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얼마전 개성에 문구점을 연 김정진 주주통신원이 보내온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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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내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곳이 정.배수장이고 그 다음이 아마도 불땅골 언덕배기가 아닌가 싶다. 건물높이로만 따지자면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가 위치한 종합지원센터 이겠지만 위치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 뷸땅꼴 언덕에서 보이는 개성하늘

 

개업 준비를 한답시고 분주히 돌아다니다보니 이발한지가 한 달을 넘은지라 그러잖아도 볼품없는 헤어스타일이 거지꼴이 되어가는 것 같아 작심하고 물어물어 공단 내 이발소를 찾아 나섰다.

남측의 미용실을 생각하고 10~20분이면 충분하겠거니 하고 전해들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컨테이너 숙소가 밀집된 곳을 아무리 뒤져봐도 간판도 안보이고 더운 날 땀만 삐질 삐질 흘리고 말았다. 지나가는 북측차량을 잡고 물어보려 했지만 본체만체 지나가 버린다.

멀리 주유소 차량이 보이고 북측 운전수가 그늘에서 쉬고 있는 게 보여서 찾아가 물어보니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컨테이너 하나를 가리킨다. 다시 컨테이너단지들을 헤집고 올라가니 지붕에 자그만 이발소 등이 그제야 보인다.

▲ 공단내 콘테이너 이발소 전경
▲ 공단내 콘테이너 이발소 전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자리 중 한자리는 북측손님으로 보이는 이를 여성 이용사가 상대하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북측의 잡지와 신문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 내부풍경은 영락없는 70년대 읍내 이발소이다. 어정쩡하게 서 있으니 비어 있는 옆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그제야 남측과 북측의 이용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 남.북측 이용시간안내

잠시 후 이발 중이던 북측손님이 안쪽에다 대고 “00동무 손님 왔어”라고 소리치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여성 이용사가 나와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묻는다. 오호라~ 남쪽손님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그런지 획일적인 머리스타일을 예상했던 내게 신선하게 들렸고, 말씨마저 상냥하기 그지없다.

▲ 이발소 내부풍경

 

사각사각 가위소리만 들으며 맨송맨송하게 있으려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보니 곧잘 대답하면서 처음 오셨냐? 무슨 일을 하느냐? 어느 회사냐? 등등을 물어온다.

한참을 이발 중이었는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도중에 북측 간부인 듯한 남성이 이용사 둘을 바깥으로 호출하더니 한참이나 지나서야 들어왔다.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조심스레 혹시 나랑 대화하는 것 때문에 야단맞은 거냐고 물어보니, 배시시 웃으며 아니라고 한다. 세상에~ 이발하던 손님을 내팽개치고 볼일보고 오는 게 뭐람? 한마디 양해도 없고.. 속으로 투덜대고 있는데 이발은 아직 끝이 안 난다. 얼마나 정성들여 깍고, 다듬고 하는지 나중엔 미안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꼬박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 같았고, 이발하는 동안 내 머리를 북측여성에게 맡기고 나니 묘하고 야릇한 느낌도 든다. 아마도 남측 남성이 북측 여성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인 만남이 아닐까 한다.

남측 주재원들은 위생과 환경, 스타일 또는 남쪽에 단골미용실 등을 이유로 그렇게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이발하는 내내 정성껏 손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는 값진 경험이었다. 요금을 계산하려고 하니 이발이용권을 별도로 구입해서 제출하여야 한단다. 이런... 한 시간을 봉사 받고 외상을 하게 생겼다. 핑계 삼아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사진까지 찍을게 뭐 있느냐고 한다. 재미있는 경험과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하니 일없을 거라고 해서 허락까지 받았다. 리발이용권을 구입해서 외상값 갚으러가서 건져온 사진들이다. 개성에서 근무하시거나 방문할 기회가 있는 분들은 한번쯤은 이용해 보시고 값진 경험을 해 보시길 권한다.

편집 : 이동구 에디터

김정진 주주통신원  mod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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