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고등부까지 졸업하길 원하지만 난 그럴 마음이 없어.”

중1 겨울방학 때 했던 얘기가 아니라 지난해 봄, 그러니까 중3때 한 말입니다.

“그래, 그럼.”

열네 살 때만해도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지만 열여섯 살이 돼서 하는 건 무게감 달랐습니다. 그래서 선뜻 인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다향이는 살짝 놀랐던 모양입니다.

“정말이야? 정말 그만둬도 돼?”

“그럼.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이랬는데 어떡하겠어? 싫은 걸 억지로 해봐야 시간낭비지.”

“……?”

“그런데 다향아. 학교 그만두면 뭘 할 건데?”

“공부하고 싶어.”

“공부? 공부는 지금도 하잖아.”

“아니. 농사짓는 거 말고, 일반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해보고 싶어.”

“왜 공부가 하고 싶은데?”

“아빠는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하라고 하는데 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공부하려고.”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고 물었습니다.

“그럼 검정고시를 치러서 일반 고등학교에 갈래? 아니면 다른 대안학교를 알아볼래?”

“다른 대안학교에서 공부할래.”

“그래 그럼. 인터넷에 들어가서 ‘대안교육연대’라는 사이트를 찾아봐. 거기에 웬만한 대안학교는 다 있으니까 천천히 살펴보고, 네 마음에 드는 학교 세 곳만 골라. 그 다음에 엄마아빠랑 의논해 보자.” 시원스레 말했지만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두려워하는데 학교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누구누구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던데요.”하고 선생님께 말을 붙여 봐도

“해마다 봄가을이면 아이들 사이에 검정고시바람이 불어요. 검정고시를 치러서 일반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람에 휩쓸려서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둬요.”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

지난해(2014년)는 공동체학교 옆 마을인 지서리에서 지냈습니다. 제주를 떠나야 할 상황에서 가족 하나 없는 도시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 다향이가 몸담고 있던 공동체가까이 살면서 자원봉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차와 커피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천진난만하고, 건강성이 묻어나는 얼굴의 아이들을 만나는 건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친구들에게도 고민은 많았습니다.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정말 대학엘 가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까? 노래(연극이나 미술)를 해서 그걸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군대를 가야할 고등부남학생들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소비지향적인)사회에 나가봐야 아무 소용없어. (생활하는데)돈만 많이 들고……. 곧 석유가 바닥난다는데 그렇게만 돼도 도시의 모든 게 멈출 수밖에 없어. 아파트도 공장도, 자동차도 아무 소용없어지잖아. 이렇게 (공동체에서)농사지어서 먹고사는 게 최고야. 그러니까 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농사를 배워.”

올바른 말이지만 아이들의 고민에 구체적인 답이 될 순 없습니다. 공부만을 중요시하는 공교육과는 달리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찾아내서 그것이 빛을 발하도록 돕는 게 대안학교일 텐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친환경농사꾼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변산공동체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앞날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다향이가 세 학교를 추려냈습니다. 그리고 셋이 논의한 끝에 선택한 학교가 ‘길 위에서 놀고, 배우며 연대한다.’는 [로드스꼴라]입니다.

오성근 편집위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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