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숲속의 냄새는 은은하면서 구수하다.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썩긴 썩는데 희한하게도 그 냄새는 고약하지 않고 향긋하기까지 하다. 비라도 오는 축축한 날이면 그 냄새가 더 술술 퍼져 나오는 것 같다. 뿌연 물기를 타고 맘껏 땅에서 솟아올라 모체인 나무에게 ‘나 잘 썩고 있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 그 향기는 풍성하다. 눈을 감고 코를 한껏 올려보면 어미에게 다가가는 그 냄새에 취해 잠시 나도 나무가 된 기분이다.

낙엽은 나무의 배설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1년 내내 햇볕을 받아 양분을 만들어 맘껏 자라게 해주고, 열매까지 영글어주고는 생명이 다해 자신의 몸을 버린 나무의 배설물. 우리 동물체의 생명보존을 위해 산소를 만들어주고, 삶에 활력소가 되는 청량함까지 만들어주고는 내 한 몸 버린 우주의 배설물. 생전에 욕심 없이 타존재를 위해 좋은 일만 한 배설물이여서 그렇게 향기로울까?

▲ 소나무 숲 산책길. 땅에 떨어진 솔잎향이 다시 배어나오는 듯하다.

나무의 배설물을 이토록 향이 좋은데 사람의 배설물은 왜 그렇게 냄새가 고약할까? 지구에 못된 짓만 골라 해서 그렇게 악취가 날까?

인간만큼 다양하고 괴상망측한 욕구를 가진 존재도 없다.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만큼 잔인하게 지구를 대하는 동물도 없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살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도 살생을 한다. 인간만큼 제 욕구가 우선인 동물도 없다.  제 욕구가 우선이라서 그렇게 지독한 냄새를 가지게 되었을까?

인간의 배설물이 향기로웠다면 인간은 그 배설물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옆에 두고 썩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향기를 마음껏 맡았을 텐데... 썩어가는 과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발하여 다양한 향기를 만들었을 텐데... 그러면 인간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을까? 아니면 그 배설물을 가지고 또 싸움을 했을까? 뻔하다. 내것 네것 우겨가며 탐욕스럽게 남의 것도 가지려했겠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 호수를 향해 자신을 힘껏 구부린 소나무, 가지도 그 처음은 뿌리인지라... 어떤 가지의 유전자는 물을 향한 본능이 더 크다고나 할까?

산정호수는 ‘산 속에 묻혀 있는 우물 같은 호수’란 말이다. 명성산(923m),·감투봉(504m),·사향산(740m),·관음산(733m),·불무산(669m) 등에 둘러 싸여 있는데 명성산이 가장 인기 있는 산이다. 가을철 억새풀 명성산 산행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정호수를 둘러싸고 5km의 산책로가 있다. 산정호수 둘레길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우리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이야기 하면서 천천히 가다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산정호수의 산책은 보트장이나 식당 등 유흥업소를 끼고 있는 쪽 보다는 그 반대편이 훨씬 호젓하고 낙엽 썩는 냄새가 좋다. 다음에는 반대편에서만 왔다 갔다 하고 싶다.

▲ 산정호수 바로 옆에 있는 자인사. 지어진지 얼마 안 되는 절이라서..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기보다는 자본의 위력이 느껴지는 절이다. 절 뒤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바위산이 품에 안아준 절이라고나 할까?
▲ 호수와 소나무
▲ 호수와 나무와 구름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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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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