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 가고싶은 완도(http://tour.wando.go.kr/)자료

먼저 완도의 화흥포항에서 가는 길이 있다. 화흥포항에서는 노화도 동천항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페리호가 운항하며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차를 가지고 페리호를 타도 된다. 노화도 동천항에서 보길도까지는 보길대교를 건너간다. 버스로 15-20분 정도 소요된다.

두 번째로 해남 땅끝마을 갈두항에서 가는 길이 있다. 여기도 1시간에 한 대 정도로 페리호가 운항된다. 30분이면 노화도 산양선착장에 도착하고 이 선착장에서 보길대교를 건너가면 된다. 차로 10여분 가면 보길도가 나온다. 보길도는 이곳저곳 둘러볼 곳이 많으므로 차를 가지고 가는 편이 좋다.

10월 17일 제일 먼저 글씐바위를 찾았다. 조선 숙종 15년(1689년)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풍랑으로 잠시 보길도 백도리에 머물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시를 써서 새겨놓았는데 그 바위를 글씐바위라 부른다.

그 다음 예송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인 예송리 해수욕장이 있으며 예송리 상록수림도 있다. 또 인근에 중리, 통리 해수욕장이 있다. 또 보옥리 뾰족산 아래부터 마을을 감싸면서 해변이 이어지는데, 이 해변의 갯돌이 공룡알과 비슷하다하여 공룡알 해변이라 불리는 보옥리 갯돌밭도 있다.

▲ 예송마을 앞 바다
▲ 예송마을 앞바다의 전복양식장

 

▲ 보길도 뽀쪽산
▲ 공룡알 해변
▲ 공룡알 해변

공룡알 해변을 지나 망끝저망대에 갔다. 일몰을 찍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참 운이 좋았다.

▲ 망끝전망대에서 본 일몰
▲ 망끝전망대에서 본 일몰

10월 18일 새벽 5시 일출을 보기 위해 예송리로 달려갔다. 바닷가에 도착했더니 벌써 관광객들이 와 있었다.

▲ 예송리 바닷가에 갔더니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인사를 한다.
▲ 앞에 보이는 섬이 예작도인데 이 섬은 따로 설명할 것임.
▲ 예송리에서 본 일출
▲ 예송리 해변과 마을전경. 예솔리 해변 뒤의 상록수림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0호이다. 길이 740m, 너비 30m의 이 숲은 다양한 수종과 쑥쑥 자란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약 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방풍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낙서재로 방향을 잡았다.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로 유배를 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고산이 50세 되던 해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고산은 의병을 모아 강화도에 갔으나 강화도는 이미 함락당하고 인종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한다.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한 심정이 되어 세상을 떠나 제주도에 가서 살기로 결심한다. 제주도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잠시 피하게 된 곳이 바로 보길도. 고산은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부용동 골짜기에 '낙서재'라는 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살았다.

▲ 고산의 흔적을 찾아간 '낙서재' 부근에서 강아지 풀 군락을 만났다.
▲ 낙서재
▲ 서재

'낙서재' 앞산 중턱에 있는 동천석실은 보길도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는 정원이다 윤선도 스스로가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 칭하며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 동천석실에서 바라본 부용동
▲ 동천석실이 있는 산의 안개

그 다음 간 곳은 고산이 보길도에 지은 20여개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세연정'이다. '세연정'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국내여행 장소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 고산은 이 세연정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색에 잠겨 시를 쓰곤 했다.

 

▲ 세연정은 강진의 백운동정원,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조선 중기 호남 3대 정원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는 그 가치가 높은 정원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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