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시내버스를 타는 습관이 있다. 시간이 모자라는 여행자가 버스로 관광을 하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도시를 색다르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정반대다. 시니어가 되기 전부터 대중교통은 거의 전철에 의지해왔다. 복잡한 도시교통환경 속에서 약속시간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수단이고, 노선도 몸에 익어 있기 때문이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 정해진 시간이나 약속에 구속받은 중년시절의 생활습관으로 시니어 시절도 그렇게 살아왔다.

젊을 때는 사회제도나 일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주변환경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는데, 시니어가 되니 내가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정보나 사회환경의 변화에 모두 밀려나게 된다. 교통수단으로 지하철만 이용하면 지상의 환경변화는 인식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된다. 예쁜 건물이 들어서도 알 수 없고 상권이나 문화환경의 변화도 인식할 수 없다.

이제 나는 시간이 넉넉한 시간부자다. 서울에서도 이제 버스를 타야겠다. 여유있게 일찍 출발하는 노력을 곁들인다면 오히려 시간을 더 잘 지킬 수 있다. 급속도로 변모하는 도시환경을 잘 관찰하며 100살 수명을 즐길 아이디어라도 얻어야 하겠다. 남산순환도로라도 지나가면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까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주면 서울 둘레길을 모두 걷는다. 5개월 가까이 걸으며 45년 정도 살아온 서울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깊게 느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사람임이 자랑스럽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이 기쁨도 도시 외곽 곳곳에 있는 건물, 문화시설, 풍광을 지상에서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레길에서 깨달은, 버스를 타야 하는 이유다.

마침 <더 버스>라는 서울여행법 책을 접했다. 이 책은 시내버스로 서울을 여행한 청춘들의 이야기다. 젊은이의 글이 시니어인 내 가슴을 때린다. 나는 내년이면 지공(지하철 공짜)도사가 되는데 버스비는 전혀 혜택이 없다. 경제적 현실이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봉중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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