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사는 지난 8월 주주·독자 참가자 20여 명과 10박11일 ‘한겨레 유럽미술관 기행’ 다녀온 김영훈 화백의 여행스케치입니다. <한겨레> 3일치 ESC 20면에 실린 것을 이곳에 동시에 싣습니다. 그리고 남프랑스 아를에서 참가자들이 그린 그림도 소개합니다.
[아를 병원에서의 스케치 보기]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8
‘꿈꾸는 자는 아름답지만 꿈만 꾸는 자는 비루하다.’ 그래서일까.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나선 중·고생과 대학생, 젊은 시절 채우지 못한 갈증을 이 기회에 채우겠노라 부푼 마음으로 나선 중년, 그리고 남은 생을 좀더 풍요롭게 가꾸고 싶은 열정의 칠십대 중반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스물아홉명이 대가족을 꾸렸다. 지난 8월4~14일 10박11일간 진행한 ‘한겨레 유럽미술관 기행’이다. <한겨레> 화백 생활 27년을 하면서 동행 해설자로 이 여행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부담도 있었지만, 어떠랴. 마음의 돌을 쫄 정과 망치, 그림을 그릴 붓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올해 다섯번째를 맞은 ‘한겨레 테마여행’은 이탈리아 로마를 시발점으로 하여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를 거쳐 밀라노, 그리고 남프랑스의 휴양지인 니스와 엑상프로방스, 아를과 마르세유를 통한 뒤 파리에서 여정을 마쳤다. 그 여정 속에는 세계 4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바티칸과 루브르가 있고 우피치와 브레라, 오르세, 퐁피두 등 유수의 미술관과 고흐의 마지막 작품 활동지였던 오베르쉬르우아즈를 거치게 되어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양미술의 흐름을 한번에 아우를 수 있는 나름 최적의 코스다.
40℃를 웃도는 폭염과 함께 기행은 시작됐다. 몸에서 배설하는 땀이 흐르고 마름을 반복하면서 바로 끈적끈적해진다. 설레었던 마음은 이내 낯섦과 불편함으로 대체된다. 서로 배시시 웃으면서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며 말을 섞는다. 하지만 환한 웃음이다. 목적이 있는 여정이기에.
서양미술의 진귀한 작품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이자 성지인 바티칸과 루브르는 역설적으로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은 오래전부터 상실한 곳이다. 바티칸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루브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작은 화폭의 <모나리자> 때문이라면 오해일까. 끝없는 사람들 행렬에 관람은커녕 접근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마주하고 교감해야 할 상대가 그곳에 있으니 그런 혼잡함이야 무슨 대수일까.
목을 꺾어 올려다본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스티나의 넓은 천장에 그가 정과 망치 대신 붓을 들고 그리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홀로 이 거대한 그림을 이토록 생생하게 표현하고 창조한 그에게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는 말은 결코 헛되지 않다. 측면의 예언자 그룹에 근육질의 다섯명의 무녀가 자태를 뽐낸다. 신탁을 전하는 여사제인 시빌라(현명한 여자)다. 이질적인 이교의 무녀들이 이채롭다. 교황이 집전하는 곳이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무녀들은 제우스와 아테나가 아닌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기 위해 예언자들과 함께 녹아들어 있었다.
균형과 비례, 조화를 완벽하게 소화한 르네상스의 걸작 <아테네 학당>은 동시대를 풍미한 르네상스의 3대 예술 거장들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그림이다. 그림에선 두 사람을 향한 라파엘로의 의식이 드러난다. 그림의 중심축에서 손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 역의 레오나르도는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승화시켰고, 전면에서 홀로 외로이 번민하는 이단아 헤라클레이토스 역의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가 뛰어넘고 이겨내야 할 거장에 대한 시샘과 존경이 투영되어 있다.
난 카라바조와 고흐와 모딜리아니를 사랑한다. 누군들 진한 여운을 남길 스토리 하나 없겠냐마는 그들은 창작의 꽃을 화려하게 틔우고 만개할 시기에 애석하게 꺾여버린 천재들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서른일곱 언저리까지였다.
카라바조는 주체할 수 없는 창조성만큼이나 광기어린 행위로 쫓기고 도망치다 타지에서 쓸쓸히 유명을 달리했고, 고흐는 간질성 정신질환과 사회부적응,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농익어가는 밀밭에서 자살했다. 모딜리아니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모디’처럼 저주받은 화가였을까.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결핵으로 세상과 등지자 어린 아내 잔 에뷔테른은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에도 몸을 내던져 그를 따라가 코끝 시린 사랑의 순애보를 전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품에선 더욱 남다르고 짠한 애수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라파엘로도 여인의 치마폭에서 헤매다 그 나이에 명을 재촉했다. 그들이 세잔처럼 장수했다면 어떤 걸작들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을까.
걸음을 재촉하여 마네와 모네, 쇠라, 고갱 등과는 눈인사를 나눴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아틀리에를 찾아 그와 함께 말라버린 사과를 같이 응시했으며, 마티스와 샤갈은 그들만의 미술관을 방문해 따뜻한 악수를 나눴다. 기행이 끝에 다다르자 뒷덜미가 따끔거리고 서늘하다. 루벤스와 페르메이르, 라투르, 프라고나르, 다비드 등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해후하지 못했기에 토라진 그들의 아우성이 귓가를 윙윙거린다.
돌아선다.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고 새로움과 낯선 만남으로 이어진 여정이 어느덧 끝에 이르자 그간의 불편과 고됨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진한 아쉬움만 남는다. 그리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다시 돌아갈 날 있지 않을까.
[기사 원본 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07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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