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밥 먹다 문자를 받았다. 한겨레 주주센터였다. 참가비 120만원짜리 아시아미래포럼 행사에 주주와 주주통신원을 초대한단다. 이게 웬 떡인가. 기사를 접할 때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라도 올려야 하나 싶었는데. 앞뒤 잴 이유가 없어 숟갈질을 멈추고 바로 신청했다.

인천에서 2시간 이상 발품을 팔아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로 왜 굳이 가려는가. 이유는 하나다. 특정 내용 전달은 정확할 수 있어도, 부분이 전체로 통합되는 과정의 역학까지 신문기사가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토론의 품격, 7(9)포세대 청춘들의 패기, 김제동 토크쇼의 매력을 실감하고 싶었다.

[관련기사 보기]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6
 

토론은 압축된 논리들이 선보이는 사고의 맛집이다

물론 그 셰프는 좌장이다

 

올해 아시아미래포럼의 키워드는 ‘신뢰’와 ‘협동’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불균형을 다스려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대변한다. 국가 간, 지역 사회 간, 지역 주민 간, 기업 간의 끼리끼리를 넘어서는 다차원의 연대 구축을 모색하는 이유다.

그러려면 다양성을 아우르는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 노하우를 모색하는 토론이 첫째 날(10월 28일) 5세션 중 3세션, 둘째 날(10월 29일) 7세션 중 4세션(2개는 시간이 겹치므로 사실상 3세션)으로 펼쳐졌다.

토론은 기조연설자, 좌장, 발표자로 구성되었다(별도 논평자 참여는 한 세션에서만 운영됨). 세계적인 학자들과 국내외 지명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들 탓에 토론의 향미를 기대했다. 토론은 압축된 논리들이 선보이는 사고의 맛집이기에. 물론 그 셰프는 좌장이다.

내겐 28일 종합세션의 김수현 원장(서울연구원)과 29일 ‘분과세션 2’의 임경수 자문위원(전국사회경제연대 지방정부협의회)이 좌장으로서 돋보였다. 좌장 6(7)명 중 불과 2명이었다. 왜일까? 두 좌장이 이끈 토론의 향미와 그와 버금갔던 다른 세션들을 돌아보는 게 답이겠다.

              온후한 언사로 의견 개진과 수렴을 이끈 좌장                  객석의 질문을 받아 토론을 요약하며 마무리하다

▲ 프로정신을 보여준 중국 통역(28일 종합세션)

28일 종합세션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지역 협력>이었다. 실제 행해진 지역사회 변화와 행정 사례를 발표하며 미해결 과제와 고충을 드러냈다. 늘 문젯거리였으나 워낙 예민해서 미뤘던 갈등들을 해부한, 지자체장의 용단과 의지가 필요한 내용이었다. 그 과정을 겪은 김윤식(경기시흥시장)과 강현수(충남연구원 원장), 두 발표자의 진솔함이 반가웠다.

행정가로서 그리고 중앙정부와 주민 사이에 낀 중간자 입장에서,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권한과 책임을 넘겨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도시에 대한 사례들(시흥아카데미, 도랑살리기 등)을 소개했다. 시민운동가들의 지나침을 경계하는 객석의 질문을 안도시키는 지자체장의 차분한 대답이 설득력과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좌장 김수현 서울연구원 원장은, 2차 토론에서, 중국 발표자의 내용에서 미흡했던 구체적인 실천 사례들을 부드럽게 촉구해 제시하게 했다. 또한 발표자 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일구어 호혜적 심층적 논의가 진행되도록 온후한 언사로써 이끌었다. 끝으로 객석의 질문을 받아 토론을 요약하며 마무리함으로써 주어진 시간(55분) 동안 3회전을 거친 심층 토론의 마침표를 상쾌하게 찍었다.

중국 발표자를 도운 여성 통역자의 모습은 기대 않던 팁이었다. 발표자를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유연성과 기동성을 발휘해 즉석에서 원활하게 통역하는 프로정신이 빛나 부러웠다.

            지자체 해법을 향한 열기, 토론 끝까지 객석이 꽉 찼다

▲ 객석을 메운 열기(29일 '분과세션 2')

29일 오전 분과세션은 둘이었다. 나는 ‘분과세션 2’의 <지역 공동체와 사회적 경제> 쪽을 택했다. 내가 들어섰을 때 입구 쪽에 놓인 임시 좌석마저 이미 동나 있었다. 본 행사에서 행정기관 서열로는 낮은 급에 해당할 지자체장인 구청장이 네 명이나 참여하는 토론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열기는, 지역만의 해법을 찾겠다는 지자체장들의 의지에 목말랐다는 표명이었으리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은 무관심한 주민을 주체적 참여자로 움직이게 하는 ‘평생학습’으로써 지역 사회를 학습 실천 공동체로 만들려는 시도를 선보였다.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회적 경제와 가치(정신)를 연계했다. 학습(참여 정신)이 전제된 공동체 구축이라는 점에서 시간은 걸리나 지속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의 행정은 신선하고 과감했다. ‘주민참여예산제’로 끈끈해진 ‘마을공동체’가 일구는 ‘상생경제’는 실험적 수준을 넘어선 직접 민주주의 가치(주민정책지향)를 어느 정도 실현했다. 지역공동체 연계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과 통합전략이 민관협력으로써 가능함을 보여준 귀한 사례였다. 가끔 한겨레 지면과 한겨레:온 통신원을 통해 마주했던 은평구 소식이 결코 행정의 해프닝이나 겉치레가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임경수(전국사회경제연대 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 좌장은, 다른 세션에서는 없었던 논평자들이 발언한 이후에 자칫 산만해질 토론 분위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발표자들에게 ‘지방자치란 000다’로 정의하게 함으로써 지자체장 나름의 요약과 의지를 청중에게 각인시켰다. 시간 제약으로 인해 열띤 토론을 계속할 수 없음이 아쉽다는 좌장의 말에 객석 가득한 청중은 큰 박수로 동의했다.

 

청춘!

지속가능한 파격의 패기

 

7(9)포세대의 청춘! 그 세대 특성 때문에 가슴이 뛰지는 않은 채 <청춘 살롱> ‘청춘아, 뭐 하니?’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청춘을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일단 구경이나 하자’였다.

<세션 1> ‘이런 청년과 함께 일하고 싶다’에 등장한 두 대표, 김윤규(청년장사꾼 공동대표)와 박현우(이노레드 대표)는 경쾌한 입담으로 파격적인 틈새 경영철학을 당당하게 선보였다. 그들에게 재미는 일하기의 기본 태세였다.

두 사람의 공통된 제언을 편집하면 이렇다. “매 순간 즐겁게 일해도 순간순간 고비가 있다. 어려움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므로 배움의 터전으로 생각하자는 관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이야기가 있는 자신의 비전을 만들자.”

<세션 2> ‘이런 일은 어때요?’에서 발표자 김가영(생생농업유통 대표)은 “열매를 맺는 꽃은 빨리 진다. 나는 빨리 지는 꽃이 되고 싶다.”며 스스로를 ‘덜 나쁜 유통업자’라고 밝혔다.

자신의 약점(탈모, 지극히 평범함)을 기회로 바꾼 조상현(남자 맞춤 가발 We can do do it 대표)과 이승미(문화기획자, 전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매니저) 두 발표자 역시 평균을 벗어나 열매를 맺은 “빨리 지는 꽃”이었다.

<청춘 살롱>을 편집해 청춘을 정의해봤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질문을 찾아가는 질긴 생명력으로 재미스럽게 평균을 벗어나며 열매를 맺은 파격의 패기’!

 

김제동의 꽃

유머로써 평화통일의 길을 다지는 새빨간 꽃

 

토크콘서트는 말의 악기를 다루어 곡(시사성)을 즉석에서 지어 들려주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그 과정을 무질러 짜깁기한 헤드라인 기사의 동기는 중상 아니면 모략이다. 김제동은 몇 번 그 피해자였다.

<세션 3> 토크콘서트의 사회는 김제동(방송인)이었다. 그는 통념의 허를 찌르는 비유로써 말길을 닦으며 나아갔다. 잠깐 딴 생각을 하면 맥을 놓쳐 제때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풀어낸 상상력의 줄을 놓쳤기 때문이다.

▲ 김제동 토크쇼

상상력은 문학적 자산이다. 상상은 결핍한 지금 여기를 비집는 틈새 사고이기에 불순하다. 문학이 본질적으로 불순한 이유다. 그러나 우편향 보수세력의 ‘종북 프레임’은 문학성 여부로 불순함을 판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안중에 문학은 없다.

‘종북 프레임’의 불순함 판정은 틈새 탓에 드러난 자신들의 구린 구석을 들킨 데서 비롯된 반사행동이다. 그 탓에 문학적 불순함은 ‘종북 프레임’의 덫을 통과하며 빨갱이로 덧칠됐다. 그들에게 김제동은 빨갱이다.

김제동에게 유머는 혁명과 동의어다. 권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권위는 획일성이다. 획일성을 없애려는 유머는 ‘종북 프레임’ 쪽에서는 불순하다. 그래서 김제동의 유머는 빨갱이다.

그러나 획일성에서 벗어남은 쉼 없는 정진으로 가능하다. 부단히 정진할 수 있음이 곧 청춘의 패기다. 그 열기로 유머를 맺게 하는 붉은 꽃이 피어난다. 붉은 꽃이 맺은 유머는 평화를 지향한다.

김제동은 분단된 국토의 남쪽에서 평생 살아 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유머를 확대 생산해 평화통일의 열매를 맺으려는 새빨간 꽃이고자 할 뿐이다. 청춘의 패기를 일구어 붉은 꽃으로 피어나려 애쓰는 김제동이 빨갱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의 풍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말의 품격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도 따뜻하게도 변화시킨다. 좌장과 토크콘서트 사회자가 누구냐를 따지는 이유다. 방향타 역할에 충실한 좌장이, 유머러스한 사회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청춘은 그러한 말의 최고급 풍미를 흩뿌린다. 말은 의식이며 정신이기에 그렇다. 원고를 보며 읽기에 급급했던 토론 인사들과 달리 <청춘 살롱>의 청춘들은 암기는 했을망정 원고를 꺼내들지도 않았다. 실수를 겁내지 않고 현장 적응을 시도하는 그 정신이야말로 청춘의 패기다.

2015 아시아미래포럼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좌장과 사회자의 양상에 의해, 그리고 청춘의 패기 여부에 달려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준 한겨레에 늦었지만 고마움을 전한다. 한겨레의 그 결정도 사람이 했다. 역시 사람이 최고다. 어디서 뭘 하든.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유경 편집위원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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