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이 재밌다. 깊이도 있다. 날 잡아 신명나게 소통하는 기획 마당이다. 박유리 기자는 거기 있다. 현재 <박유리 서울, 공간>을 연재 중이다. 삿대질 같은 댓글 - “기사야, 소설이야?” - 가 달리는 낯선 방식의 기사다. 낫살로 치면 그는 새파랗다. 10년 안짝 경력이다. 한겨레 경력은 더 짧다. 파업 후유증을 떨치려 국민일보에서 나와 2013년부터 경력기자로 한겨레에 몸담았다. 수시로 기자다움을 탐문하며 취재기사에서 답을 찾는다.

나는 기사를 볼 때 십중팔구 기자 이름은 안중에 없다. 그런데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2014.09.~2014.10.)은 예외였다. 첫 회를 소설처럼 읽다가 취재 기자를 확인했다. 마지막 기사까지 꼬박꼬박 기다리며 읽었다. 그렇게 그녀가 들어왔다.

▲ 한겨레 박유리 기자

 

 

//잔잔하게 마음에 울리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써보고 싶었다//

 

- 형제복지원 사건 보도로 제12회 올해의 여기자상, 제32회 관훈언론상(저널리즘 혁신상)을 작년에 받았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소감을 들려 달라.

=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방송 등 다른 언론에서도 열심히 다룬 아이템이니 내가 다시 쓴다고 상을 받으리라고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사건이 정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타사가 취재를 많이 했건 안했건 그것과 상관없이 썼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이웃 가운데 누군가가 이런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는 걸, 충격적 고발 형식이 아니고, 잔잔하게, 마음에 울릴 수 있도록 쓰려고 했다. 국민일보에서 스토리텔링 기사를 1년 6개월 정도 썼었는데, 한겨레에 와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 두 가지 생각만으로 기사를 썼는데, 전혀 예상 못한 상을 받게 돼서 감사했지만 피해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 형제복지원 사건 취재를 직접 선택했다는 건데, 기자에게 선택권이 있는가?

= 입사한지 얼마 안 돼서 선택을 잘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선택권이 주어졌다. 데스크를 설득만 한다면 어떤 경우든 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특히 한겨레에서는.

 

- 형제복지원 사건 연재는 저널리즘에서는 낯선 스토리텔링 기사였다. 내가 박유리 기자의 기사를 눈여겨본 계기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한 의도는 무엇인가?

= 이전 회사의 2010년의 편집국 분위기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자’"였다. 그렇게 썼을 때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걸 알았다. 또 그렇게 쓰는 게 나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기사는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고 특정 주제에 맞게 틀을 선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 현상은 이런 면 저런 면이 있고, 누군가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다양한 결이 있어 짧고 틀에 맞춘 기사로는 다루기 어렵다.

스토리텔링 기사는 기자가 그 속에서 주제를 암시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결을 보여주면서 독자가 총체적으로 읽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점에서 매력 있다. 또 기사가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마음에 의미를 주는 것도 기자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쓰게 된다.

형제복지원의 경우는 거대한 사건이기 전에 내 이웃의 일이라는 것, 내가 모르는 이웃일망정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문기사 방식보다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스토리텔링은 미국에서도 많이 쓰는 자유로운 기사 형식인데, 한국에서는 스토리텔링 기사조차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문법&스타일&체계를 보여줄 수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스토리텔링 기사마저 공식화되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기자로서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펼쳐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남자 취재원을 처음 만날 때면 늘 부대낀다. 그러함에도 2015년에 <박유리 서울, 공간> 르포를 연재하며 기껍게 낯선 공간을 찾아 낯선 이들을 마주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롭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즐겁다. 그에게 르포는 자유로운 기사 전개가 가능하고, 현장 기자의 통찰과 생각이 들어갈 수 있어 매력적이다. 특히 연재는 기자 입장에서 더 깊이 있게, 또 해당 아이템에 대해 다른 언론인보다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취재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다.


 

//기자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폭포수가 내리치면 딱딱한 돌덩어리도 구멍 날 수 있다//

 

- 현장의 다양한 결들을 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사는 공감을 얻는 만큼 파장도 크다. 그 파장만큼 보도 이후의 변화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 있다. 형제복지원 보도 뒤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한계라고 보는가?

= 기자 생활 하면서 기사 때문에 사회가 바뀌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은 거 같다. 형제복지원 특별법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보도 뒤에 보건복지 진영 위원장은 회의 자리에서 "한겨레"라고는 안 했지만, “어느 신문에서 형제복지원 3부작을 봤는데 이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단다. 법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해가는 데는,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가게 한 데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기자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폭포수가 내리치면 딱딱한 돌덩어리도 구멍이 날 수 있다. 한겨레가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그 기사를 본 다른 기자들도 영향을 받고, 그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 협조한 취재원에 대해 자괴감이 들 때도 있겠다. 어떻게 극복하는가?

= (취재원이) 최선을 다 해 협조 했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내가 못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는 그렇다. 또 취재원은 후속 기사를 써주기를 바라는데 여건상 그렇게 하지 못 할때도 그렇고, 먼저 쓴 기사를 뛰어넘는 (가치있는) 기사를 쓸 자신이 없을 때도 그렇다. 그러나 그 후속 기사를 못 쓰는 대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새로운 기사를 쓰기 때문에 상쇄된다고 여긴다.


 

//기자의 브랜드화가 필요하다 읽혀지지 않는다면 쓸 이유가 없다//

 

- 공이 많이 들고 영향력이 큰 르포나 연재 기사는 그 자체로 끝내기보다 관련 취재원과 독자들을 만나 뒷이야기도 전하면 좋지 않을까?

= 취재에 관한 얘기니까 업무의 연장선이므로 당연히 할 수 있다. 사실 독자들이 취재 뒷얘기를 원하는지는 몰랐는데, 소통 차원에서 동의한다. 기자의 사회적 책무도 있지만, 자기 기사를 세일하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 자기 기사를 "세일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 종이신문을 나부터 보지 않는다. 모바일로 보는 게 편해졌다. 신문쟁이조차 이런데 일반인들은 더 그럴 거다. 결국 온라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자 개개인의 각개전투가 필요할 것이고, 개개인의 브랜드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기사는 사회 변화를 위해 소통하려는 건데, (기자들이) 소통 현장에 나가지도 못해 사람들에게 읽혀지지도 않는다면 기사를 쓸 이유도 없는 거다.

 

- SNS에서 박 기자의 스토리텔링 기사에 대해 호응하는 분위기가 있다. 누군가는 편의점 르포 댓글에 박 기자가 소설을 쓰면 사서 보겠다고 했다. 그러한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네이버나 다음에 기사가 걸리면, 수많은 댓글이, “이게 기사야 소설이야? 문학할 거면 책을 내지 기자는 왜 해?”부터 너무 안 좋은 것을 많이 봐서... 허핑턴 포스트나 페이스북 댓글에는 긍정적인 것도 많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자기관리차원에서 긍정적 댓글에 대해 너무 좋아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정신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칭찬보다는 자기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점이 기사에서 발견되는지를 혹독하게 판단하고 거기에 주의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어 있는 곳을 발견하는 눈이 필요하다//

 

- <기울어진 군 사법의 저울> 연재 시 [단독]기사가 3건 있다. 취재원에 대한 입단속도 있어 단독기사 취재가 쉽지 않을 텐데, 필요한 역량이라면 무엇인가?

= 사건이 벌어지면, 기자들이 취재 경쟁에 내몰리는데, 그 속에서 ‘지금 이 국면에서 뭐가 비어 있지?’, ‘뭐가 취재되지 않고 있지?’ 하는, 빈 공간을 찾는 눈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빈 여백을 발견했다면, 그 여백을 채우기 위해 ‘나는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짜고, 그 다음에 돌진하는 돌파력이 있어야 한다(웃음).

단독기사라는 게 취재 현장에 가까이 붙어서 많은 취재원들과 어울리고 해야 하는데, 소극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빈 공간을 잘 찾아내는 거는 내 장점이라고 본다. 그 시리즈를 할 때도 ‘한겨레가 많은 인권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20대 젊은 남성 청춘들이 불합리한 재판 제도, 기울어진 판단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군대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언론사들이 문제 제기를 안 했었다. 그 기사 후에 실제로 군대 사건이 많이 회자가 됐다, 언론에서.

 

- (웃으며) 그 소극적인 성격에서 돌파력이 어떻게 나오는가?

= 책임감인 거 같다.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산데, 대충 쓰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일 수도 있다. 스스로 고치려고 하는데,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있어서, 완벽한 사람이면 완벽주의가 병이 안 되는데, 나는 허술한 구멍이 많고 덤벙대는 스타일이라서 -사실 기자 되고나서 덤벙대는 걸 많이 고쳤다- 스스로 좀 더 오류가 없고 완벽해 보이는 기사를 써야겠다는 욕심이 많다. 그 욕심이 오만인 거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같다.


 

//자기만의 심장이 필요하다//

 

<박유리의 서울, 공간> 시리즈(홍등가, 용산역 노숙인촌, 편의점 등)를 읽으며 조지 오웰의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1933)과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6)을 떠올렸다. 정작 그녀는 조지 오웰의 르포를 잘 몰랐다. 용산역 기사를 쓸 때쯤, 한 선배가 조지 오웰의 르포를 읽어보면 좋겠다고 해서, 엉뚱하게 ‘나는 왜 쓰는가’를 샀다.

그녀는 한겨레 입사 직후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24시팀 기자였다. 8개월쯤 지나서 토요판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는 한겨레 조직을 잘 모르는 혼란스런 상황이어서 타사에서 해봤던 스토리텔링 기사를 쓰면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까해서다. 이제 보니 토요판팀에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는 선배들이 많다.

 

- <국제시장 르포>의 마지막 문단에서 영화에 대한 언급은 냉정할 만큼 객관적이다. 왜 그래야 했나?

= 영화 <국제시장>이 인기를 끌 때였고, 국제시장은 부산 출신인 내 추억의 공간이기도 해서, 꼭 쓰겠다는 의무감보다는, 국제시장이 속한 부산의 중부가 근현대사에서 어떤 공간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는 한쪽으로 치우친 영화평이 많았다. 어느 평론가가 오른쪽에 서 있는 영화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페이스북에서는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문재인 의원이 괜찮다는 평가를 하기 전이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 어머니랑 그 영화를 봤는데, 어머니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데, 그냥 그 시절을 추억하셨다. 그 시절의 정치나 대통령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소녀 시절의 나’, ‘젊은 때의 나’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지 않은가. 주인공 덕수가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게, 어떤 생각이 있어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시대의 관행이어서 했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좋아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방식으로 영화를 희구하고 이해하는 거다.

영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편할 텐데, 그때 그 시절에 대해 치우친 의견들이 많이 나와서, 나는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가를 얘기하는 게 내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스토리텔링 기사에는 현장 체험에서 얻은 찰나적 통찰이 묻어난다.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주관적으로 녹여낸 철학적 사유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며 사실과 진실을 물어 나르는 그녀만의 감성을 선보인다. 최근의 르포 <최악의 유럽 난민사태>와 <‘잊혀진 망명자’ 한진과 그의 친구들>에서 그녀는 역사 현장과 “기록되지 못한 역사 현장”을 질기게 응시한다. 그녀에게 인생의 모든 찰나들은 해석하고 수용하기 나름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고 겪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곱씹으며 촉을 간다. 

이직의 힘든 터널을 통과하며 그녀는 진심어린 글쓰기를 업으로 삼자 작정했다. 하여 지금-여기에 집중하면서 다가오는 삶의 결들을 선선히 마주한다. 언제든 자기중심을 지키며 팔딱이는 심장으로 기사를 쓰는 그녀는 한겨레기자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인터뷰·글 김유경 편집위원, 사진 차익환 디지털이미지부 부장

김유경 편집위원  newcritic2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