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모딜리아니전’을 관람했다. 갈수록 더위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힘들던 차였는데, 비가 내린 덕에 심정도 차분해져서 다행이었다.

모딜리아니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대학생 시절 후배를 따라 무교동에 있는 ‘개암’이라는 다방에 갔다. 그곳에서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을 처음 보았다. 길쭉하게 늘려 그려진 그림 속 사람들은 편안해 보이면서도 슬픈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독특한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강한 첫인상을 받으며 모딜리아니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에 취직해서 급여를 받고 처음 구입한 화집 중에 모딜리아니가 있었다. 그가 그린 많은 인물에는 눈동자가 없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델의 겉이 아닌 무의식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을 모아 책에서나 봐왔던 그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뿌듯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니 모딜리아니 그림의 슬픈 분위기는 그가 자주 시달리던 병마와 가난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탈리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바쁜 아버지 대신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생애 첫 미술관도 외할아버지가 데려갔다. 몹시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와 이탈리아 전역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미술관과 유적을 돌아보며 많은 미술작품을 접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깨닫고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그에게 준 영향은 사랑을 담은 것이었기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가 보다.

가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녀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자녀에게 사랑과 함께 정서를 키워주는 몫을 담당하는 것도 또 하나의 손자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녀에게 사랑을 담아 전통, 문화, 역사 등을 접할 수 있게 해주면 엄마들이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려는 방법과 다르게 손자녀가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원경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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