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거리에는 쭉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넘쳐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차림새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건강해 보이고 예뻐서 나도 한참을 바라볼 때가 있다.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나도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리를 훤히 내놓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겨울날 긴 코트를 입을 때 그 안에 미니스커트를 살짝 착용하는 정도다.

내가 대학 3학년인가 4학년일 때 장발과 미니스커트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머리카락 한 군데를 가위로 싹둑 잘린 채 활보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양장점에서 치마 시침질을 할 때마다 직원들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조금만 더 짧게요, 더, 더….” “안 돼! 그만 올려.”

어느 날 단짝 영주와 명동에 나갔다. 그때 서울의 젊은이들이 흔히 놀러 가는 곳이 명동과 종로였다. 나는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약간의 불안함은 있었지만 미니스커트 입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명동 국립극장 근처에서 경찰관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건너편 명동파출소에 끌려가 보니 장발 청년들로 북새통이었다. 파출소 한편에 굵은 쇠창살을 박은 창문이 있었다. 친구 영주가 창문 밖 골목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말로 그때는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무서워 벌벌 떨었다. 경찰관 아저씨가 학교에 연락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마음을 더 졸였다. 학교와 과를 털어놓은 뒤 훈방되었지만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교수님이 “자네가 어제 명동파출소에 갔었나?” 하고 물으셨을 때 나는 너무 창피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데요….” 우리 과에는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아, 그럼 그 녀석인가 보군.” 그쯤에서 일은 마무리되었는데, 교수님이 그 친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창피했던 일도 지금 생각하면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히려 밋밋하고 싱거웠을 것 같은 내 청춘의 에피소드다.

박혜경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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