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을 거야.”

“…….”

1학년 겨울방학을 맞아서 집으로 돌아온 다향이가 말합니다. 변산공동체학교의 아이들도 여느 학교의 아이들처럼 고민이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고민이 더 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고등부아이들은 앞날에 대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집니다. 학교를 졸업해도 비인가 학교인 만큼 진학을 하려면 검정고시를 따로 준비해야 하니까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럼 중학교만 졸업할 거야?”하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언니오빠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저도 고민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다향아, 그럼 중학교 졸업하고 무얼 할지 생각해 봤어?”하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얘기했습니다.

“다향아, 너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초등학교를 그만둘 때는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 학교에 다니고, 안 다니고는 네 마음이지만 다시 학교를 그만두려면 거기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알아. 지금 고민 중이야.”합니다.

2012년, 중등부에 입학한 다향이가 힘들어할 때 꽉 잡아준 아이가 있습니다. 2013년 봄에 고등부를 졸업한 수연이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그전까지 아빠를 의지했던 것처럼 활달하고, 잘 보듬어주는 수연이를 의지했지요. 그런데 수연이가 졸업을 하고 나서 다향이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심심해.’, ‘재미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런 까닭으로 2학년 초기에는 살짝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다향이랑 얘기를 해야겠구나 싶어서 둘이 차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다실에서 찻물을 끓이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다향아. 지금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네가 더 강렬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좋아.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처음으로 뜀박질을 배울 때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바닥에 뒤통수를 찧는 게 당연한 일이야. 그런 과정이 없다면 영원히 일어서지도, 달리지도 못할 거야. 아빠가 늘 말하잖아. 도전해서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고, 이게 아니다싶으면 그만두면 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

“다향아, 인생은 100m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이야. 남들이 어떻게 하건,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가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호흡대로 천천히 가면 돼. 하지만 천천히 가는 것과 게으른 건 전혀 다른 문제야. 저기 표선체육관 있잖아. 그게 400m트랙이니까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100바퀴를 더 돌아야 해. 그런데 그걸 100m달리기처럼 뛰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다 못 뛰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어느 누구도 완주하지 못해. 그런데 억지로 100m 달리기처럼 뛰라고 다그쳐서 네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다향이가 찻잔을 집어 듭니다.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차를 마십니다. 그 과정을 거친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사춘기아이들에겐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향이 나이 또래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음이 나지만 정말 웃을 수는 없습니다. 다향이는 심각하니까요.

“다향아, 세상에 운동의 종목이 얼마나 될까? 아는 대로 말해 볼래?”

왜? 하는 표정으로 다향이가 바라봅니다. 그냥 말해봐 하듯이 다향이의 눈을 응시합니다. 다향이가 말합니다.

“축구 야구 수영 체조 골프 승마…….”

“맞아. 잘 아네. 그럼 운동의 종목이랑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꾸준히 하는 게 있어. 그게 뭔 줄 알아?”

“아니.” 다향이가 심드렁하게 대답을 합니다.

“달리기랑 헬스야. 그것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에 어떤 운동을 하든지 그것을 매일같이 반복하는 거야. 넌 아직 어느 종목도 선택하지 않았고, 헬스와 달리기로 기본체력을 만들고 있는 거야. 몸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하면 몸에 탈이 나고 말아. 중간에 탈락할 수밖에 없고.”

“아빠, 그런데 난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어.”

그 말을 듣고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조금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향이가 묻습니다.

“왜 웃어?”

“아니야, 웃어서 미안해. 네 나이 때는 당연한 고민인데 네가 너무 심각하게 말해서 그랬어. 다향아. 아빠한테 바람이 하나 있다면 네가 스무 살쯤에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거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10년쯤 열심히 하면 ‘쟤는 뭐 하는 사람이야’하는 소리를 듣게 돼. 그리고 바짝 10년을 더하면 ‘무엇의 전문가는 아무개야’소리를 듣게 되는 거야. 그러면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60년을 살 수 있어. 하지만 놀지도 충분히 자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서울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아니지. 또 그 아이들끼리 경쟁을 해서 좋은(월급이 많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 하지만 거기서 회사생활을 하는 건 고작 10년 안팎이야. 그럼 그 사람은 남은 60년을 뭐 하면서 살까?”

“그러게.” 다향이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야. 똑같은 걸 공부한다고 해도 네가 간절히 원해서 하는 거랑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전혀 다르잖아.”

“맞아, 아빠.” 드디어 다향이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그 기회를 빌어서 선언을 했습니다.

“다향아, 아빠는 이제 네 인생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해. 그러니까 네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도 네가 책임져. 네가 아빠의 조언을 구한다면 기꺼이 응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지켜만 볼 거야. 아빠의 딸인 게 고맙고,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아빠는 언제나 널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 다향아, 많이많이 사랑하고 고마워.”

“……?”

 

[여기까지가 2013년에 써둔 초고이고요, 앞으로는 현재의 입장에서 한두 편 더 쓰고, 이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성근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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