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거 보세요.”
수연이가 티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보여줍니다. 고3 여학생의 어깻죽지에 검푸른 피멍이 들어있습니다.

“수연아, 이거 왜 이래?”
“양파를 배달하느라 멍이 들어버렸어요.”
“…….”
그 말을 듣고 대견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2012년 여름방학 때 변산공동체학교 고등부 아이들 15명이 다녀갔습니다. 그때 수연이랑 나눈 대화입니다. 고등부 학생회에서 ‘우리도 제주 강정마을에 지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고 만장일치로 가결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주는 육지와 달리 교통비가 많이 듭니다. ‘그 교통비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손 벌리는 건 창피하니까 스스로 벌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한 망에 30kg이나 하는 양파 배달을 시작했다지요. 양파 한 망에 1,000원의 수고비를 받기로 하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에 그 무거운 걸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면서 배달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경비를 마련하고 목포항에서 모였답니다. 자전거가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가져오고 없는 사람은 제주에서 빌리기로 하고. 그렇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아이들이 제주항에서 한라산 너머의 둥구나무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었습니다.

하룻밤 묵은 뒤 자전거를 타고 강정마을로 이동한 아이들.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제주도를 일주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지요. 맨날 추리닝바지나 배기바지를 입고 다니는 꾀죄죄한 녀석들이 그때 참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부모님께 손 벌리는 대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걸 감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해 겨울엔 남학생 다섯 명이 제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습니다. 감귤을 따면서 지내겠다고 했지만 겨울방학 때는 그 일이 거의 마무리될 때였습니다. 그래서 잠 많은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인력사무소로 일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일의 경중에 따라 일당에 차이가 있었지만 똑같이 수익을 나누면서 말입니다. 그 돈은 2013년 봄, 고3 아이들의 자유여행 경비로 사용됐습니다.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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