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한겨레 주주통신원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모여 삼삼오오 어디론가 향합니다. 바깥공기는 차지만 가슴 가득 부푼 학구열에 정신만큼은 상기되어 우리 통신원들이 모인 곳은 바로 ‘제6회 아시아 미래포럼’이 열리는 서울 광진구의 쉐라톤 워커힐 호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월턴 워커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유명한 호텔. 지하2층 비스타홀 앞 포럼 등록 장소에 가서 자랑스럽게 “저 한겨레 주주통신원입니다” 소개 후 내 이름 새겨진 등록증 받아드니 한겨레라는 이름이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게다가 문재인 대표, 심상정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나, 한국 아줌마. 왠지 잠시 좁혀진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도 좁아든듯 마음까지 벅차올랐답니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6

그런데 포럼이 시작되고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교수의 기조연설이 진행되며 귀에 꽂은 통역기는 정신없이 통역을 해대고 아줌마가 되어 잊고 있던 외계어들, ‘세계’ 그리고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메가톤급 홍수와 함께 통역기 속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긴장감 있는 경제 토론과 나의 무지함이 결합하자 정신없이 펜대는 돌아가며 혼란의 시간도 흘러가기 시작했지요. 사실, 지면에는 긴장감이 그리 잘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영국, 중국, 인도 대표들의 각 연설은 아슬아슬하게 중국과 자국 및 아시아와의 관계, 혹은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같은 미묘한 주제들을 살짝씩 건드리며 이 무지한 아줌마도 스릴 넘치게 토론은 진행되었답니다. 한강 살얼음판 스케이트까지는 아니어도 1시간정도 얼린 냉동고 속 얼음 큐브정도는 되는 살얼음이랄까요.

먼저 스키델스키 교수는 연설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세계 경제가 부양 능력을 잃고 위기에 빠졌는데 “걱정이 되는 것은 세계 GDP의 회복이 늦은 것이 아니라 세계 GDP 안에서 교역의 배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세계 경제의 흐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이야기를 꺼냈답니다. 중국 석학들이 참석한 포럼에서 중국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겸연쩍은 듯, “중국 전문가이신 페이창홍 교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humble(겸손, 겸허)하지만” 개의치 않고 한번 해보겠다(I’ll take a risk of doing so)."며 그 긴장의 얼음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첫 문장은 이랬지요. “China is in trouble!(중국은 위험에 빠졌다)”

스키델스키 교수의 그 한마디는 니체의 ‘Gott ist tot(신은 죽었다)’ 만큼 결연했지요. 그런 후, 지난 29일 <한겨레> 권오성 기자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제성장률, 세계 금융위기 뒤 선진국 경제 위축에 따른 수출 감소, 위안화 방어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리스크 등을 들어” 그 위험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총체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일대일로 정책에 대해 “일대일로 정책이 중국뿐 아니라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 해법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오늘 주로 이야기 할 주제가 바로 일대일로(OBOR)이다”라며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참고로 일대일로(一帶一路; the Belt and Road)는 <한겨레>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13년 9월 발표한 국가 경제전략으로, 중국 서부에서 유럽을 잇는 육로와 남부를 통한 해상로를 따라 유라시아 대륙에 대규모 투자와 개발을 한다는 구상”입니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일대일로는 실크로드경제벨트(丝绸之路经济带)와 21세기해상실크로드(21世纪海上丝绸之路)를 동시에 줄인 줄임말입니다. 2015년 9월 23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대일로정책의 영문명은 ‘the Belt and Road’, 그리고 축약형은 ‘B&R’이라고 정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영문 공문서에서 중국명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도 가끔 붙는 ‘倡议(제의)’라는 단어를 덧붙일 경우 ‘the Belt and Road’ 뒤 initiative(제의, 발의)를 단수형으로 써야하며, 전략(strategy)이나 계획(project), 프로그램(program), 의제(agenda)를 붙이는 것은 오역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전략, 계획, 프로그램, 의제 다 아니고 ‘제의’하는 의미여야 해서 그랬겠지요? 그럼 그 의견을 존중해서 저도 ‘제의’라고 써보지요.

하여튼 스키델스키 교수는 일대일로 ‘제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어요. 권오성 기자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 “수출 투자에서 내수 소비 중심으로 중국의 경제전략을 바꾸며 성장 동력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데 “일대일로 정책은 이런 내부 구조 문제에 대한 즉각적 해법”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라는 거지요. 그 이유로 “첫째로 일대일로는 전형적인 개발 중심 정책에 속하는데 해당 경제블록의 교역 규모가 작다는 점, 둘째, 민주주의에 비해 안정성이 약한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 마지막으로 핵심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장기 계획을 뒷받침할 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 이렇게 세가지를 들었답니다.

스키델스키 교수의 강연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세계의 경제가 힘들어하고, 특히 ‘세계 경제의 구세주’로 떠올랐던 중국의 성장세 또한 둔화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말하는 ‘일대일로제의’는 일시적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기조연설에서 가장 재미있던 것은 스키델스키가 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영국과의 관계였답니다. 특히 <한겨레>지문 상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키델스키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관계에 대해 무척 민감하면서도 재미있는 구도로 바라보고 있었지요. 사실상 미국은 중국의 힘이 커지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요. 그렇기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위안화가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되는 것을 꺼리는 입장이었기도 하고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또 어떻고요.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지요. 그렇게 미국 눈 밖에 난 두 국가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일대일로를 연계하며 미국의 일극성(unipolar)에 대항하는 새로운 힘들의 대척점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키델스키 교수는 다극화(multipolarity)시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눈여겨보고 있었답니다. 미국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세계단일화체계(single world system)안에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들일 기회를 놓치고, 미국의 이런 시도에 위협을 느낀 중국과 러시아가 정략결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중국과 러시아의 연맹이 첫 번째 결혼이라면, 둘째로는 중국과 영국의 정략결혼을 얘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영국에 방문했을 때 영국 캐머런 정부의 환대를 보면 영국에 있어서의 중국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지요. 이번 중국의 영국 국빈 방문에서 중국과 영국이 체결한 경제협력규모가 400억 파운드(약 70조원)에 육박하는 사실만으로도 그 결합이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답니다. 이에 대해 주영중국대사 류샤오밍(劉曉明)은 ‘중·영 황금시대’라 표현하기까지 했지요. 지금까지는 미국의 당숙어른정도로만 생각했던 영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고, 중국과의 많은 경제협력을 꾀하며 중국과 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스키델스키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영국, 두 정략결혼 모두 많은 권오성 기자의 글에서처럼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가진 불안정한 결혼이라는 것이지요.

자, 이쯤에서 아쉽지만 결론을 낼까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영국의 정략결혼을 들어가며 중국석학 앞에 humble(조심스럽고 겸허하게)하게 시작한 ‘살얼음 가지고 놀기’는 비관적인 전망과 함께 끝났습니다. 다음은 인도에서 온 자야티 고시 교수가 나와 이머징 마켓의 발전에 대한 연설이 있었고(이 또한 아슬아슬했답니다), 이어 원탁토론이 진행된 후, 중국에서 온 페이창홍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소장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각 나라 석학들의 발표들이 웃음과 아슬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렇게 혼란의 시간은 끝나고 지친 아줌마는 다 타서 흰 재가 된 듯 얼얼한 머리와 연습장에 받아적느라 굳은살로 찌그러진 손, 하루 만에 다 써버린 펜을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뉴 노멀(저물가, 저성장, 저금리)시대 속 한국의 위치, 한국이 가야할 길에 대해 조금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머지 드는 의문들은 한가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정세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들이다 싶습니다.

밖에 나오니 아차산 자락 찬바람이 지나가는 길 아래로 빛나는 한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아줌마 주주통신원 집에 가서 아이 볼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 잊고 살아왔던 세계에 푹 빠져 모든 것을 소진하게 해준 <한겨레>에 고마워하며,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겨레 주주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이만 ‘제6회 아시아 미래포럼’ 후기를 마치렵니다.

 

참고기사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첫날]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의 꿈”, 권오성 기자
http://heri.kr/index.php?mid=heri&document_srl=149700

‘중국 구애’ 러시…유럽 정상들 방중 ‘줄을 서시오’, 성연철 특파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714771.html

편집: 이동구 에디터

안지애 주주통신원  phoenicy@hot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