지 덩치는 크지만 하는 짓은 귀엽기만하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었고, 다시 광수를 만났다.

나는 광수와 놀고 있는데 우리차 옆으로 택시가 한대 들어왔다.

그 택시 기사가 멀리서 광수야! 하고 부르자 잘 놀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뒷걸음질을 치며 잠시 눈치를 보면서 경계 태세를 하더니 어딘가를 향해 짖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짖는 소리가 평소에 내가 와서 반갑다고 짖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로 달려들 것처럼 사납게 짖어대는 것이다.

처음 보는 이상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제가 왜 저러지?"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말인즉슨, 광수가 어릴 때 택시 기사가 와서 어린 광수에게 장난치면서 겁을 주고, 소리도 지르고,윽박도 지르고, 야단도 쳤다고 했다. 담배를 피면서 야! 너도 한번 펴봐. 하면서 개한테 담배를 들이대고 연기를 마시게 했고, 위협을 하고 못되게 굴었다는 것이다.

그 택시 기사는 올 때마다 개가 귀여워서 그렇게 했다지만, 어린 강아지는 그런 사람이 무섭고 싫어서 피해 다녔고,조금씩 크면서 그 택시만 들어오면, 아주 사납게 공격적으로 짖어댔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광수가 그 택시 번호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공포스러웠으면 개가 택시를 알아봤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그 택시가 차를 새차로 바뀠는데도 알아보고 짖었다는 것이다.

번호판은 그대로 사용했다는데....그럼 광수는 차앞의 번호판의 숫자 모양을 기억하고있다는 것인가?

주인 말에 따르면 멀리 그 차가 들어오면 짖는다고 한다.

머리가 좋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개를 괴롭혔으면 개가 차 번호를 보고 짖어댈까 싶어 인간을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 하고 싶었다.

‘한 낫 말 못하는 동물에 불과 하지만 미성숙한 인간들 보다 네가 더 낫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개로 태어난 너보다 더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을 용서 해주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을 괴롭힌 인간을 알아내는 걸 보면서, 개 이기 이전에 인간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광수는 전생에 스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갈 때 마다 멀리서 부르면 이상하게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고 가까이 가서 "광수야!"하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곤 했다.

그러기를 거의 몇 개월쯤 되었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늙어 가나보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지, 다른 의심은 하지 않고 지나가곤했다.

그런데 점점 더 못 알아보는 것 같아 물어 봤더니, 눈에 벌레가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 가서 눈 안에 있는 기생충을 빼냈다고 했다.

동물들은 눈 안에서도 벌레가 잘 생기고,그것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구별을 못하고 있었던 거란다.

광수가 충전소에 있으면서 주변 환경이 나빠서 그런지 병치레가 잦았다.

기운을 못 차려서 병원 가서 링거도 몇 번이나 맞고 왔다고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긴 하지만 딱히 도와줄 수도 없으니 속상할 때도 많았다.

얼마 전엔 가니까 장가를 보내야 겠는데 색시가 없다고 했다.

3개월 된 아기 강아지를 데러다 키웠는데 벌써 장가 갈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산전수전 풍파를 다 격은 광수를 생각하면 오늘도 행복한 웃음이 나오고, 건강하게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편집=최홍욱 통신원

박혜정  uns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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