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사 시절 부모, 형제, 친구 등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성격이 변해 가는 학생들을 봤다. 그들과 음악활동을 함께하며 공감했더니 점점 밝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교단을 떠난 뒤 오랜 기간 반주 봉사를 했다. 내가 연주하는 묵상곡, 후주곡 등을 들은 사람들이 다가와 눈물을 훔치고 치유와 힐링이 되었다며 자신의 아픈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안타까워하고 돕고 싶어하는 것을 안 지인이 음악치료사 공부를 권유했다. 자식 뒷바라지로 차일피일 미루다 둘째가 대학에 들어간 뒤 공부를 시작했다. 막혀 있던 뇌로 의학, 심리학 등 여러 전문용어를 익히기는 참 힘들었지만 자격증 필기시험까지 마치고 나니 뇌가 부드럽게 뚫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습과정을 거쳐 음악치료사로 활동한 지는 4년이지만 그전부터 내가 해온 일의 연장선이 음악치료인 것 같다.

발달장애 치료시간에 한 청년이 발음과 동작 모두 어눌하지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또박또박 말한 뒤 노사연의 ‘만남’을 노래했다. 눈가가 촉촉해진 나는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었다. 어르신 치료시간에 늘 나오던 어르신이 수업 끝날 무렵 ‘짝사랑’ 2절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시간에 해드릴 것을 약속했지만 그 뒤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약속을 쉽게 한다. 바로 앞에 어떠한 일이 있는지 모르고…. 그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 같은 미안함이 가슴에 남아 아직도 어르신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신질환 환우들은 우리와 똑같다. 우리보다 정신이 조금 더 아플 뿐이다. 외로워하고 인정받길 원하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 본인의 틀 속에 갇혀 산다. 두려워 밝은 세상으로 나가길 망설인다. 좀 더 정신이 건강한 내가 손을 내밀어 주고, 용기를 주고, 품어 주면 조금씩 밝은 햇살 쪽으로 나온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음악치료사는 현대인이 스트레스와 상처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아픈 사람에게 다가가 행복을 나누고 싶다.

김진주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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