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방학 때 집에 있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방학이 끝나가는 게 아쉬웠고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 보니 반가웠고 재밌었다. 작년에는 재학생들이 작년이나 재작년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게 부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작년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다.
 
OT 때 신입생들이 일하는 걸 보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한편으론 작년에 나도 저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재학생들은 크고 긴 나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매고 내려오는데 신입생들은 잔가지만 조금 들고 내려오면서 힘들다고 하니.

신입생들과 얘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작년 일을 말하게 된다. 작년에 언니, 오빠들이 나를 보고 “아직 아기네”라고 할 땐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신입생으로서 일도 덜 하고 맛있는 음식도 더 먹곤 했다. 그러나 이젠 나도 재학생이다. 일도 더 하고 맛있는 걸 더 먹지도 못한다. 가끔은 작년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젠 재학생으로서 신입생들을 챙겨줘야겠단 책임감이 든다.

학기가 시작된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벌써 라면이 먹고 싶다. 막상 집에서는 별로 안 먹었는데 학교에 오니까 따끈한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먹고 싶단 생각이 절실하다.

OT가 끝난 뒤에 졸업식 겸 입학식을 했다. 별로 친하진 않았어도 아는 얼굴이 하나둘씩 떠나간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있을 땐 잘하지 못했으면서 막상 헤어질 때가 되면 못 해준 것만 생각나는 것 같다. 언니, 오빠들이 졸업 선물을 받고 소감을 얘기할 땐 나도 울컥해서 밖에 나갔다 오기도 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와서 울었다. 이번에는 졸업생도 많았고 입학생도 많았다. 떠나가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위해 떠나는 거니까 기분 좋게 보내고 새로 입학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겠다.

공동체를 졸업한 언니, 오빠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소중한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나도 공동체를 언제 나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야겠다.

 

‘로테와 루이제(글 에리히 캐스트너, 그림 발터 트리어)’ 독후감
이 책은 예전에 영화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서 골랐다. 루이제라는 아이가 여름방학 때 어린이 캠프를 갔는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를 만난다. 얼마나 놀랐을까? 나 같으면 엄청나게 놀라서 안절부절못했을 거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아이가 나랑 똑 닮았다니.

다른 점은 머리 모양 하나밖에 없었다. 루이제는 긴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 로테는 야무지게 꼭꼭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엔 쌍둥이가 흔하지 않았나 보다. 캠프에선 난리가 났다. 선생님들도 신기해하며 그 아이들을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억지로 붙여 놨다.

두 아이는 처음 마주치는 순간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감정이 상해서 서로에게 뾰로통하게 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호기심을 갖고 친해지게 된다. 그러다 출생에 관한 비밀이 밝혀진다. 두 사람이 한 배에서 태어난 자매라는 사실이다.

책이 처음엔 별로였는데 읽다 보니 재밌어져서 손에서 놓기가 싫어졌다. ‘해리 포터’나 ‘타라 덩컨’, ‘하이디’ 같은 경우도 그랬다. 정말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그때만큼 책에 빠져 지낸 적도 없었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봤다. 특히 마법 판타지를. 아니, 그냥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로 오고 나서는 글 책은 안 읽고 만화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흑백만화는. 그런데 지금은 ‘나루토’가 너무 재미있다. ‘오늘부터 우리는’도. 예전엔 별로 재미없어도 글 책이면 읽었는데 지금은 반대다. 재미가 없어도 만화책은 본다. 그것도 흑백만화를. 더 빠져들기 전에 다시 글 책으로 관심을 돌려야겠다.

루이제는 아빠랑 살고 로테는 엄마와 함께 산다.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쌍둥이는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루이제는 얌전한 땋은 머리 로테가 돼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 엄마에게 돌아가고, 로테는 덜렁대는 곱슬머리 루이제가 돼 아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음모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만약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나 아빠 얼굴을 모른다면 나는 두려워서 절대 만나지 않을 거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혼한다면 나는 누구에게 가야 할까? 엄마? 아빠?

내가 가고 싶은 사람에게 가라고 말은 해도 분명 둘 중 한 명은 상처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엄마도 아빠도 불편할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나는 그 누구에게도 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엄마, 아빠와 함께할 거다. 그래도 웬만하면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기 싫으니까.

겨우 9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 둘이서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어 대담한 행동을 한다는 점에 놀랐다. 나는 생각한 걸 행동으로 못 옮기는 타입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거나 얘기하는 사람이 부럽다.

예전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뭔가를 물어보는 걸 계속 쭈뼛거려서 아빠한테 혼난 적도 많다. 아직도 그런다. 사람들이 내게 주목하는 게 싫고 무대에 서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빠는 내가 쭈뼛거리는 걸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게 내 성격이니까.

로테와 루이제도 성격이 다르다. 루이제는 활발하지만 로테는 얌전하다. 쌍둥이는 성격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로테가 루이제가 돼 아빠와 살고 있는데 겔라흐 양이 아빠와 결혼하려 한다. 로테는 루이제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사실을 알린다. 하지만 그때쯤 루이제도 자기가 로테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들킨다.

남몰래 무언가를 한다는 건 힘들다. 들킬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고, ‘혹시 내가 잘못하는 걸까?’라는 우려를 포함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잘못한 일을 들키면 죄책감이 들지만 잘한 일을 들키면 전혀 두렵지가 않다. 오히려 뿌듯하다. 로테와 루이제가 한 일은 잘한 일일까? 아니면 못한 일일까?

그건 보는 사람의 관점마다 다른 것 같다. 겔라흐 양의 관점에서 보면 로테는 자기의 결혼을 막는 못된 아이일 것이고, 로테의 관점에서 보면 겔라흐 양은 아빠와 결혼하려는 못된 아줌마일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로테와 루이제가 아빠와 겔라흐 양의 결혼을 막고 엄마, 아빠를 설득해서 다시 같이 살게 된다.

로테와 루이제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건 정말 잘 된 일이지만 ‘왜 꼭 거의 모든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그렇다. 몇 편의 영화를 제외하면 모두 해피엔딩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가보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면 무조건 무섭다고 피하지 않고 로테와 루이제처럼 당당하게 맞서야겠다.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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