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상 한겨레 주주통신원이 지난 14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제1기 한겨레주주통신원 전국총회에서 한겨레주주통신원회(이하 약칭 '한주회') 전국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2월 첫날 이 위원장 인터뷰를 위해 집을 나섰다. ‘메일로 주고받고, 부족한 건 전화로 통화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직접 만나서 인터뷰 하라는 거지? 기자들도 그런 경우가 많던데.’ 또 이 위원장을 처음 뵙는 것도 아닌데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서울 성북동 시민사랑방에서 약 두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 간단히 본인 소개 바랍니다. 어려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1951년 충남 온양에 태어났습니다. 온양이라고는 하지만 읍에서 20리나 들어가는 시골마을입니다. 아버지는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지만 교육열이 강하고,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이장과 조합장을 지낸 마을 최고의 유지였지요. 6살 때 육성 회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노는 게 좋았고 공부도 곧잘 해서 충남도지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60년 4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방자치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지금의 구의원인 읍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아버지의 유세 모습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반 년도 안 되어 5.16군사쿠데타로 아버지의 의원직이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군인놈들 때문에…”란 말을 자주 했지요.

이 일로 아버지는 군사정권에 대해 더욱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제게 "무식하면 안 된다."면서 온양여중에 다니게 했습니다. 당시 시골사람들의 정서는 여자아이가 공부해서 뭐 하나 농사 일이나 공장에 다녀야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도 공부를 잘해 서울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할 실력을 갖췄지만 당시 농사를 짓던 가정형편으로는 고3오빠와 중3인 나 모두를 대학에 진학시킬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남자인 오빠가 대학에 진학하고 저는 취직을 위해 상고에 들어가야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서울여상'에 입학했습니다. 공부 잘 한 다른 친구들은 서울 유명 사립고등학교를 나와 소위 명문대에 진학했습니다.

 

- 상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잘나가는 대기업에 입사해 경리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대학졸업자들만 배치되던 사장 비서실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야무지고 일을 잘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중앙일간지는 물론 경제지까지 매일 신문을 읽고 중요 내용을 스크랩해서 사장에게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게 사장은 “미스 리는 도대체 뭘 하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이야?”라고 물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이에 감동한 사장은 "회사에서 배려해줄테니 대학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1971년 회사에서 가까운 한양대학교 공대 섬유공학과 야간부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학과였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3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결혼을 하게 돼서 졸업을 못 한 거죠.

 

- '요요천사'라는 별칭으로 시민사회에선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다. 사회참여에 나선 이유는 뭔가요?

= 결혼해서 두 아이 낳고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신문을 통해서 사회문제에 대해 늘 관심을 가졌습니다. 신혼때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났는데 당시 남편의 월급 8만 원 중 3만 원을 떼어서 매달 동아일보에 보냈습니다. 그 문제로 남편하고 다툰 적도 많았습니다.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의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쌓인 분노는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제 가슴의 불을 당겼습니다. 거리에 나선 여중생들의 촛불집회에 참석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총장과 한겨레신문발전연대 대표를 지내셨습니다.

=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몸으로 겪으며 소위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성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들 언론사 앞에서 계란 투척 등 항의활동에 참가했습니다. 그 해 5월 언론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진 시민들이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때 저도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언소주 회원이 되었고 언소주의 희망씨앗 본부장을 맡아 한겨레에 광고를 안 주는 삼성그룹에 대한 불매운동과 학교와 군대, 노인정과 다중이용업소 등에 정론지 <한겨레> 보내기 운동도 전개했지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정권의 종편 등 미디어 장악 시도를 보면서 깨어난 시민이 주체가 되어 언론소비자운동을 더욱 맹렬하게 펼쳐야겠다는 소신으로 2011년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미디어악법 종편 반대 기자회견과 서명운동, 동아제약 등 종편 참여 기업의 불매운동을 힘있게 추진했습니다. 임기가 끝난 후엔 한겨레신문발전연대 대표를 2년간 역임했습니다.

 

- 한겨레 주주통신원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이제는 기자만 언론을 생산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1인 미디어, SNS시대입니다. 모두가 기자인 시대입니다. 하지만 시민활동가로 기사나 소식들을 널리 전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시민이 주체가 된 세상에서 한겨레가 조금 더 시민 속으로 들어가고, 주주들과의 소통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한겨레에서 '주주 인터넷뉴스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광고를 보고 ‘역시 한겨레가 앞서 나가는구나!’ 생각하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한겨레의 크나큰 자산인 6만 7천여 주주들과 시민들의 소통 공간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하고 목말라하며 기다리던 일입니까? 저는 지금도 매일 시민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정리해서 한겨레:온 '오늘의 참여현장'코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 현장 기자들도 제가 정리해 올리는 일일정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6만 7천여 주주가 글을 쓰고 소통하기 위해서 한겨레:온이 창간된다는데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초대 전국운영위원장으로서의 소감과 포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 지난해 9월 한겨레주주통신원 출범식 때 즉석에서 임시위원회가 꾸려졌지만 그동안 체계적인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서울, 수도권 운영위원회를 잘 가꿔온 것은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주주통신원이 만드는 한겨레:온이라고 하지만 전체 주주들이 참여하는 마당이라는 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통신원이 많지 않고, 심지어는 친목단체로 알고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두어 달 사이에 한겨레:온 활성화추진팀을 만들고 편집팀이 보강되어 좋은 기사와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6만 7천의 주주 중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까지 거의 모든 직업군이 망라돼있습니다. 한겨레가 지면에 담아내지 못하는 구석구석의 얘기들을 기사화하고, 한겨레의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는 훌륭한 인적자원, 그런 주주들이 한겨레:온을 멋진 매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주주들을 대상으로 토론회와 좌담회,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진행해서 한겨레:온을 알리고, 주주통신원으로 참여시키면서 직접 소통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주들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또 뜻을 모아서 한겨레의 제2의 도약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생존자체가 어려운 언론환경이지만 주주들이 힘을 모아주고, 이런 계기로 한겨레는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진정한 세상의 변혁이 시작될 것입니다.

 

- 한주회는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시는지요.

=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며 군사독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언론조차도 암울한 상황입니다. 지상파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이 커지고, 종편이 위세를 떨치는 상황은 흡사 1980년대 언론의 암흑기를 연상시킵니다. 한겨레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30년 전과 달라진 것은 일반 시민(주주와 독자)도 개인 미디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겨레가 시민들과 전략적으로 연대할 때 한겨레의 가치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차적으로 한겨레:온의 정착과 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전국주주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독자와 시민사회 모든 이들이 한겨레 주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년에 1천 여개의 인터넷언론이 생겨나고, 그중에 5%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겨레:온은 한겨레의 토양 위에 튼튼하게 뿌리내릴 것입니다.

시민과 주주들의 참여로 오마이뉴스 못지않은 시민언론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더 시민 속으로 가기 위해 '국민주주와 한겨레 사이'의 소통과 상생을 위해 선보인 한겨레:온이 시대에 걸맞은 제2의 한겨레로 우뚝 서야 합니다. 스마트폰과 SNS로 무장한 시민과 한겨레가 연결되는 곳이 한겨레:온입니다.

 

- 6만 7천여 주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한겨레 주주들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스스로 신문사를 만든 선각자들입니다. 지금까지 묵묵히 지원해온 주주님들께 백배천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겨레가 주주를 위해서 마련한 언론&참여마당, 한겨레:온을 우리주주들 스스로가 만들 때가 왔습니다. 27년동안 한겨레가 우리에게 알려준 언론의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 주주들의 시민언론이자 한겨레가족의 소통과 상생마당으로 잘 가꾸어 가는 데 동참해주십시오.

 

-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한겨레 독자들은 주주는 아니지만 주주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구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겨레의 기사나 경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절독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한겨레가 창간이래 그런 역할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실수일 것입니다. 한겨레가 잘 커나가게 하고, 제대로 역할하게 할 책임은 주주와 독자에게 있습니다. 싫다고 외면하지 마시고 아쉬운 점이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해주시기 바랍니다.

 

- 일반시민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시민활동가로서 활동하다보면 한겨레를 비판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제가 가까이서 본 한겨레는 어려운 여건에도 열심히 신문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실수도 있고, 다소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우리 자식들이 그렇듯 말입니다. 한겨레의 기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한겨레는 국민이 만든 신문이므로 시민사회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한겨레는 시민사회에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헌신하는 이요상 위원장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그것이 민주에 대한 열망과 동의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분을 수없이 만났으면서도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이위원장님의 인품과 따뜻함에 놀라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역시 인터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진행해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도 얻었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오성근 편집위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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