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빅(?) 바이어의 방한, 비지니스 미팅은 얼른 끝내고 서울구경을 시켜달란다.  우리나라 첫 방문하는 초보자를 위한 Boss 의 작은 배려다. 러시아 사람들은 담백하다. 뻔지르르한 미국인들에 비해 꾸밈이 별로 없고 솔직하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가격을 깍지 않는다. 물론 나도 받을 만큼만 받는다. 점심을 먹고 서울구경에 나선다.

만만한 게 경복궁이다. 자주 보는 우리들이야 별 볼게 있나 싶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보물 상자나 다름없다. 연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근정전의 앞모습이다.

광화문 뒤쪽에서 바라본 세종로 모습.

근정전의 내부 모습이다. 저 높은 천정을 이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을 조선시대 왕들을 생각 해 본다. 높은 천정과 굵은 기둥이 왕과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열강의 틈새에서 생존이 불투명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는 높은 천정이 무겁고 두려웠으리라.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다.

어둑어둑 해는 저물고, 서늘한 바람마저 불어온다.

뒤뜰로 돌아서니 향원정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새색시같이.

서녘에 해는 더 빨리 떨어져 간다.

뒤돌아 뵈는 향원정이 자꾸 눈에 밟힌다.

어지러운 내 마음을 나타내듯 버드나무가 이 앞을 지키고 섰다.

향원정 오른쪽 뒤편에 건청궁 그리고 곤녕합이다. 향원정를 지나며 계속 내 마음이 어지러웠던 이유를 알겠다. 건청궁이 복원되기 전에 왔을 때에는 적나라하게 명성황후의 시해 현장과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없었다. 건청궁 앞에 안내판에 짤막하게 설명해 놓은 내용이 없다면 이곳이 어떤 역사의 현장이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외국인들이 이 설명을 자세히 읽지 않고서는 이 공간의 의미를 알 리 없을 듯하다. 어찌 보면 이전에 그려졌던 적나라한 시해장면의 그림이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았다. 알고 있는 나에게도 이곳이 별궁의 하나쯤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광객들이나 우리 젊은이들이 그 통한의 사실을 기억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옆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설명에 열을 올리는 해설가도 일본인들이 말하는 "일 개 낭인의 돌출행동" 쯤으로 앵무새처럼 떠들 뿐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일설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넘칠 때, 이전에 있었던 사실적으로 그려 놓은 사건도가 일본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어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건 설명도를 없애고 안내표지를 간단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건청궁을 복원할 당시 일본의 한 단체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고 안내표지를 완화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건청궁은 근대화를 도모한 산실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 의지가 외세에 의하여 꺾인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건청궁 안의 곤녕합(坤寧閤)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옥호루(玉壺樓)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건청궁의 뒷산인 녹산에서 불태워졌다. 고종은 아관파천 후 건청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주인을 잃은 건청궁은 1909년 완전히 헐렸다. 

광복 후 건청궁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워졌고, 동쪽에 명성황후가 난을 당한 곳이라는 뜻의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라는 표석과 함께 당시의 참상을 그린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다가 2007년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일본의 문필가 츠노다 후사코는 그날의 이야기가 담긴 ‘민비 암살’이라는 책에서 “나카무라 다테오가 곤녕합(坤寧閤)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를 발견하고 넘어뜨려 처음 칼을 댔고, 곧이어 달려온 도오 카츠아키가 두 번째로 칼을 대어 절명시켰다”고 썼다. 그 칼은 지금 일본 후쿠오카 시내 한복판의 ‘쿠시다 신사’에 숨겨져 있으며 일본인 테러리스트 도오 카츠아키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도 이 신사에 은밀히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차원의 범죄인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증거인 그 칼을 압류하여 범인을 처벌하고 공범인 일본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일개의 낭인이 의협심에 저지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스러져가는 국운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보고자 강대국의 틈에서 발버둥 쳤던 황후의 몸부림이 애처롭다.

 다행히 아관파천때 대사관 문을 열어 주었던 러시아 친구들은 이 역사적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서쪽 녘의 해는 다 기울어가고 있었다.

만시문(萬始門)이란 이름이 범상치 않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문이라 ! 이 문을 나서며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되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새롭게 시작 할 수 있을 것을 믿는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진표 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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