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동료 여러분의 큰 도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년전 교통사고로 몸져누워, 고생하시다가 지난달 21일 작고하신 아버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중략) 가족 모두 평생 간직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행복하십시오." 지난 2일 아버님을 조문하고 위로한 한겨레 임직원들에게 감사 인사 편지를 보낸 이는 정인식 한겨레 편집국 종합편집팀 선임기자입니다. 그는 한겨레 창간 이듬해인 1989년 한겨레에 입사해 줄곧 편집부문에서 묵묵히 신문 만드는 일에 전념해오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그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알게 된 어버님과 한겨레의 특별한 사연도 들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이 사연을 한겨레 주주들에게 소개해도 되겠냐는 물음에 그는 "아버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실 것"이라며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다시 한번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20여 년 전, 제가 신문사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을 겁니다. 아버님께서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편지가 왔다. 주식을 사달라는 내용인데, 어떻게 하리...” 아마 1차 증자 때의 일이었을 겁니다. 저는 “아버지가 돈이 어딨다고... 안 사도 돼요”라고 답변을 했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래도 네 얼굴이 있는데, 얼마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저는 “괜찮아요,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끝냈던 대화였습니다.

그 후 한참 지나, 어머니한테서 “조금 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만큼 샀는지 되묻지 않았고요. 아마 당시 아버지의 1년 저축액 정도를 사셨던 것 같습니다. 다음해 아버님께서 “신문사 주총에 오라는 알림장이 왔던데 가도 되냐” 물으셨고, “편한대로 하세요” 라고 지나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번에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알았습니다. 매년, 한겨레 주총에 다녀오셨던 행적이 적혀 있었습니다. 몇시에 출발해, 어디로 가서, 몇시에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몇해 전 아버님이 지붕수리를 하시다 넘어져 입원하셨던 해와, 교통사고로 몸져 누우신 올해를 빼곤, 매년 기록이 있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한겨레식구 모두 주총 행사장에 한두번씩 행사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을테니, 모두 한두번 아버지와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 있는 거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밝은 얼굴로 안내장을 건네주었을 수도, 자리를 안내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 1999년 4월 아버님의 칠순 식사 후 충남 아산 '현충사'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님은 줄곧 다른 신문을 보셨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중간에 접으신 뒤, 늘 아침마다 그리고 한가로울 때마다, 1~2시간 신문을 뒤적거리는 일이 소일거리였구요.

아버님께서 “한겨레신문을 봐야겠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말렸습니다. “그러지 마시라”고. “아버지가 계속 봐오던 신문을 보시라, 크게 보면 그게 그거”라고. 친구들과 괜한 실랑이를 하시거나, 일상생활에서, 아버님 주변의 생각과 다른 글을 읽어야 하는 불편을 안겨드리지 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해 전, 집에 한겨레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아버님의 신문 보시는 취미도 사라졌습니다. 펼쳐지지 않은 신문이 차곡차곡 책장 아래에 쌓이기 시작하고. 여쭤보았습니다. “신문 안보세요? 요즘엔 잘 안보시네요”

어머니께서 나중에 대신 전해주셨습니다. “글이 어렵다고 하시더라, 눈이 금방 피곤해진다고 하시고” 그렇다고 또다시 전 신문으로 다시 바꾸긴 싫으셨나 봅니다.

그리고 십수년전, 집안일 하나를 상의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신문사를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친절한 분”의 안내를 받고, 7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오셨다가, 회사근처 어느 식당에선가 점심을 드시고, 서울역으로 기차타러 가셨구요.

한겨레와 아버님의 직접 만남을 꼽자면 그게 다일 수도,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나에겐 한겨레 신문인데, 아버님에겐 자식의 신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죄송합니다.

정인식 올림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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