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린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귀한 보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조선왕조실록은 대한민국이  자부심을 지녀도 좋을 유산이다. 그것의 가치는 실록을 작성하고 보존하는 데 철저하게 원칙과 기준을 지켰다는 데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록될 당시 공정성,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다. 예를 들면, 역사를 기록한 사관은 왕이 죽은 뒤에 기록하고, 그 이후 후대의 왕도 사관에 기록한 그 역사본을 들춰 보지 못하게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공시된 지금 여기의 눈으로 볼 때 금석지감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기밀유지는 역사 기록의 생명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의 강행의지로써 역사를 퇴보시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제 군주제 시대나 왕조시대 보다도 못한 역사의 퇴행을 목도하는 것 같아개탄스럽다.

국정화에 대한 정부의 강경 입장에 교육계, 대다수 역사학자, 정치권,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중고등 학생까지 거리에 나섰으니 저항이 만만치 않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국정화로 인해 온 나라가 벌집 쑤시듯 저항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국민들의 공감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음이니 한편으로는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는 이성도 순수도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걸음걸이 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역사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이 일생을 사는 동안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요즘처럼 뚜렷이 인식하는 계기도 없다.

한 시절 장기집권, 아니 종신집권의 꿈을 꾸며 독재하였던 정권도 부하가 쏜 총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의 딸이 정권을 잡아 부친의 군화발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겠다고 팔을 겉어붙였다.

군사 쿠데타, 부끄럽고 치욕스런 부친의 독재와 친일, 그리고 무고한 국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저지른 폭력을 정당화하며 한국사를 기록한다면 이것은 역사가 아닌 '허사'일 뿐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잘못을 두번 저지르는 꼴이 되고, 부끄럽고 왜곡된 역사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역사책을 미사여구로 바꾸고, 국정교과서를 굴절된 곡필로 현실화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위상은 다시 한 번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추한 역사, 한때의 부끄러운 역사는 덮는다고 해서 덮어지지 않는다. 포장한들 그 포장지만 더러워질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매우 추한 정권의 몰골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며 민초이다. 이 시대를 굿굿하게 지키며 말없이 살아온 다수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정권은 짧고 유한하다. 하지만 삼천리 방방곡곡 민초들은 무한하다.

편집: 김유경 편집위원
 

박명수  kosen21c@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