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는 2011년 말경에 약25일간 북부인도와 네팔을 반배낭으로 다녀왔습니다. 대략 일정은 델리→푸쉬카르→아그라→카쥬라호→바라나시→콜카다→다르질링→카카르비타→카트만두→포카라→룸비니→델리입니다.

그때의 느낌과 심정을 기술했는데 지금 읽어보니 그 날들이 생생히 다가오지만 생경하기도 합니다. 저의 맘을 어디에다 내비추기가 어색했는데, 한겨레∙온은 괜찮겠다 생각이 들어 공유합니다. 글에 대한 어떤 평가도 무관합니다.

저는 인도를 다녀오기 전까지, 가급적이면 양지를 보고 세상을 긍정하고 낙관하려 했습니다만, 그 후로는 음지와 낮은 곳이 더 잘 보이고 세태에 대한 부정과 비관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몇 장을 첨부합니다. 말하기도 험악하고 거북한 불가촉천민은 차마 사진촬영도 못했습니다.

 

<인도에서>

삶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시궁창이고 막창이로다.

인간 삶의 하류, 아니 하탁류(下濁流)다.

어찌 이런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늘이 무심하도다.

인간모습으로 동물의 삶을 살아가는 인동(人動)이로다.

-인동은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사는 인종(人種)을 지칭한다.-

만약 창조론대로라면 인간은 최대 실패작이요,

진화론대로라면 가장 저악질(低惡質)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는 없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에 의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도 된단 말인가?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 옳은가?

만물이 인간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만물을 도륙하는 등 갖은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하더니,

이젠 동종의 인간에게까지 그 짓을 거리낌 없이 하는구나.

참혹하고 비참하도다.

인간은 만물의 천적인가 했더니,

동종 인간의 천적이기도 하구나.

 

눈뜨고 볼 수가 없도다!

원시 삶도 이러지는 않았으리라.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를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 살았을 테니 말이다.

인위작위(人爲作爲)가 없었기에 이보다 나았으리라.

생명을 왜곡하거나 왜형하지 않고 그렇게 말이다.

정신이 혼돈혼절하고 마음이 사방으로 흐트러지도다.

하늘은 어디이고 땅은 어디인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누가 저들을 저토록?

타임머신을 탄 과거도 아니요,

21세기 현대는 더욱 아니로다.

미래가 저렇다면 차라리 이 땅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의식도 없고 의지도 없이 그저 움직이는 人動일 뿐이다.

이게 무슨 인간이란 말인가?

여기 서서 그들을 본다는 것이 형벌이고 죄악이로다.

우리들의 일그러지고 망가진 현대와 선진?

문명이 낳은 처참함이로다.

 

인류의 최악의 비극이라면 바로 이를 두고 말함이 아니겠는가?

이보다 큰 죄악과 범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넘길 수 있을까?

비겁하고 야비한 처사로다.

궁색하고 비루한 나약함이로다.

그들 앞에서 인생을 논하지 말라.

침묵할지어다.

잘 삶과 행복이 무엇이더냐?

허튼소리 작작하지 마라.

꿈과 희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개소리 하지마라.

생명의 존귀함도 인간의 존엄도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도다.

그들에겐 그런 것은 없다.

유무(有無) 자체가 없구나.

공(空)을 넘어 허(虛)하고 무(無)할 뿐이다.

다 너희들의 호사 때문이니라.

너희들의 사치와 호위호식의 결과인 것이다.

생각과 사고의 끈이 떨어졌고,

인식과 이해가 암흑에 함몰 되었다.

영육(靈肉)은 분해되었고 육신은 동토가 되었도다.

 

입은 굳었고 귀는 막혀버렸다.

눈은 망막을 잃었고 촉각과 후각은 마비되었다.

사지가 따로 놀고 장기들이 분출한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까부느냐?

그들을 위해 뭘 한다고? 하겠다고?

아서라. 잘난 척 하지마라.

나서지 마라. 허튼소리 하지마라.

가소롭도다. 한심하도다.

천지는 무슨 뜻으로 그들을 낳아서,

요따위로 방치한단 말인가?

 

천지는 왜 그대로 가만히 있는가?

그대로 두고 있기에 천지란 말인가?

천지여!

저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소서!

좀비들을 벌하소서!

네까짓 것들이 뭣을 안다고,

뭐를 할 수 있다고 지껄인단 말이냐?

어리석고 한심하도다.

통한스럽고 통탄스럽도다.

 

어찌할 수 없는 이 영육이 절망스럽구나.

문명 아닌 문명에 익숙해져버린,

이 몸과 맘을 어이할거나?

네가 그들과 함께 한 끼 식사라도 하고,

하루 밤을 묵어 봤느냐?

네가 벌거숭이가 되더라도,

입고 있은 옷을 벗어 그들에게 주었느냐?

네가 굶주림에 시달리더라도,

밥그릇을 비워 그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

 

그때라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지 모를까?

영육이 해체되고 자유와 자율은 방황하도다.

소위 문명인들이라는 지식인과 상류층, 지도층들은,

인동들의 인육으로 진수성찬 하는구나?

나 또한 예외가 아니로다!

악귀의 흡혈귀도 이보다 순백하리라.

이들을 어찌 동류의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애처롭도다. 같은 종임이 부끄럽고 애통하도다.

아!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구나.

▲ 인도 주택가 골목길
▲ 인도 노상 작업장
▲ 인도 초등학교 수업
▲ 하우라흐(Howrah)역 대합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태평 주주통신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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